‘혁명의 기억’
2017년 01월 11일(수) 00:00
홍 행 기 사회부장
한국은 지금 혁명(革命) 중이다. 주말인 지난 7일 광주 금남로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또다시 촛불 집회가 열렸다. 지난해 10월 29일 주말 촛불 집회가 시작된 이후 이번이 벌써 열 한 번째다. 집회 누적 참석자는 이미 1000만 명을 넘어섰다.

‘대통령 비선 실세 국정 농단’을 저지하기 위해 시작된 촛불 집회가 75일 만에 ‘촛불 혁명’으로 번지면서 한국사회의 ‘구체제’는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성난 국민, 놀라 움츠러든 기득권층, 수세 속에 대반격을 모색하는 정부 권력 사이에 벌어지는 격전을 보고 있노라면 프랑스의 구체제, ‘앙시앵 레짐’(Ancient Regime)의 종언을 현장에서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다.

잘 알려져 있듯, 혁명 이전의 프랑스는 절대군주 국가였다. ‘신으로부터 왕권을 부여받았다’고 주장하는 이들 군주가 소수의 성직자·귀족들과 결탁해 인구의 90%를 차지하는 시민을 억압하고 특권을 누렸던 것이 바로 프랑스의 앙시앵 레짐이다.

이 앙시앵 레짐을 무너뜨린 프랑스혁명이 ‘소수 특권층에 대한 다수 시민의 불만’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득권과 엘리트 계층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고 있는 지금 우리의 현실을 볼 때, ‘한국 사회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프랑스혁명이 1793년 프랑스 왕 루이16세의 길로틴 처형으로 정점을 찍었듯, 우리의 촛불 혁명 역시 대통령 하야와 권력 교체로 대단원의 막을 내릴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어서다.

하지만 문제는 촛불혁명 이후다. 민중의 힘에 의해 권력 구조와 사회 시스템이 잠시 바뀌더라도 부와 권력을 움켜쥔 기득권 세력들이 국가를 또다시 앙시앵 레짐으로 되돌려 놓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지속적이고 발전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정치·사회 구조를 만들어 내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또다시 거론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한마디로 ‘특혜받은 사람들의 책임’이다. 옥스포드 영어 사전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해 ‘특혜는 책임을 수반한다’(Privilege entails responsibility)라고 정의하고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핵심은 책임과 희생이다. 중세 이후 서양의 수많은 권력자가 전장에서 앞장서다 목숨을 잃었고, 국가적 위기에서 막대한 재산을 내놓으며 희생과 배려를 실천해 왔다.

하지만 역사를 돌이켜볼 때 자발적인 희생은 결코 아니었다. 엄청난 재물과 권력을 자신의 의지로 기꺼이 포기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욕심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루이 16세처럼 국민의 뜻을 거역하다 처형되는 비참한 운명을 피하기 위해 ‘차라리 먼저 책임지고 희생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타당할 것이다. 전체 기득권층의 특혜를 지키기 위한 ‘그들만의 수단’일 수도 있겠지만, 위기 상황에서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희생’이 있어야만 가족과 가문의 기득권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알게 됐을 것이다.

요즘 우리 국민은 베일 속에 감춰져 있던 권력의 속살을 새로이 접하고 있다. 국회 청문회장에는 권력 실세들이 매일 같이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거대 재벌 기업의 총수들도 하루가 멀다고 언론에 등장한다. 온갖 권력과 특혜를 누리던 그들은 그러나 하나같이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만 되풀이하며 국민을 상대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지금 한국은 안팎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국내 정치는 멈춰 있고 경제는 악화 일로다. 일본·중국·미국에 치여 외교적으로도 고립무원이다. 그런데도 이 위기를 앞장서 헤쳐 가야 할 권력자·엘리트들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촛불을 든 국민은 지금 그들에게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그동안 누려 온 것을 용인해 준 국민에게 진실을 보여 줄 것을, 나라를 올바로 세우는 데 앞장서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우리 국민은 촛불 혁명을 통해 뇌리에 ‘혁명의 기억’을 깊숙이 새기는 중이다. 헌법 제1조처럼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확인하고, 이제 그 힘을 행사하고 있는 중이다. 혁명이 완수되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망각한 기득권 세력들을 기다리는 것은 ‘공공의 적’이라는 오명과 질타·치욕뿐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알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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