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배려, 실천 의지 있는가
![]() 박 치 경 편집부국장·정치부장 |
이렇게 공교로울 수가…. 딱 30년 전과 판박이다. 4당 체제와 개헌 논의까지.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와 올 19대 대선을 앞둔 정치 상황 말이다.
우선 오늘까지로만 보면 19대 대선은 다자구도 형국이다. 새누리당의 분당으로 제1당이 된 더불어민주당, 제2당인 새누리당과 3당인 국민의당, 새누리에서 떨어져 나온 (가칭)개혁보수신당 등 원내교섭단체(20석 이상)는 4개에 이른다. 30년 전에는 민주정의당(노태우), 민주통일당(김영삼), 평화민주당(김대중), 신민주공화당(김종필) 등 4개로 갈려 대선에 각기 독자 후보가 출마했다.
정당 난립은 30년 전 그대로다. 지금은 2개의 보수 정당과 2개의 야당으로 나뉘어 있으니 30년 전 민정당-신민주공화당, 통일민주당-평화민주당 등 ‘2與 2野’로 양분된 상황과 어쩌면 이리도 같을 수 있을까?
30년이라는 시차가 있지만 4당 구조 형성의 원동력도 실은 매한가지다. 1987년 4당 체제는 이른바 ‘86 항쟁’의 산물이었다. 화순 출신 연세대생 이한열의 ‘선혈’과 수많은 ‘넥타이 부대’의 ‘땀과 눈물’을 밑거름 삼아 전두환 신군부 세력의 철권통치를 무너뜨린 후 얻은 대통령 5년 단임 직선제로 87년 4자 대결이 가능했다.
그로부터 다시 서른 해가 흐른 지금, 국민의 힘이 새로운 대선판을 만들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의 어둠을 거둬 냈던 ‘1000만의 촛불’을 징검다리로 깨끗한 사회의 문이 열리기를 갈망하며 올해 대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다시 헌법 개정을 통해 13대 대선 직전 9차 개헌으로 만들어진 ‘87 체제’를 깨뜨릴 시점을 맞았다.
13대 대선의 국민적 열망은 ‘민주주의’였다. 박정희 독재 18년에 이어 전두환 체제에서 질식하던 국민은 목숨을 건 투쟁 끝에 비로소 직선제를 쟁취했다. 1972년 10월유신 단행과 함께 15년 동안 ‘체육관 선거’ 결과를 일방적으로 통보받았던 유권자들은 그 당시 마침내 제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 원론적 민주주의의 기쁨에 젖었다.
그러나 87 대선 결과는 민의와는 동떨어졌다. 김영삼-김대중 두 야당 후보가 각자의 승리를 확신하면서 끝까지 가는 바람에 군부정권 종식이라는 국민 소망과는 달리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승리했다. 속된 말로 ‘죽 쒀서 개 준 꼴’이 되고 만 것이다.
불행의 그림자는 군부정권 5년 연장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대선 직후 1988년 13대 총선에서 여당인 민정당이 참패하고 ‘여소야대’(與小野大)로 식물정권 상태에 이른 노태우는 김영삼·김종필을 끌어들여 이른바 ‘구국의 결단’이라는 미명 아래 3당 통합으로 인위적인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을 만든다. 이후 민자당은 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옷을 갈아입었지만, 보수의 적폐는 마침내 ‘아줌마’ 최순실의 국정 농단이라는 시대의 막장극으로 치부를 드러냈다. 이 여파로 ‘친박’ 대 ‘비박’ 집안싸움이 일어났고 유례없는 보수 여당의 분당 사태를 맞아 오늘에 이른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보수 정당이 이름을 바꾼 것은 그때그때 정치적 위기 모면을 위한 옷 갈아입기 성격이 강했다. 작금 보수 정당이 둘로 갈라진 근저에도 무서운 민심이 깔려 있다. 즉 개혁보수신당이 새누리당에서 떨어져 나온 것은 ‘촛불’의 두려움을 뒤늦게 깨닫고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어쩔 수 없는 자구책이라는 점에서 이 또한 민의가 원동력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올 대선에서 국민의 바람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시대정신’의 실천으로 집약할 수 있다. 국민 요구와는 완전히 거꾸로 간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권 9년이 불러온 빈부-이념-지역-세대 간 사회 양극화와 남북 갈등을 치유해 달라는 주문일 것이다.
이렇듯 중차대한 시점이지만 국정 전반에 켜켜이 쌓인 폐단을 닦아 내고, 새 기운을 불어넣어야 할 19대 대선 지형은 결코 녹록지 않아 보인다. 우선 야당은 갈라져 있는 가운데 겉으로는 등 돌린 것처럼 보이는 보수는 이념과 정책, 지역 이해관계만 맞아떨어진다면 다시 손잡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언제든 강한 ‘보수 바람’이 불어닥쳐 ‘정권 교체’를 향해 타오르는 촛불을 꺼트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 대목에서 호남 유권자의 선택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87년 대선 때는 민주주의 표상이자 호남 주자인 김대중이 있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지역은 무주공산(無主空山)인 데다 야권은 갈려 있고, 이른바 ‘제3지대’까지 다양한 대선 트랙이 움직이고 있다. 이러니 후보를 고르는 고충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묻고 싶다. 적어도 87년의 전철을 되밟아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아울러 뒤늦게 호남 구애에 열을 올리는 여러 대선 주자들에게도 확인받고 싶다. 호남을 찾을 때마다 단골로 내놓는 “균형 발전을 위해 지역 인재를 중용하고 예산을 배려하겠다”는 약속에 대해 중간 투표로 신임을 물을 용의라도 있는지.
/unipark@kwangju.co.kr
우선 오늘까지로만 보면 19대 대선은 다자구도 형국이다. 새누리당의 분당으로 제1당이 된 더불어민주당, 제2당인 새누리당과 3당인 국민의당, 새누리에서 떨어져 나온 (가칭)개혁보수신당 등 원내교섭단체(20석 이상)는 4개에 이른다. 30년 전에는 민주정의당(노태우), 민주통일당(김영삼), 평화민주당(김대중), 신민주공화당(김종필) 등 4개로 갈려 대선에 각기 독자 후보가 출마했다.
30년이라는 시차가 있지만 4당 구조 형성의 원동력도 실은 매한가지다. 1987년 4당 체제는 이른바 ‘86 항쟁’의 산물이었다. 화순 출신 연세대생 이한열의 ‘선혈’과 수많은 ‘넥타이 부대’의 ‘땀과 눈물’을 밑거름 삼아 전두환 신군부 세력의 철권통치를 무너뜨린 후 얻은 대통령 5년 단임 직선제로 87년 4자 대결이 가능했다.
13대 대선의 국민적 열망은 ‘민주주의’였다. 박정희 독재 18년에 이어 전두환 체제에서 질식하던 국민은 목숨을 건 투쟁 끝에 비로소 직선제를 쟁취했다. 1972년 10월유신 단행과 함께 15년 동안 ‘체육관 선거’ 결과를 일방적으로 통보받았던 유권자들은 그 당시 마침내 제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 원론적 민주주의의 기쁨에 젖었다.
그러나 87 대선 결과는 민의와는 동떨어졌다. 김영삼-김대중 두 야당 후보가 각자의 승리를 확신하면서 끝까지 가는 바람에 군부정권 종식이라는 국민 소망과는 달리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승리했다. 속된 말로 ‘죽 쒀서 개 준 꼴’이 되고 만 것이다.
불행의 그림자는 군부정권 5년 연장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대선 직후 1988년 13대 총선에서 여당인 민정당이 참패하고 ‘여소야대’(與小野大)로 식물정권 상태에 이른 노태우는 김영삼·김종필을 끌어들여 이른바 ‘구국의 결단’이라는 미명 아래 3당 통합으로 인위적인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을 만든다. 이후 민자당은 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옷을 갈아입었지만, 보수의 적폐는 마침내 ‘아줌마’ 최순실의 국정 농단이라는 시대의 막장극으로 치부를 드러냈다. 이 여파로 ‘친박’ 대 ‘비박’ 집안싸움이 일어났고 유례없는 보수 여당의 분당 사태를 맞아 오늘에 이른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보수 정당이 이름을 바꾼 것은 그때그때 정치적 위기 모면을 위한 옷 갈아입기 성격이 강했다. 작금 보수 정당이 둘로 갈라진 근저에도 무서운 민심이 깔려 있다. 즉 개혁보수신당이 새누리당에서 떨어져 나온 것은 ‘촛불’의 두려움을 뒤늦게 깨닫고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어쩔 수 없는 자구책이라는 점에서 이 또한 민의가 원동력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올 대선에서 국민의 바람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시대정신’의 실천으로 집약할 수 있다. 국민 요구와는 완전히 거꾸로 간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권 9년이 불러온 빈부-이념-지역-세대 간 사회 양극화와 남북 갈등을 치유해 달라는 주문일 것이다.
이렇듯 중차대한 시점이지만 국정 전반에 켜켜이 쌓인 폐단을 닦아 내고, 새 기운을 불어넣어야 할 19대 대선 지형은 결코 녹록지 않아 보인다. 우선 야당은 갈라져 있는 가운데 겉으로는 등 돌린 것처럼 보이는 보수는 이념과 정책, 지역 이해관계만 맞아떨어진다면 다시 손잡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언제든 강한 ‘보수 바람’이 불어닥쳐 ‘정권 교체’를 향해 타오르는 촛불을 꺼트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 대목에서 호남 유권자의 선택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87년 대선 때는 민주주의 표상이자 호남 주자인 김대중이 있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지역은 무주공산(無主空山)인 데다 야권은 갈려 있고, 이른바 ‘제3지대’까지 다양한 대선 트랙이 움직이고 있다. 이러니 후보를 고르는 고충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묻고 싶다. 적어도 87년의 전철을 되밟아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아울러 뒤늦게 호남 구애에 열을 올리는 여러 대선 주자들에게도 확인받고 싶다. 호남을 찾을 때마다 단골로 내놓는 “균형 발전을 위해 지역 인재를 중용하고 예산을 배려하겠다”는 약속에 대해 중간 투표로 신임을 물을 용의라도 있는지.
/uni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