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전라도 1천년’ 도약을 위하여
송 기 동
문화2부장
2016년 12월 21일(수) 00:00
나주시 과원동 금성관내에는 ‘사마교비’(駟馬橋碑)가 서있다. 조선 효종 때 ‘사마교’ 다리를 고치고 세운 비이다. ‘사마’는 한 채의 수레를 끄는 네 필의 말을 의미한다. ‘사마교’는 나주로 피난 온 고려 8대 왕 현종이 개경으로 돌아갈 때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건넜다 해서 붙여진 다리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다리는 남아 있지 않지만 주민들은 이곳을 ‘사매기길’이라고 부른다.

현종이 즉위한 이듬해인 1010년. 거란족의 2차 침입이 있었다. 거란족 40만 명이 압록강을 건너 개경을 향하자 현종은 12월 17일 밤 남쪽으로 몽진(蒙塵)을 한다. 궁궐을 빠져나오기 이전부터 많은 신료가 현종의 곁을 떠나 몸을 숨겨 버렸다. 경기도 광주와 천안·공주에 이르는 동안 그나마 따르던 몇몇 신하와 군사들도 도망쳐 버렸다. 현종 일행이 나주에 도착한 때는 이듬해인 1011년 1월 13일이었다. 거란군이 개경에서 철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까지 현종은 나주 행궁에서 열흘간 머물렀다.

현종이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주를 최종 피난처로 잡은 까닭은 뭘까? 고려를 건국한 왕건 비(妃)이자 2대 혜종의 어머니인 장화왕후의 고향인 나주는 일찍부터 고려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지역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는 2018년은 전라도 정도(定道) 1000년이 되는 해다. 전라도라는 이름이 붙은 때는 1018년으로 고려 현종 9년 때였다. 이때 현종은 지방 통치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편해 전국을 5도로 나누었다. 앞서 995년(성종 14년)에 ‘강남도’(江南道·전북 일원)와 ‘해양도’(海陽道·전남 일원)로 구분했던 것을 전주와 나주의 첫 글자를 따서 ‘전라도’라고 명명했다. 경상도는 1314년(고려 충숙왕 원년), 충청도는 1356년(고려 공민왕 5년), 강원도는 1395년(조선 태조 4년)부터 사용됐다.

조선에 들어서도 전남도 명칭은 그대로 유지됐다. 이후 1896년 전국 8도에서 13도제로 개편되면서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로 양분됐다. 이어 1946년에 제주도가, 1986년에 광주시가 직할시로 승격돼 전남에서 각각 분리됐다. 올해는 전남과 전북이 분리된 지 120년이 되는 해이다.

마침 전주 역사박물관에서는 지난 15일부터 3층 기획전시실에서 전북 120주년(2주갑) 특별전으로 ‘전라북도 다시 봄’ 전시를 열고 있다. 조선말과 일제 강점기, 광복 후로 시기를 구분해 조선시대 전라도 고지도를 비롯해 대한제국 호적표, 마름계약서, 이토농장 토지대장, 소작료 감정부 등 다양한 근·현대사 자료를 선보이고 있다. 특히 1910년 나라가 망한 후 일제가 회유 목적으로 은사금(恩賜金)을 주려고 하자 이를 거절한 뒤 우물에 몸을 던져 순국한 김근배(1847∼1910) 선생에 관한 코너가 눈길을 끌었다. 선생은 “굴욕을 받고 사느니 차라리 의(義)를 따르는 게 나으니 깨끗한 우리 집 우물에 인(仁)이 있도다”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광주시와 전남도 및 전북도는 지난 10월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서 호남권 정책협의회를 갖고 전라도 1000년 기념사업 등 지역현안을 공동 추진하자며 손을 잡았다. 앞으로 3개 시·도는 2018년을 ‘전라도 방문의 해’로 지정하고 전라도 천년정사 편찬, 전라 밀레니엄 파크 조성, 정도 천년 가로수길 조성 등 11대 주요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전라도 정도 1000년’은 지역 역사와 정체성을 재조명하고 지역민의 자긍심을 드높일 수 있는 좋은 계기이다. 그 세월 동안 전라도는 ‘의향’(義鄕), ‘문향’(文鄕), ‘예향’(藝鄕)으로 자리매김했다. 임진왜란과 학생독립운동, 5·18 민중항쟁 등 역사의 격랑 속에서 전라도민들은 가만있지 않았다. 그러나 독재정권하에서 정치적으로 핍박받고, 국토개발 과정에서 소외되고, 왜곡된 지역 이미지로 차별을 받아야 했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은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의미이다. 광주와 전남·북 3개 시·도는 ‘전라도 1000년’ 역사와 문화를 저력 삼아 ‘새로운 천년’, 새로운 ‘전라도 르네상스’의 시대를 열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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