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 한 번만 더 생각해 주세요
김 미 은
문화1부장
2016년 07월 20일(수) 00:00
한 시간 내내 좌불안석이었다. 지난 15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극장 3에서 열린 키릴 카슈닌 피아노 독주회에 다녀온 이들, 그 중에서도 A·B 블럭 앞자리 관객들이었다면 참으로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이날은 유난히 어린이 관객이 많았다. ‘7세 이상 관람가’이긴 하지만 둘러보니 그보다 어린 아이들도 많이 눈에 띄어 처음부터 걱정이 됐다.

순간, 한 달 전 극장 2에서 열렸던 피아노 독주회가 떠올랐다. 나와 대각선 방향에 앉은 아이는 처음부터 몸을 뒤틀더니 곧바로 잠이 들었다. 엄마는 어쩔 줄 몰라 하고, 나는 아이가 공연 중 깨 자신도 모르게 칭얼거릴까 걱정이 됐다. 다행히 아이는 1부가 끝날 때까지 꿈나라에 간 듯했다.(이게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15일 공연장은 250석 규모 소극장으로 무대와 객석 거리가 유난히도 가까웠다. 눈에 밟혔던 아이들은 B블럭 가장 앞줄에 앉았다. 노랫말처럼,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걸까. 첫 곡 ‘템페스트’가 연주될 때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아이들은 쉴 새 없이 장난치며 시야를 방해했다. 잠 들어버린 손녀가 안타까운 옆 좌석 할아버지는 아이를 깨우느라 바빴다. 가방에서 물병을 꺼내 돌아가면서 마시기도 했다. 피아니스트 바로 코앞에서 벌어진 일이다.

A블럭 첫째 줄에 앉은, 대여섯 살 정도 남자 아이는 더 놀라웠다. 연주가 시작되자 엄마에게 계속 말을 걸더니, 갑자기 일어나 B블록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혹시나 무대로 올라갈까 걱정이 됐다. 연주자 시선이 닿는 C블럭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1부가 끝나고 객석에선 불만이 터졌다. 관람을 방해받은 건 물론이고, 성격 예민한 피아니스트였으면 연주를 그만뒀을 거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공연 관람 중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아이들은 2부에선 뒤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성인 관객이라고 해서 다 관람 태도가 좋은 건 아니다. 어린이 관객보다 못한 몰지각한 성인 관객들도 많다. 몇 달 전 광주시향 공연장에서 겪은 일이다. 듣고 싶었던 브람스 ‘교향곡 1번’이 시작되자마자 앞자리 여성 관객이 갑자기 ‘지휘’를 하기 시작했다. 난 이날 두 명의 지휘자가 연주하는 브람스를 감상해야만 했다.

고백하건대, 언젠가 공연 중에 내 휴대전화 벨이 울린 적이 있다. 급하게 공연장에 오느라 가방에 넣은 휴대전화가 가족의 것이었기 때문에 ‘백만 송이 장미’가 벨 소리로 한참 흘러나오는데도 난 몰랐다. 뒤늦게 알아채고 너무 창피한 나머지 객석 뒤로 간 뒤 서서 공연을 봤던 기억이 난다.

최근 들어 무용 등 공연장에서 주최 측이 쉴 새 없이 터트리는 카메라 셔터 소리 또한 또 하나의 공해다. 드레스 리허설을 활용하거나, 적어도 작품을 잘 이해하는 전문가가 ‘흐름’을 봐 가면서 셔터를 누르는 게 필요하다. 한데 요즘엔 감정 이입이 중요한 서정적인 장면에서도 연속으로 셔터를 눌러대는 경우가 많다.

무대 위 예술가가 ‘최고의 상황’에서 작품을 선보일 수 있도록 배려하는 건 예술가에 대한 관객의 가장 기본적인 예의다. 언젠가 만난 희곡작가는 소극장에서 공연을 볼 때는 너무 힘들다고 했다. 객석에 앉아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하거나, 한숨을 쉬게 되면 배우들이 영향을 받기 때문에 ‘꼼짝도 못하고’ 작품을 본다는 설명이었다.

요즘 공연장이나 미술관에서 아이들을 많이 만난다. 다양한 문화예술을 접하게 해 주려는 엄마들의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과욕’이라 느낄 때도 있다. 연주회 내내 잠을 자는 아이에게 클래식 음악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안 좋은 선입견’만 심어 줄 뿐이다. 솔직히 소극장 독주회는 어른 관객들에게도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일이다. 이날도 앞자리에서 힘들어하던 어른 관객은 1부가 끝나자 사라졌다.

몇 년 전 오르세미술관에서 만났던 한국인 가족도 생각난다. 계속되는 관람에 지친 아이에게 엄마는 “여기까지 오는 데 돈이 얼마나 들었는지 아느냐”며 관람을 종용했고,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다. 머릿속에 ‘우겨넣은’ 그림이 아이에게 어떤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엄마들이여, 아이와 문화현장을 찾을 때 한 번만 더 생각해 주시라. “내 아이만 제일”이라는 생각 대신, 다른 관객들을 배려하는 마음도 함께여야 하지 않을까.

참고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공연 하나 추천한다. 오는 23일 광주문예회관에서 열리는 ‘꼬마 작곡가 광주’다. ‘외계인’, ‘우주여행’ 등 초등학생들이 만든 1∼3분짜리 짧은 곡들이 연주된다. 아이들이 최고로 좋아하는 방귀 소리, 똥 싸는 소리를 악기로 들려주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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