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선 예술영화 전용관
송 기 동
문화2부장
문화2부장
얼마 전 강연차 목포를 찾은 임권택 감독을 인터뷰했다. 이때 임 감독은 당시 다큐멘터리 ‘다이빙 벨’ 상영을 두고 파행을 겪고 있던 부산영화제에 대해 “관이 개입해 부산영화제가 풍파를 맞았다. 밖(해외)에 나가면 외국 감독들이 내 영화를 가지고 얘기를 해야 하는데 매번 ‘(한국은) 검열을 어떻게 하느냐?’라는 질문만 해서 심란하다”고 말했다. 50여 년간 영화 연출의 한길을 걸어오며 관의 검열과 간섭을 수없이 겪은 노장의 탄식이었다.
요즘 예술영화 전용관(이하 전용관)들이 존폐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의 유일한 단관 예술극장인 광주극장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난해부터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전용관 운영 보조금을 받지 않고 있는데 ‘홀로서기’가 만만치 않다. 2014년 전체 수입의 35%를 차지하는 규모인 영진위 보조금을 포기하고 2년째 입장료와 대관·임대 수입만으로 운영하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부터 월 후원회원 모집에 나선 광주극장에 들어서면 우선 1층 로비 기둥에 붙여진 설명문이 눈길을 끈다. “…그동안 신뢰로 쌓아 온 광주극장의 프로그램을 함부로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다양한 독립·예술 영화, 사회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영화, 콕콕 찌르는 아픔과 갈등이 생기더라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의식을 넓혀 주는 영화들을 계속 상영할 것입니다.…”
영진위는 지난 2003년부터 시행해 오던 전용관 지원 사업 기준을 2015년 개악했다. 당초 연간 60%(219일) 이상 독립·예술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을 지원했으나, 지난해부터 영진위 사전심사를 통해 선정된 영화들을 의무적으로 상영하는 전용관에만 보조금을 지원키로 기준을 변경한 것이다.
광주극장은 “(영진위가) 선정한 영화를 상영할 경우에만 지원하겠다는 정책을 통해 상영관과 관객의 다양한 영화 선택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하고, 상영되는 영화를 선별하는 통제의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발상”이라며 “그동안 지켜 온 각 예술영화 전용관들의 특색 및 정체성을 획일화된 틀 속에 가두고 각 극장의 작품 선정 권리와 더불어 자율성과 독립성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사업”이라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한국영화를 ‘진흥’시켜야 하는 기관의 퇴행적인 정책이 되레 전용관을 ‘고사’시키고 있다. 파행을 겪던 부산영화제는 현재 급한 불은 껐다. 하지만 미봉책에 불과해서 언제든 재발할 소지를 안고 있다. 그동안 국제적인 영화제로 자리매김해 오던 터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전용관의 보조금 지원과 영화제의 근원적 문제가 오버랩된다.
올해로 광주극장은 개관 81주년을 맞는다. 1935년 10월 1일, 광주읍이 광주부(府)로 승격되던 날에 광주극장은 정식 개관했다. 영화 상영뿐만 아니라 각종 공연과 연주회가 열렸고, 1948년에는 백범 김구 선생이 연설을 한 의미 깊은 장소이기도 하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광주극장은 국내에서 70㎜ 와이드 스크린을 갖춘 단관 예술 전용관이다. 가끔 손으로 그린 영화 간판을 볼 수 있고, 임검석(臨檢席)도 여전히 남아 있다.
학생뿐만 아니라 많은 중·장년 및 노년층 관객들이 이곳을 찾아 멀티플렉스 상영관에서 볼 수 없는 보석 같은 영화들을 관람한다. 광주극장을 한 번이라도 찾은 관객들은 알 것이다. 엄선한 좋은 영화만을 내걸고 광고 없이 제시간에 시작하는 극장의 따뜻함과 담백함을.
시민들의 ‘힐링 공간’인 예술영화 전용관을 고사시키는 영진위의 보조금 정책은 재고돼야 한다. 진정으로 한국영화의 ‘진흥’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다양한 영화의 제작과 상영일 것이다.
대자본의 물량 공세와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가득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아닌 삶의 진실을 추구하며 울림을 주는 그런 영화를 상영하는 곳. 그래서 더욱 광주극장의 공간적 가치가 빛난다. 더군다나 무등·제일·태평 등 지역 극장들이 자본 논리에 따라 하나둘 문을 닫고 이제는 대기업 계열 멀티플렉스만 남아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요사이 광주극장을 찾는 관객들은 후원회원으로 가입해 십시일반(十匙一飯) 힘을 모으고 있다. 관객들이 분투하는 극장의 ‘홀로서기’를 응원하고 있는 것이다. 856석의 객석은 광주 문화시민들에게 활짝 열려 있다.
“광주에는 80여 년 역사의 ‘광주극장’이 있다. 그리고 영사기는 계속 돌고 있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도록 ‘광주 문화의 자긍심’인 광주극장의 역사는 죽∼ 이어져야 한다. 앞서 언급한 광주극장의 설명문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메마른 대지에 가느다란 실뿌리들이 서로 얽혀 한 그루의 나무를 지탱하듯 여러분들이 곁에 있는 한 푸르른 기운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song@kwangju.co.kr
지난달부터 월 후원회원 모집에 나선 광주극장에 들어서면 우선 1층 로비 기둥에 붙여진 설명문이 눈길을 끈다. “…그동안 신뢰로 쌓아 온 광주극장의 프로그램을 함부로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다양한 독립·예술 영화, 사회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영화, 콕콕 찌르는 아픔과 갈등이 생기더라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의식을 넓혀 주는 영화들을 계속 상영할 것입니다.…”
광주극장은 “(영진위가) 선정한 영화를 상영할 경우에만 지원하겠다는 정책을 통해 상영관과 관객의 다양한 영화 선택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하고, 상영되는 영화를 선별하는 통제의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발상”이라며 “그동안 지켜 온 각 예술영화 전용관들의 특색 및 정체성을 획일화된 틀 속에 가두고 각 극장의 작품 선정 권리와 더불어 자율성과 독립성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사업”이라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한국영화를 ‘진흥’시켜야 하는 기관의 퇴행적인 정책이 되레 전용관을 ‘고사’시키고 있다. 파행을 겪던 부산영화제는 현재 급한 불은 껐다. 하지만 미봉책에 불과해서 언제든 재발할 소지를 안고 있다. 그동안 국제적인 영화제로 자리매김해 오던 터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전용관의 보조금 지원과 영화제의 근원적 문제가 오버랩된다.
올해로 광주극장은 개관 81주년을 맞는다. 1935년 10월 1일, 광주읍이 광주부(府)로 승격되던 날에 광주극장은 정식 개관했다. 영화 상영뿐만 아니라 각종 공연과 연주회가 열렸고, 1948년에는 백범 김구 선생이 연설을 한 의미 깊은 장소이기도 하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광주극장은 국내에서 70㎜ 와이드 스크린을 갖춘 단관 예술 전용관이다. 가끔 손으로 그린 영화 간판을 볼 수 있고, 임검석(臨檢席)도 여전히 남아 있다.
학생뿐만 아니라 많은 중·장년 및 노년층 관객들이 이곳을 찾아 멀티플렉스 상영관에서 볼 수 없는 보석 같은 영화들을 관람한다. 광주극장을 한 번이라도 찾은 관객들은 알 것이다. 엄선한 좋은 영화만을 내걸고 광고 없이 제시간에 시작하는 극장의 따뜻함과 담백함을.
시민들의 ‘힐링 공간’인 예술영화 전용관을 고사시키는 영진위의 보조금 정책은 재고돼야 한다. 진정으로 한국영화의 ‘진흥’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다양한 영화의 제작과 상영일 것이다.
대자본의 물량 공세와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가득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아닌 삶의 진실을 추구하며 울림을 주는 그런 영화를 상영하는 곳. 그래서 더욱 광주극장의 공간적 가치가 빛난다. 더군다나 무등·제일·태평 등 지역 극장들이 자본 논리에 따라 하나둘 문을 닫고 이제는 대기업 계열 멀티플렉스만 남아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요사이 광주극장을 찾는 관객들은 후원회원으로 가입해 십시일반(十匙一飯) 힘을 모으고 있다. 관객들이 분투하는 극장의 ‘홀로서기’를 응원하고 있는 것이다. 856석의 객석은 광주 문화시민들에게 활짝 열려 있다.
“광주에는 80여 년 역사의 ‘광주극장’이 있다. 그리고 영사기는 계속 돌고 있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도록 ‘광주 문화의 자긍심’인 광주극장의 역사는 죽∼ 이어져야 한다. 앞서 언급한 광주극장의 설명문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메마른 대지에 가느다란 실뿌리들이 서로 얽혀 한 그루의 나무를 지탱하듯 여러분들이 곁에 있는 한 푸르른 기운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