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좋은 한 해 만드십시다
![]() |
새해가 올 때마다 전혜린(1934∼1965)은 기도를 드린다 했습니다. 나에게 기적 같은 무슨 일인가 일어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모험 끝에는 허망이, 여행 끝에는 피곤만이 기다리고 있다 해도,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는 특권이야말로 언제나 새해가 우리에게 주는 유일한 선물 아니겠느냐면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벌써 일주일이 지났습니다만 우리는 새해 첫날 저마다 꿈을 꿉니다. 그러니 아름다운 꿈을 꾸면서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는 새해 첫날만큼 특별한 날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 특별한 날도 어찌 생각하면 뭐 그리 특별할 것도 없습니다. 여전히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갈망하고 기다리던 ‘내일’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어느 죽은 부인의 유품을 정리하던 남편이 실크 스카프 한 장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부인이 뉴욕을 여행하던 중 아주 유명한 매장에서 구입한 것이었습니다. 아름답고 비싼 스카프여서, 애지중지하며 그것을 써 볼 수 있는 특별한 날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끝내 특별한 날은 오지 않았고, 그녀는 한 번도 스카프를 써 보지 못한 채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소중한 것을 아껴 두었다가 특별한 날에 쓰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이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매일매일이 특별한 날 아니겠느냐는 뜻이지 않나 싶습니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현재를 잡아라)이란 말이 있지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통해 더욱 유명해진 말입니다. 영화에서 키팅 선생은 미래(좋은 직장 등)를 위해 현재(학창시절)의 낭만과 즐거움을 포기해야만 하는 학생들에게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이 무엇보다도 확실하며 중요한 순간’임을 일깨워 줍니다.
특별한 날은 새해 첫날이 아닙니다. 매일 아침 우리가 눈뜰 때마다 맞게 되는 오늘이 바로 특별한 날입니다. 어제는 지나갔기 때문에 좋고 내일은 올 것이기 때문에 좋지만, 오늘은 할 수 있기 때문에 좋다고들 합니다. 매일 매시간은 모두 그렇게 소중한 것입니다. 올 한 해는 365일을 매일매일 특별한 날처럼 보내시기를 소망합니다.
혹시 지난해에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면 깨끗이 잊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지만 ‘잊으라’ 말하면서도 정작 저는 지난 한 해를 다시 되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네요. 2015년 을미년 한 해를 어떤 말로 요약할 수 있을까요. 전국의 교수들이 선정한 ‘혼용무도’(昏庸無道)란 말은, 좀 어렵긴 하지만 참으로 절묘했다는 생각입니다.
연말이면 교수들은 늘 다양한 사자성어를 내놓는데 지난해의 상황을 압축한 저 말은, 지금까지 그 어느 것보다도 가장 신랄하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그만큼 공감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말일 테지요.
그것은 ‘혼군(昏君)과 용군(庸君)이 법과 원칙도 없이 세상을 말아먹는다’는 준열한 고발이었습니다. ‘혼군’은 판단력이 흐린 어리석은 임금이며 ‘용군’은 행동력이 떨어지는 못난 임금이니, 이들은 혹시 무엄하게도 현직 대통령을 겨눈 건 아니었을까요? 유신독재 시절 같으면 저 교수들 모조리 정보기관에 끌려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무사한 것을 보면 ‘세상이 거꾸로 가고 있다’는 ‘좌빨’들의 선전도 사실이 아닌 듯싶습니다.
그나저나 ‘혼군’이란 말까지 나오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요? 이유야 수없이 많겠지만 딱 한 가지만 말하고 싶습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밀어붙이기’입니다. 이게 얼마나 대다수 국민들의 생각과 동떨어진 것인지를 잘 말해 주는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소개하지요.
‘고추 먹고 맴맴’이라는 동요가 엄마·아빠의 바람피우는 이야기이니, 이를 아무 생각 없이 국정교과서에 실은 담당자를 찾아내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주장이 한때 SNS에 퍼져 나갔습니다. 아버지가 노새도 아닌 나귀(현재의 에쿠스급)를 타고 장에 갈 정도이면 한량이었던 게 분명한데, 장날을 틈타 기생집에 갔던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어머니 역시 외할머니 댁도 아닌 건넛마을 아저씨 댁에 간 것은 분명 맞바람을 피운 것이라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후렴구인 ‘고추 먹고 맴맴’의 ‘고추’는 우리가 흔히 비유적으로 쓰는 ‘거시기’일 수 있겠고, ‘맴맴’도 남녀상열지사에서 오는 황홀한 어지러움이라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참 그럴듯하지요?
하지만 이건 사실이 아닙니다. ‘맴맴’이라는 노래는 윤석중 작사·박태준 작곡으로 1920년대 발표됐지만, 원래는 민간에 떠도는 구전 동요였답니다. 애초 제목은 ‘집 보는 아기의 노래’였는데 광복 후 국정 음악교과서를 편찬할 때 ‘맴맴’으로 바뀌었습니다.
‘달래 먹고 맴맴’이라는 부분도 원래 ‘담배 먹고 맴맴’이었는데(이 노래가 불렸던 조선시대 후기에는 어린애들도 담배를 많이 피웠습니다) 음악교과서에 수록되면서 어린이들의 정서를 감안해 수정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이런 구전 동요에 엉뚱한 스토리가 입혀져서 널리 퍼진 것은 그만큼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비롯해서 모든 것이 자꾸만 거꾸로 돌아가는 이 어지러운 정국을 풍자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해가 바뀌었어도 달라질 것은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점이 또한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어리석은 임금인 ‘혼군’ 이란 말까지 나오는 판이지만 그래도 현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 2년 넘게 남아 있습니다. 야권은 지리멸렬(支離滅裂)한 상태로 다음 대선에서도 정권 교체의 희망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우리 같은 대다수 ‘흙수저’들은 불 속에서도 견디며 도자기로 태어나는 흙처럼 그렇게 꿋꿋이 견디고 버티면서 살아가야겠지요. ‘생어우환 사어안락’(生於憂患 死於安樂)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환 속에서는 살고, 안락 속에서는 죽는다.” 맹자의 말입니다. 지금 겪고 있는 힘든 시간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 주고, 오늘의 실패가 내일의 성공으로 가는 자산이 될 테니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침 제 스마트폰에 ‘찾지 말고, 되자’라는 글이 떴네요. “좋은 친구를 찾지 말고/ 좋은 친구가 되고/ 좋은 애인을 찾기 전에/ 좋은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자”고요.
지난 한 해 아무리 어려웠더라도 다 흘려보내고 올 한 해는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랍니다. 아니, 좋은 한 해가 되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좋은 한 해를 함께 만들어 나갑시다.
〈주필〉
이런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어느 죽은 부인의 유품을 정리하던 남편이 실크 스카프 한 장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부인이 뉴욕을 여행하던 중 아주 유명한 매장에서 구입한 것이었습니다. 아름답고 비싼 스카프여서, 애지중지하며 그것을 써 볼 수 있는 특별한 날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끝내 특별한 날은 오지 않았고, 그녀는 한 번도 스카프를 써 보지 못한 채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현재를 잡아라)이란 말이 있지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통해 더욱 유명해진 말입니다. 영화에서 키팅 선생은 미래(좋은 직장 등)를 위해 현재(학창시절)의 낭만과 즐거움을 포기해야만 하는 학생들에게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이 무엇보다도 확실하며 중요한 순간’임을 일깨워 줍니다.
특별한 날은 새해 첫날이 아닙니다. 매일 아침 우리가 눈뜰 때마다 맞게 되는 오늘이 바로 특별한 날입니다. 어제는 지나갔기 때문에 좋고 내일은 올 것이기 때문에 좋지만, 오늘은 할 수 있기 때문에 좋다고들 합니다. 매일 매시간은 모두 그렇게 소중한 것입니다. 올 한 해는 365일을 매일매일 특별한 날처럼 보내시기를 소망합니다.
혹시 지난해에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면 깨끗이 잊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지만 ‘잊으라’ 말하면서도 정작 저는 지난 한 해를 다시 되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네요. 2015년 을미년 한 해를 어떤 말로 요약할 수 있을까요. 전국의 교수들이 선정한 ‘혼용무도’(昏庸無道)란 말은, 좀 어렵긴 하지만 참으로 절묘했다는 생각입니다.
연말이면 교수들은 늘 다양한 사자성어를 내놓는데 지난해의 상황을 압축한 저 말은, 지금까지 그 어느 것보다도 가장 신랄하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그만큼 공감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말일 테지요.
그것은 ‘혼군(昏君)과 용군(庸君)이 법과 원칙도 없이 세상을 말아먹는다’는 준열한 고발이었습니다. ‘혼군’은 판단력이 흐린 어리석은 임금이며 ‘용군’은 행동력이 떨어지는 못난 임금이니, 이들은 혹시 무엄하게도 현직 대통령을 겨눈 건 아니었을까요? 유신독재 시절 같으면 저 교수들 모조리 정보기관에 끌려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무사한 것을 보면 ‘세상이 거꾸로 가고 있다’는 ‘좌빨’들의 선전도 사실이 아닌 듯싶습니다.
그나저나 ‘혼군’이란 말까지 나오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요? 이유야 수없이 많겠지만 딱 한 가지만 말하고 싶습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밀어붙이기’입니다. 이게 얼마나 대다수 국민들의 생각과 동떨어진 것인지를 잘 말해 주는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소개하지요.
‘고추 먹고 맴맴’이라는 동요가 엄마·아빠의 바람피우는 이야기이니, 이를 아무 생각 없이 국정교과서에 실은 담당자를 찾아내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주장이 한때 SNS에 퍼져 나갔습니다. 아버지가 노새도 아닌 나귀(현재의 에쿠스급)를 타고 장에 갈 정도이면 한량이었던 게 분명한데, 장날을 틈타 기생집에 갔던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어머니 역시 외할머니 댁도 아닌 건넛마을 아저씨 댁에 간 것은 분명 맞바람을 피운 것이라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후렴구인 ‘고추 먹고 맴맴’의 ‘고추’는 우리가 흔히 비유적으로 쓰는 ‘거시기’일 수 있겠고, ‘맴맴’도 남녀상열지사에서 오는 황홀한 어지러움이라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참 그럴듯하지요?
하지만 이건 사실이 아닙니다. ‘맴맴’이라는 노래는 윤석중 작사·박태준 작곡으로 1920년대 발표됐지만, 원래는 민간에 떠도는 구전 동요였답니다. 애초 제목은 ‘집 보는 아기의 노래’였는데 광복 후 국정 음악교과서를 편찬할 때 ‘맴맴’으로 바뀌었습니다.
‘달래 먹고 맴맴’이라는 부분도 원래 ‘담배 먹고 맴맴’이었는데(이 노래가 불렸던 조선시대 후기에는 어린애들도 담배를 많이 피웠습니다) 음악교과서에 수록되면서 어린이들의 정서를 감안해 수정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이런 구전 동요에 엉뚱한 스토리가 입혀져서 널리 퍼진 것은 그만큼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비롯해서 모든 것이 자꾸만 거꾸로 돌아가는 이 어지러운 정국을 풍자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해가 바뀌었어도 달라질 것은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점이 또한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어리석은 임금인 ‘혼군’ 이란 말까지 나오는 판이지만 그래도 현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 2년 넘게 남아 있습니다. 야권은 지리멸렬(支離滅裂)한 상태로 다음 대선에서도 정권 교체의 희망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우리 같은 대다수 ‘흙수저’들은 불 속에서도 견디며 도자기로 태어나는 흙처럼 그렇게 꿋꿋이 견디고 버티면서 살아가야겠지요. ‘생어우환 사어안락’(生於憂患 死於安樂)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환 속에서는 살고, 안락 속에서는 죽는다.” 맹자의 말입니다. 지금 겪고 있는 힘든 시간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 주고, 오늘의 실패가 내일의 성공으로 가는 자산이 될 테니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침 제 스마트폰에 ‘찾지 말고, 되자’라는 글이 떴네요. “좋은 친구를 찾지 말고/ 좋은 친구가 되고/ 좋은 애인을 찾기 전에/ 좋은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자”고요.
지난 한 해 아무리 어려웠더라도 다 흘려보내고 올 한 해는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랍니다. 아니, 좋은 한 해가 되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좋은 한 해를 함께 만들어 나갑시다.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