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서 하는 밴드’
김 미 은
문화1부장
2015년 07월 08일(수) 00:00
한때 인디 그룹 중에 ‘좋아서 하는 밴드’를 좋아했다. 지금처럼 ‘버스킹(busking·길거리 연주와 노래)’이 흔치 않았던 2009년 즈음, 한 영화 축제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는 4인조 밴드(지금은 3인조)였다. 화려한 메인 행사가 끝나고 집에 가려 주차장에 들렀는데 어디선가 흥겨운 노랫소리가 들렸다. 기타와 아코디언, 아프리카 타악기 젬배 반주로 풋풋한 노래가 이어졌다.

“다음으로 이사 올 사람에게 나는 말해 주고 싶었지/ 고장 난 듯한 골드스타 세탁기가 아직 얼마나 잘 돌아가는지/ 무더운 여름날 저 평상을 만드느라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 평상 위에서 별을 보며 먹는 고기가 참 얼마나 맛있는지”(‘옥탑방에서’)

우리처럼 오다가다 현장을 ‘발견’한 사람들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공연을 보며 함께 웃고 환호했다. 초대받지 않은 축제 현장을 찾아다니는 ‘좋아서 하는 밴드’의 전국 투어 스토리는 ‘좋아서 만든 영화’(2009)로도 제작됐다.

‘좋아서’ 일을 도모하는 이들은 또 있다. 취재 중 만난 ‘생태 읽기 모임 꾸꾸루 꾸꾸’(blog.naver.com/ethe_r)다. 세 명의 청년은 정기적으로 소박한 ‘꾸꾸루 꾸꾸 생명평화 영화제’를 열고 있다. 장소를 섭외하고, 영화를 선정하고, 간단한 먹을거리도 준비한다. 번거로운 일이지만 좋아서 하니 즐겁다.

오는 16일 오후 7시 광주극장 영화의 집에서 함께 보는 영화는 ‘리틀 포레스트-여름·가을’이다. 음식 영화에 걸맞게 밭에서 직접 캐 온 감자, 엄마가 만든 매실에이드, 포도주와 떡도 준비했다. 관람료는 없다. 개인 컵을 준비하고 음식물 준비를 위해 은별(010-4635-8524) 씨에게 전화 한 통 하면 끝이다.

얼마 전 취재한 파리‘K-VOX 페스티벌-유러피언 아마추어 판소리·민요 경연’ 현장은 매우 흥미로웠다. ‘아이고, 아버지’ 하는 심청가 한 대목을 라디오에서 듣고 마음을 빼앗겨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한 벨기에 남성, 춘향이와 이 도령의 애절한 이별가 대목을 절절하게 표현해 내는 영국 여성의 등장에 무척 놀랐다.

판소리 경연을 비롯해 컨퍼런스, 공연, 강습 등으로 구성된 페스티벌을 꾸린 이는 한국 판소리에 푹 빠진 프랑스인 에르베 페조디에와 부인 한유미 씨다. 공연 기획부터 출연자 이동까지 온갖 일을 다 하는 두 사람은 정부 지원 없이 행사를 꾸리는 진정한 ‘민간 문화사절’이었다.

속된 말로 ‘밥이 나오는 것도, 쌀이 나오는 것도 아닌’ 힘든 일을 왜 저리 즐겁게 하는 걸까. 며칠 동안 지켜보다 질문을 던졌다. 답은 이거였다. “판소리가, 한국 음악과 공연이 너무 좋으니까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당시 ‘좋아서 하는 밴드’에 ‘꽂혔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일상에서 포착한 가사, 편안한 멜로디와 음색에 빠져서였을까? 즐기며 노래하는 이들이 무척 행복해 보여서였을까? 물론 두 가지가 가장 큰 이유였을 거다.

한편으론 혹시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좋아서 하는 밴드’라는 이름 자체가 부러웠던 건 아니었을까 자문해 본다. 팍팍한 삶에 묶인 우리는 ‘좋아서’ 하는 일이 그리 많지 않으니까. 먹고 살기 위해 ‘싫어도, 힘들어도’ 해야 하는 일이 대부분이고, 더욱 슬픈 건 조직 논리에 따라 가끔은 ‘해서는 안 되는 일’도 실행해야 하는 처지에 빠지기도 하니까.

최근 기사 관련 메일을 보낸 84세 독자 글 중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나이가 많습니다. 그래도 호기심은 어린아이입니다.” 노신사는 가고 싶은 커피숍 이름을 수첩에 적어 두고, 젊었을 때부터 관심이 많았던 역사 관련 자료를 챙기는 게 즐겁다고 했다. 멋진 인생이다 싶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면서도 생활을 위해 ‘밥벌이’ 되는 일을 해야 하는 게 우리 삶이다. 삶에 쫓겨 한때 좋아했던 일을 까맣게 잊고, 때론 좋아하는 것 자체에 대한 감흥을 잃어버린 건 아닐까.

하루하루가 힘들더라도 이제 좋아했던 일을 다시 찾아내고, 좋아서 하는 일 하나쯤 만들고, 때론 그 일을 함께 나누는 건 어떨까.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게 뭐였더라?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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