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희와 구니요시
박 진 현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
2015년 05월 27일(수) 00:00
4년 전 광주 남구의 양림역사 문화마을 경관개선사업(2008∼2017년)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K씨는 요즘 양림동을 지날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다. 100년 전의 근대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307억 원이 투입되는 대형 프로젝트이지만 돈 들인 만큼 만족스런 성과를 찾기 힘들어서다.

콘텐츠 개발보다는 편의시설 위주의 하드웨어에 치중하다 보니 양림동의 정체성을 살리지 못한 것이다. 30억 원을 들인 순교자 기념공원과 선교사 묘역 정비는 역사의 흔적을 지웠고, 83억 원을 들인 공용주차장은 고즈넉한 정취를 날려 버렸다.

무엇보다 K씨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건 양림동 프로젝트를 ‘책임지는’ 전담공무원이 없다는 것이다. 남구청의 잦은 인사로 K씨가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던 3년 동안 담당 공무원이 3명이나 교체됐다. 업무를 파악하고 팔을 걷고 나설 때쯤이면 다른 부서로 옮기다 보니 행정의 일관성과 지속성이 떨어진 것은 물론이다.

그런 점에서 양림동보다 1년 늦게 스타트를 끊은 대구시 중구 근대골목은 전문공무원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준다. 근대골목에 깃든 옛 이야기를 되살린 골목투어가 문화관광부의 ‘한국 관광의 별’로 선정된데에는 오성희 주무관(대구 중구 문화관광과)의 열정이 큰 몫을 했다.

지난 2009년 문화관광과로 배치된 오 주무관은 ‘근대골목 붙박이’를 자처하고 나섰다. 이후 6년 동안 골목해설사 발간, 골목투어 강의 등 근대골목을 부활시키는 데 주력했고, 그 공로로 지난 2013년 행정안전부로부터 ‘문화·관광행정의 달인’으로 선정됐다.

요코하마시의 구니요시 나오요키(66·전 도시정비국 수석 디자이너) 역시 행정의 달인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요코하마가 세계적인 창조도시로 변신한 원동력은 40년 동안 도시정비국을 진두 지휘해온 구니요시의 전문성이었다. 지난 1971년 요코하마시 도시디자인 연구원으로 들어온 구니요시는 공공디자인으로 도시를 재생시키는 데 올인 했다.

젊은 시절 미국에서 건축을 전공한 그는 개항기 역사의 흔적이 깃든 요코하마의 근대건축물과 공공디자인을 접목한 ‘창의도시 요코하마’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시장이 바뀔 때마다 요코하마시의 디자인 정책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지만 구니요시 덕분에 일관된 기조를 유지할 수 있었다.

사실 한 조직의 문화업무는 다른 분야에 비해 전문성을 더 필요로 한다. 문화마인드나 식견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라 오랜 경험과 노력이 축적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를 지향하는 광주시의 문화행정은 상당히 ‘비문화적’이다. 지난 2005년 아시아문화 중심도시사업과 시 문화정책을 총괄하기 위해 신설한 문화체육정책실은 그 결정판이다. 잦은 인사와 낮은 전문성으로 문화이슈들이 얽힐 때마다 컨트롤 타워로서의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평균 1년 미만인 문화정책실장의 재임기간은 ‘문화’에 대한 광주시의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프로젝트의 정부 파트너인 문광부 산하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추진단장과 비교하면 그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지난 2012년 2월 취임한 김종률 단장의 뒤를 이어 현 김성일 단장이 추진단을 이끌고 있는 데 반해 문화정책실은 같은 기간 동안 공무원 4명이 거쳐갔다. 업무 파악하는 데만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광주시가 오히려 갈 길 바쁜 문화중심도시 프로젝트의 맥을 끊은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광주시는 지난해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 파동으로 개혁 요구에 직면한 광주비엔날레재단의 사무처장을 ‘갑작스럽게’ 문화정책실장으로 발령냈다. 이 때문에 매일 숨가쁘게 돌아가는 재단의 혁신 과정에서 신임 사무처장은 ‘낯선’ 환경에서 업무를 익히느라 바빴다.

광주시 문화행정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컨트롤 타워가 없다는 것이다. 국립 아시아문화전당(전당) 개관을 앞두고 전당 주변을 둘러싼 10여 개의 문화·관광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지만 이를 총괄하는 사령탑이 없어 일부 사업의 경우 중복되거나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와 관련 기자가 문화정책실에 전당 주변의 금남로와 관련된 사업현황을 알기 위해 자료를 요청했지만 다른 부서에서 어떤 사업들이 추진되고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쯤되면 ‘문화수도’라는 타이틀이 부끄러울 뿐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서울시가 모든 공공프로젝트를 관장할 ‘총괄 건축가’(City Architect)로 건축가 승효상씨를 영입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광주가 아시아의 문화수도로 우뚝 서려면 (특정분야에 한해) 전문 공무원제는 물론 장기적인 비전과 전문적 역량을 갖춘 문화 컨트롤 타워가 시급하다. 더 이상 미룰 여유도 명분도 없다.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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