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진의 ‘아름다운 낭독’
김 미 은
문화1부장
문화1부장
혹시 개그맨 이동우를 아시는지. 홍록기 등과 함께 ‘틴틴 파이브’로 활동했던 연예인이다. 이 씨는 2004년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잃었다. 앞이 보이지 않게 됐을 때, 그는 좌절하는 대신 ‘슈퍼맨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철인 3종 경기 완주, 솔로 재즈 앨범 제작, 연극 출연. 이 프로젝트는 지난해 연극 ‘내 맘의 슈퍼맨’을 무대에 올리며 ‘완성’됐다.
출판 잡지 ‘기획회의’를 읽다 탤런트이자 EBS 라디오 ‘화제의 베스트 셀러’ 진행자인 소유진의 인터뷰를 보며 코끝이 찡했다. 이동우와 얽힌 사연이다.
그녀는 이 씨가 쓴 책에서 “책 읽기를 좋아하는데 시력이 나빠져서 속상하다”는 대목을 읽었다. “마흔이 넘어 굳어버린 손 때문에 점자를 배우기 어렵고 읽고 싶은 책은 오디오나 점자책으로 나오지 않아 속상하다”는 부분도 있었다.
그녀는 이 씨에게 어떤 책을 제일 좋아하느냐고 물었고, 중학생 때 읽었던 이해인 수녀의 ‘두레박’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며칠 후 ‘두레박’을 다 읽어 6시간 짜리 CD로 녹음, 크리스마스 선물로 전해줬다.
이 씨는 너무 행복해 하며 CD를 다른 장애인들과도 나누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저작권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했다. 알음알음으로 이해인 수녀와 연락이 닿았고, 사연을 들은 수녀님은 그녀에게 자신의 저작권을 다 가져가라고, 다른 책도 줄테니 다 읽고 녹음해 달라고 했다한다.
아는 부부와 차를 타고 가다 색다른 경험을 했다. 폐지 줍는 할머니가 리어카를 끌고 가는 모습이 보이자 그들은 갑자기 차를 세웠다. 부랴부랴 차에서 내린 부부는 차 트렁크를 열고 빈 박스를 꺼내 할머니의 리어카에 실어주었다. 집에서 수거한 박스를 챙겨 두었다가 폐지 줍는 노인들을 만나면 전해준다고 설명했다.
허리가 구부러진 할머니는 수없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리어카를 끌고 사라졌다. “대단하다” 말했더니, 부부는 우리에겐 별 쓸모없지만 할머니에게 정말 소중하게 쓰이니 그게 더 감사하다고 했다.
어제 인터뷰한 임해철 씨의 사연〈광주일보 21일자 2면〉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심장이식 수술을 받고 두번째 삶을 살게 된 임 씨는 장기 기증 문화 확산을 바라며 가곡 CD를 냈다. 한데 예기치 않게도 음반을 받아든 이들에게서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다”는 전화가 왔다. 일부러 계좌번호를 묻는 이들도 많았다. 1만 원부터 십시일반 정성을 모으는 중이다.
애잔한 마음만 갖고 넘어갈 수 있건만 일일이 책을 읽고 녹음해 선물한 소유진, 선물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어한 이동우, 저작물을 흔쾌히 내어준 이해인 수녀. 거리의 노인들을 생각하며 빈 박스를 모으는 부부. 자신의 재능으로 고마움을 전한 임해철, 거기에 정성을 더한 평범한 사람들.
누군가를 배려하는 속깊은 작은 마음들이 모여 세상은 큰 ‘선물’을 받았다. 세 가지 일을 접하며 부끄러웠고, 세상은 참 아름답다는 생각도 들었다.
광주시 캐치프레이즈는 ‘더불어 사는 광주, 더불어 행복한 시민’이다. 시민운동가 출신 시장이 입성하면서 ‘광주 정신’도 많이 언급된다. 두 가지 모두 공동체를 위한 삶, 함께 나누고 배려하는 삶을 중시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민주·인권 도시를 표방하는 광주가 지향해야할 가치관으로 더 없이 훌륭하다.
한데 요즘 시도 때도 없이 언급되는 광주 정신에는 좀 피로감을 느낀다. 광주 정신이 자신들의 전매특허인 양 독점하려는 사람들, 광주 정신을 언급하며 오히려 그 가치를 훼손하는 사람들, 광주 정신을 만병통치약처럼 활용하려는 사람들, 실천 없이 그냥 ‘입버릇’처럼 외치기만 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묵묵히 나눔과 배려를 실천하는 ‘보통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광주 정신의 실행자들이다.
며칠 전 예술의 거리에서 러시아 람빠 극장의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를 관람했다. 착한 일을 해야 새로운 삶을 얻을 수 있는 할아버지가 한참 궁리를 하는 대목에서 할머니가 이런 대사를 한다. “천사는 모든 것을 기록하는데 왼쪽 어깨에는 나쁜 일을, 오른쪽 어깨에는 착한 일을 적어 내려간다. 영감은 나쁜 일을 많이 해서 왼쪽 어깨가 아래로 내려가 있다.”
속이 좀 뜨끔했다. 집에 돌아와 내 모습을 거울에도 한번 비춰봤다. 당신도 거울을 한번 들여다 보시라.
/mekim@kwangju.co.kr
그녀는 이 씨가 쓴 책에서 “책 읽기를 좋아하는데 시력이 나빠져서 속상하다”는 대목을 읽었다. “마흔이 넘어 굳어버린 손 때문에 점자를 배우기 어렵고 읽고 싶은 책은 오디오나 점자책으로 나오지 않아 속상하다”는 부분도 있었다.
그녀는 이 씨에게 어떤 책을 제일 좋아하느냐고 물었고, 중학생 때 읽었던 이해인 수녀의 ‘두레박’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며칠 후 ‘두레박’을 다 읽어 6시간 짜리 CD로 녹음, 크리스마스 선물로 전해줬다.
아는 부부와 차를 타고 가다 색다른 경험을 했다. 폐지 줍는 할머니가 리어카를 끌고 가는 모습이 보이자 그들은 갑자기 차를 세웠다. 부랴부랴 차에서 내린 부부는 차 트렁크를 열고 빈 박스를 꺼내 할머니의 리어카에 실어주었다. 집에서 수거한 박스를 챙겨 두었다가 폐지 줍는 노인들을 만나면 전해준다고 설명했다.
허리가 구부러진 할머니는 수없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리어카를 끌고 사라졌다. “대단하다” 말했더니, 부부는 우리에겐 별 쓸모없지만 할머니에게 정말 소중하게 쓰이니 그게 더 감사하다고 했다.
어제 인터뷰한 임해철 씨의 사연〈광주일보 21일자 2면〉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심장이식 수술을 받고 두번째 삶을 살게 된 임 씨는 장기 기증 문화 확산을 바라며 가곡 CD를 냈다. 한데 예기치 않게도 음반을 받아든 이들에게서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다”는 전화가 왔다. 일부러 계좌번호를 묻는 이들도 많았다. 1만 원부터 십시일반 정성을 모으는 중이다.
애잔한 마음만 갖고 넘어갈 수 있건만 일일이 책을 읽고 녹음해 선물한 소유진, 선물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어한 이동우, 저작물을 흔쾌히 내어준 이해인 수녀. 거리의 노인들을 생각하며 빈 박스를 모으는 부부. 자신의 재능으로 고마움을 전한 임해철, 거기에 정성을 더한 평범한 사람들.
누군가를 배려하는 속깊은 작은 마음들이 모여 세상은 큰 ‘선물’을 받았다. 세 가지 일을 접하며 부끄러웠고, 세상은 참 아름답다는 생각도 들었다.
광주시 캐치프레이즈는 ‘더불어 사는 광주, 더불어 행복한 시민’이다. 시민운동가 출신 시장이 입성하면서 ‘광주 정신’도 많이 언급된다. 두 가지 모두 공동체를 위한 삶, 함께 나누고 배려하는 삶을 중시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민주·인권 도시를 표방하는 광주가 지향해야할 가치관으로 더 없이 훌륭하다.
한데 요즘 시도 때도 없이 언급되는 광주 정신에는 좀 피로감을 느낀다. 광주 정신이 자신들의 전매특허인 양 독점하려는 사람들, 광주 정신을 언급하며 오히려 그 가치를 훼손하는 사람들, 광주 정신을 만병통치약처럼 활용하려는 사람들, 실천 없이 그냥 ‘입버릇’처럼 외치기만 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묵묵히 나눔과 배려를 실천하는 ‘보통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광주 정신의 실행자들이다.
며칠 전 예술의 거리에서 러시아 람빠 극장의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를 관람했다. 착한 일을 해야 새로운 삶을 얻을 수 있는 할아버지가 한참 궁리를 하는 대목에서 할머니가 이런 대사를 한다. “천사는 모든 것을 기록하는데 왼쪽 어깨에는 나쁜 일을, 오른쪽 어깨에는 착한 일을 적어 내려간다. 영감은 나쁜 일을 많이 해서 왼쪽 어깨가 아래로 내려가 있다.”
속이 좀 뜨끔했다. 집에 돌아와 내 모습을 거울에도 한번 비춰봤다. 당신도 거울을 한번 들여다 보시라.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