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광주관을 허(許)하라
박 진 현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
2014년 11월 12일(수) 00:00
37세의 짧은 삶을 살다간 인상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생전 ‘해바라기’를 많이 그렸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연상시키는 ‘해바라기’는 현재 런던 내셔널 갤러리, 뉴욕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 등 세계적인 미술관 5곳에 소장돼 있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던 고흐를 닮아서인지 이들 미술관에는 ‘해바라기’를 찾는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일본 도쿄에 자리한 세이지 미술관 역시 ‘해바라기’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곳이다. 말이 미술관이지 지난 1987년 손해보험사인 ‘손보 재팬’이 크리스티 경매에서 3900만 달러(약 400억 원)에 구입한 ‘해바라기’를 전시하기 위해 사옥 42층에 꾸민 갤러리다. 아시아권에서 ‘해바라기’를 관람할 수 있는 유일한 미술관이라는 후광효과로 지난해까지 약 1억 달러(1100억 원)에 가까운 입장료를 벌어들였다.

연간 1000만 명의 외국 관광객이 찾는 도쿄는 뉴욕이나 파리 못지않은 ‘예술의 도시’다. 그도 그럴 것이 국립근대미술관, 국립신미술관, 국립서양미술관, 모리미술관 등에 이르기까지 일본 근현대 미술과 서양미술사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미술관이 30여 개에 이른다. 특히 롯폰기 힐스의 모리미술관은 인근의 국립신미술관, 산토리 미술관을 연계한 ‘아트 트라이앵글’ 투어로 도쿄의 문화지형을 바꾸고 있다.

하지만 ‘아트 도쿄’의 강점은 차별화된 콘텐츠다. 고흐의 ‘해바라기’를 비롯해 고갱, 르느와르, 로댕, 피카소 등의 작품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지난 10월 기자가 찾은 국립서양미술관은 ‘베스트 오브 베스트’였다. 한 해 100여 만 명이 찾는 미술관의 핵심 콜렉션은 선박왕 출신 마스가타 고지로가 기증한 370점의 프랑스 근대 회화. 쿠르베, 밀레,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등 전시장에 내걸린 거장들의 작품이 진한 감동을 준다.

국립 서양미술관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 길, 문득 국립아시아문화전당(문화전당)에 장밋빛 미래를 걸고 있는 광주가 떠올랐다. 옛 전남도청 부지에 들어선 문화전당은 지난 2005년 첫 삽을 뜬 지 9년 만에 주요 4개 시설 공사를 마치고 오는 14일 준공을 앞두고 있다. 내년 3월까지 모든 시설이 완공되면 국내 최대 규모인 국립중앙박물관을 뛰어 넘는 매머드 복합문화시설의 위용을 드러내게 된다. 바야흐로 문화로 도시의 미래를 바꾸는 새 역사를 쓰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유례없는 빅 프로젝트의 탄생을 앞둔 광주는 기대 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크다. 동시대 아시아 문화예술의 창조플랫폼을 내건 일부 콘텐츠가 ‘손에 잡히지 않는’ 탓도 있지만 문화전당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광주 미술 인프라의 볼거리가 너무 빈약해서다.

2000여 점의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는 광주시립미술관의 경우 국내외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는 작품들은 많지 않다. 이 때문에 수년 전 지역 미술계를 중심으로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을 유치해 퀄리티 높은 컬렉션을 활용하자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미술관 부지와 ‘형평성’ 등을 내세운 문광부의 부정적인 입장으로 ‘없던 일’이 됐다. 최근 도시재생 차원에서 옛 연초제조창에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을 유치해 ‘탄력’을 받은 청주시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사실 문화전당을 찾은 방문객들이 광주에 머물도록 하려면 주·야간의 다양한 볼거리가 넘쳐나야 한다. 특히 낮시간대에 즐길 수 있는 콘텐츠는 대부분 전시와 연관이 있는 만큼 문화전당 인근에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미술 인프라들이 들어서야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광주 분관 카드를 다시 꺼내들어야 하는 이유다. 분관 유치의 전제조건인 미술관 부지는 문화전당과 가까운 중앙초교나 지난 1913년 세워진 충장로 우체국을 ‘강추’한다.

특히 충장로 우체국의 경우 최소한의 우편·금융 업무를 제외한 공간 대부분이 현재 민간업체에 임대된 상태다. 광주의 근현대사를 간직하고 있는 장소성을 살리기 위해선 문화시설로 공간에 활력을 불어 넣는 문화적 재생이 필요하다는 게 지역 건축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와 관련 최근 취임한 조진호 광주시립미술관장 역시 문화전당 인근에 시립미술관과 같은 인프라를 ‘입점’시켜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한다고 언급했다. 마치 도쿄의 ‘아트 트라이앵글’처럼 큰 틀에서 문화전당과 ‘윈윈’ 할 수 있는 전략을 고민할 때인 것이다.

현대미술관 분관에 부정적인 문광부를 설득하기 위해선 (필요할 경우) 윤장현 광주시장이 직접 광주 유치의 당위성을 설득시키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문화전당이야말로 ‘청주 연초제조창’보다 잠재력이 큰 도시재생 프로젝트이지 않은가.

내년 9월 개관하는 문화전당은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시설이다. 문화전당이 희망을 전파하는 문화발전소가 되기 위해선 ‘문화전당 밖’의 콘텐츠도 함께 준비돼야 한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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