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계절, 광주는 우울하다
김 미 은
문화1부장
문화1부장
땀을 뻘뻘 흘리며 목이 터져라 환호하는 아이들은 행복해 보였다. 지난 8월 말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광주청소년페스티벌 현장. 또래 그룹사운드와 댄싱팀들 공연에 열광하며 춤추는 아이들은 그 순간만큼은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했다.
며칠 후 열린 얼쑤의 ‘판+굿’ 축제 현장. 털털거리는 오토바이에 뻥튀기 기계가 실려 들어오고, 개막을 알리는 ‘뻥’이요 소리에 환호성도 함께 터졌다. 뻥튀기를 나눠 먹으며 함께 공연을 즐기는 사람들. 축제의 주인공은 진정 관객이었다. 관객들은 무대 앞 마당에서 뛰고, 놀고, 춤췄다. 꼬마들 손에 이끌려 함께 나온 어른들도 격식을 차리지 않고 환호했다.
전남대에서 열린 월드뮤직 페스티벌은 한밤의 행복한 축제였다. 가수 하림, 집시 밴드와 함께 프랑스로, 아일랜드로 여행을 떠났다. 아프리카 밴드 ‘모쿰바’는 노래하고, 연주하고, 춤추며 한시도 쉬지 않는 에너지를 과시했다.
페스티벌을 더욱 빛낸 건 바로 관객들이었다. 무대 앞을 떠나지 않고 스탠딩 관람한 열혈 관객들은 물론이고, 잔디밭에 삼삼오오 모여 앉은 관객들까지 함께 어우러져 초가을 밤의 추억을 만들었다. 문화는 진정 즐기는 자의 것. 마음껏 발산하며 내지르는 축제 현장의 그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8월과 9월 광주는 온통 축제 물결이다. 세계아리랑축전, 정율성음악축제 등 또 다른 축제도 대기 중이다. 한데, 흥겨운 축제로 넘실대는 광주가 꼭 즐거워보이지만은 않는다. 언제부턴가 문화계에 우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진 게 아닌가 우려했는데 몇가지 사건이 겹치면서 자꾸 확신이 들려한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서 벌어졌던 북한 인공기 사건은 너무 황당했다. 발단은 22억 원을 지원하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작품이 행사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을 시에 전달하면서 부터다. 시는 즉각 이를 재단과 예술감독에게 전했고, 재단 측은 작품을 철거했다가 논란이 일자 하루만에 다시 설치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의견은 논할 가치도 없다. 내년 예산 확보에 대한 우려가 깔린 결정일지도 모르지만, 광주시의 일차원적 대응은 몰상식하다. 논리없는 ‘색깔론’에 함께 박자를 맞춘 셈이니 난감하기 짝이 없다.
바로 며칠 전 북한 청소년들을 초청해 유니버시아드 관련 행사를 치르며 ‘남북화해’를 외치지 않았던가. 남북한이 함께 쓸 단일기를 제작하는 컨셉인데, 인공기를 활용하는 건 가장 자연스러운 발상이 아닌가. 적극적인 설득의 과정이 있었는지도 궁금하다.
소년소녀합창단의 체 게바라 셔츠 문제도 마찬가지다. 광주지방보훈청장이 문제 제기를 했다 해서 시 책임자가 사건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고민도 없이, 중징계 운운한 것은 눈치 보기(정부·시장), 무소신, 과도한 염려증에서 기인한 게 아닐까.
두 사건은 광주시 문화정책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그대로 보여준 것 같아 씁쓸하다. 입버릇처럼 말하는 예향,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민주·인권·평화 도시 이런 게 다 ‘구호’에 머무르고 있다는 자조감도 든다.
얼마 전 광주영화제 조직위원회에서 날아온 보도자료를 보고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물론 국비와 시비 지원 없이 수년 동안 어렵게 행사를 꾸려온 주최측은 시의 지원을 받게 된 데 안도했을 것이다. 2014년을 도약의 해로 삼은 상황에서 내년 예산 문제도 고려됐을 터이다.
하지만 광주시 찬양이 담긴 보도자료는 어이가 없었다. 행여 자료가 서울의 영화 전문잡지나 중앙 일간지에도 뿌려졌을까 낯뜨거웠다. 영화제 개막식 행사에서도 시장의 ‘긴 인사말’을 통해 광주시가 부산을 제치고 수출 증가 1위, 일자리 창출 1위라는 자화자찬을 들어야했다.
광주문화재단에서 받은 메일은 또 어떤가. 난데없이 세계수영선수권 서류위조 사건과 관련된 신문 칼럼이 담긴 메일을 받았다. 이 메일이 언론사에만 전해졌는지, 재단 메일링 서비스를 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졌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문화’와 무관한 내용을 광주시체육회도 아니고, 대표 문화기관이 보내다니…. 할 말이 없었다.
요즘 걱정되는 건 이거다. 문화단체·기관·예술가들의 자승자박. 사업비를 대는 ‘관’에 지나치게 저자세로 일관하는 것 말이다. 언제부턴가 각종 지원금이 투입된 공연이나 전시를 볼 때면 불편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 본인들이 낸 세금을 정당한 절차를 밟아 지원받는 것임에도, 관에 심하게 휘둘리는 건 창작에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짓이다.
슬프게도 ‘색깔론’ 등 광주를 둘러싼 분위기는 좀처럼 바뀌지 않을 것이다. 외부 시각에 대해 비난하고 성토하기 전에, 광주 스스로 떳떳한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과연, 우리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
/mekim@kwangju.co.kr
며칠 후 열린 얼쑤의 ‘판+굿’ 축제 현장. 털털거리는 오토바이에 뻥튀기 기계가 실려 들어오고, 개막을 알리는 ‘뻥’이요 소리에 환호성도 함께 터졌다. 뻥튀기를 나눠 먹으며 함께 공연을 즐기는 사람들. 축제의 주인공은 진정 관객이었다. 관객들은 무대 앞 마당에서 뛰고, 놀고, 춤췄다. 꼬마들 손에 이끌려 함께 나온 어른들도 격식을 차리지 않고 환호했다.
페스티벌을 더욱 빛낸 건 바로 관객들이었다. 무대 앞을 떠나지 않고 스탠딩 관람한 열혈 관객들은 물론이고, 잔디밭에 삼삼오오 모여 앉은 관객들까지 함께 어우러져 초가을 밤의 추억을 만들었다. 문화는 진정 즐기는 자의 것. 마음껏 발산하며 내지르는 축제 현장의 그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서 벌어졌던 북한 인공기 사건은 너무 황당했다. 발단은 22억 원을 지원하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작품이 행사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을 시에 전달하면서 부터다. 시는 즉각 이를 재단과 예술감독에게 전했고, 재단 측은 작품을 철거했다가 논란이 일자 하루만에 다시 설치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의견은 논할 가치도 없다. 내년 예산 확보에 대한 우려가 깔린 결정일지도 모르지만, 광주시의 일차원적 대응은 몰상식하다. 논리없는 ‘색깔론’에 함께 박자를 맞춘 셈이니 난감하기 짝이 없다.
바로 며칠 전 북한 청소년들을 초청해 유니버시아드 관련 행사를 치르며 ‘남북화해’를 외치지 않았던가. 남북한이 함께 쓸 단일기를 제작하는 컨셉인데, 인공기를 활용하는 건 가장 자연스러운 발상이 아닌가. 적극적인 설득의 과정이 있었는지도 궁금하다.
소년소녀합창단의 체 게바라 셔츠 문제도 마찬가지다. 광주지방보훈청장이 문제 제기를 했다 해서 시 책임자가 사건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고민도 없이, 중징계 운운한 것은 눈치 보기(정부·시장), 무소신, 과도한 염려증에서 기인한 게 아닐까.
두 사건은 광주시 문화정책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그대로 보여준 것 같아 씁쓸하다. 입버릇처럼 말하는 예향,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민주·인권·평화 도시 이런 게 다 ‘구호’에 머무르고 있다는 자조감도 든다.
얼마 전 광주영화제 조직위원회에서 날아온 보도자료를 보고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물론 국비와 시비 지원 없이 수년 동안 어렵게 행사를 꾸려온 주최측은 시의 지원을 받게 된 데 안도했을 것이다. 2014년을 도약의 해로 삼은 상황에서 내년 예산 문제도 고려됐을 터이다.
하지만 광주시 찬양이 담긴 보도자료는 어이가 없었다. 행여 자료가 서울의 영화 전문잡지나 중앙 일간지에도 뿌려졌을까 낯뜨거웠다. 영화제 개막식 행사에서도 시장의 ‘긴 인사말’을 통해 광주시가 부산을 제치고 수출 증가 1위, 일자리 창출 1위라는 자화자찬을 들어야했다.
광주문화재단에서 받은 메일은 또 어떤가. 난데없이 세계수영선수권 서류위조 사건과 관련된 신문 칼럼이 담긴 메일을 받았다. 이 메일이 언론사에만 전해졌는지, 재단 메일링 서비스를 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졌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문화’와 무관한 내용을 광주시체육회도 아니고, 대표 문화기관이 보내다니…. 할 말이 없었다.
요즘 걱정되는 건 이거다. 문화단체·기관·예술가들의 자승자박. 사업비를 대는 ‘관’에 지나치게 저자세로 일관하는 것 말이다. 언제부턴가 각종 지원금이 투입된 공연이나 전시를 볼 때면 불편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 본인들이 낸 세금을 정당한 절차를 밟아 지원받는 것임에도, 관에 심하게 휘둘리는 건 창작에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짓이다.
슬프게도 ‘색깔론’ 등 광주를 둘러싼 분위기는 좀처럼 바뀌지 않을 것이다. 외부 시각에 대해 비난하고 성토하기 전에, 광주 스스로 떳떳한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과연, 우리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
/mekim@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