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만 꾸는 여행자에게
2013년 07월 24일(수) 00:00
“아마도 (파리여행은)이번이 마지막일지 모른다. 내가 죽어갈 때 오늘 본 잔상이 떠오를 것 같다.”

팔순을 앞둔 노(老) 탤런트 신구(78)는 파리 에펠탑과 샹젤리제거리를 둘러보고 만감이 교차한 듯 나지막하게 말한다. 그의 말 속에는 젊은 시절 먹고 살기에 바빠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다가 (가볼 만하니까)어느새 나이가 들어버린 것에 대한 회한이 짙게 배어있다.

‘할배’ 4인방 이순재(80), 신구(78), 박근형(74), 백일섭(70)과 ‘짐꾼’ 이서진(43)의 유럽 배낭여행기를 다룬 케이블채널 tvN ‘꽃보다 할배’의 이야기다. 이달초 첫선을 보인 ‘꽃보다 할배’는 케이블 TV로는 대박에 가까운 4.5%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몰이중이다.

하지만, 프로그램 제목과 달리 할배들의 유럽 여행은 ‘꽃놀이’와는 거리가 멀다. 젊은이에게 여행은 낭만이지만 노인들에겐 위험이란 말처럼 고난의 행군, 그 자체다. 팍팍한 다리를 이끌고 무거운 짐을 끌거나 ‘10년 동안 걸을 만한’ 거리를 하루종일 걷고 또 걷는다. 비좁은 숙소와 입에 맞지 않는 음식도 ‘물 설고 낯선’ 타국에선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여행을 떠난 순간 이런 불편과 고행쯤은 각오했던 것이다.

자칫 재미라고는 없을 것 같은 할배들의 고된 여정이 화제를 모으는 건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진솔한 일상의 모습 때문이다. 최고령 카리스마를 지닌 이순재, 따뜻하고 다정한 신구, 무심한 듯 할배들을 챙기는 박근형, 떼쟁이 막내 백일섭이 낯선 여행지에서 맞닥뜨리는 불편과 위험을 (서로 배려하며) 극복해가는 과정이 시청자들에게 감동과 웃음을 주고 있는 것이다.

여행의 매력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익숙하고 편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진짜 세상의 한복판에서 온전히 자신과 ‘만나는’ 것 말이다. 그로 인해 힘들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들과 부딪혀가면서 새로운 자신감과 삶의 활력을 되찾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게 막상 실천에 옮기기가 쉽지 않다. 길을 떠난다는 것 자체가 철저한 계획과 정신적·물질적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늘 꿈만 꾸는 여행자로 살아가는지 모르겠지만.

모처럼의 여름 휴가, 이번엔 망설이지 말고 잠시 일상에서 훌훌 벗어나 보면 어떨까. 시원한 계곡이건, 바다 건너 외국이건, 아니면 한적한 시골이건 상관없다. 우리에겐 ‘꽃보다 할배’ 들이 부러워하는 젊음이 있지 않은가.

〈편집부국장 겸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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