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진화는 계속된다, 쭈욱
2010년 03월 15일(월) 00:00
지난 2002년 3월, 담양에 거주하는 한국화가 윤남웅은 ‘사고’를 쳤다. 5일에 한 번씩 장이 서는 담양 창평시장의 한 골목에서 전시회를 연 것이다. 장소는 비릿한 고기냄새와 왁자지껄 입담으로 가득한 국밥집이었다. 전시회 하면 화려한 전시장을 떠올리는 보통 사람들에겐 쇼킹 그 자체였다. 아니나 다를까. 전시회 소식을 들은 지인들은 “그림에 ‘그’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무슨 전시회냐”고 못마땅해 했다.

하지만 전시회는 이런 기우를 깨고 대박을 냈다. 아침 일찍 가게 문이 열리자 마자 손님들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며칠 전부터 국밥집에서 전시회가 열린 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호기심에 들른 사람들이었다. 순박한 시골 사람들의 애환을 화폭에 옮겨놓은 윤씨의 그림을 접한 손님들은 마치 자신이 작품의 주인공인냥 신기해했다. 그림은 고상한 곳에서 ‘특별한’ 사람들이나 즐기는 ‘사치’라고 생각했던 이들에게 ‘국밥집 전시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평소 먹고 사는 데 바빠 전시장과는 담을 쌓고 살던 상인들 역시 윤씨의 ‘깜짝이벤트’에 즐거웠다. 매상이 2∼3배로 오른 탓도 있지만 벽면에 내걸린 ‘작품’들이 왠지 어수선했던 식당분위기를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5일 간격으로 한달간 계속된 윤씨의 전시회는 이후 뜻을 같이하는 작가들이 참가하면서 제2, 제3의 ‘창평국밥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2006년 4월 말바우 시장에서 열린 ‘국밥에 담긴 그림전’이 대표적인 예다. 이번엔 박수만, 박문종, 전현숙 등 10여 명의 청년작가들이 의기투합해 일을 벌였다. 쓸쓸한 장날의 풍경을 예술적 터치로 재현한 그림과 사진 이외에 퍼포먼스와 공연행사들까지 볼거리가 많아졌다. 한 작가는 국밥집에 홀로 앉아 텁텁한 막걸리를 한잔 걸치는 중년 아저씨의 축 처진 어깨를 소재로 그림을 그렸고, 다른 작가는 백열등 전등 뒤에 걸려 있는 선술집의 메뉴표와 달력을 캔버스로 끌어 들였다.

창평국밥 프로젝트는 대인시장에서 꽃을 피웠다. 지난 2008년 제7회 광주비엔날레 ‘제안’섹션의 복덕방 프로젝트 무대였던 대인시장은 예술인들의 상상력과 상인들의 참여가 한데 어우러져 새로운 예술공간으로 변신했다. 비엔날레가 끝난 지 2년이 지났지만 30 여명의 작가들이 이곳에 입주해 작업중이다. ‘시장 안으로 들어온 작가’ 들 덕에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고, 상인들도 이웃점포에 둥지를 튼 예술가들과 동거동락 하며 ‘예술’에 눈을 떠가고 있다. 대인시장은 쇠락해가는 재래시장의 재생모델로 전국 각지에서 벤치마킹이 될 정도다.

최근 광주 남구 무등시장이 문화체육관광부의 ‘문전성시 시범사업’에 선정됐다. 쇠퇴해가는 전통시장의 멋과 정취를 살리기 위한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무등시장은 내년 말까지 사업비 4억원을 지원받아 문화활력거점 지역으로 거듭난다.

이제 시장은 매매(賣買)의 공간이 아니라 사람과 예술이 만나는 ‘소통’의 장으로 진화중이다. 창평국밥 프로젝트, 대인시장 복덕방 프로젝트는 톡톡튀는 예술적 발상을 보여준 사례다. 무등시장이 우리들에게 또 어떤 마법을 보여줄 지 궁금하다.

/문화생활부장·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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