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미술관을 소개합니다] 구상화단 거장 60년 화업…문화불모지에 ‘예술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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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미술관을 소개합니다] 구상화단 거장 60년 화업…문화불모지에 ‘예술 향기’
[ 무안군 오승우 미술관]
오지호 화백 장남…한국적 근원 탐구 등 추구
연고 없는 무안에 작품·서적 등 1000여점 기증
‘백산 시리즈’·‘동양의 원형’ 등 대표작 망라
상설전 1년간 4회·기획전 등 개최
색깔있는 기획전 통해 젊은 작가 활동 지원
2025년 04월 08일(화) 08:00
지난 2021년에는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오지호와 오승우, 그리고 남도 구상화단의 맥’ 특별전이 열렸다.
광주에서 자동차를 타고 목포방향으로 가다 보면 ‘무안군 오승우미술관’(무안군 삼향읍 초의길 7, 오승우미술관)이라는 이정표가 눈에 띈다. 네비게이션을 따라 좁은 길에 들어서면 목적지인 미술관이 아닌, 한적한 시골 풍경이 펼쳐진다. 안쪽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자 어린 시절 초등학교를 연상케 하는 2층 규모의 아담한 건물이 보인다. 짙은 갈색의 외관과 모던한 디자인이 인상적인 오승우 미술관이다.

“30년간 함께 웃고 울었던 피붙이 같은 그림들입니다. 딸 시집 보낼 때 보다 더 서운한 마음으로 작품을 기증했지만 누구든지 마음껏 즐길 수 있다면 저 또한 행복할 것입니다.”

지난 2011년 2월 오승우 미술관의 정식개관을 앞두고 광주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오승우(1930~2023)화백이 밝힌 소회다. 한국서양화단의 선구자인 고 오지호 화백(1905~1982)의 장남이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었던 그는 사회공헌일환으로 무안군에 작품을 기증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연고없는 무안에 작품 179점 기증

당시 그는 60여년 간 그려온 작품 가운데 179점과 관련서적 500권, 화구 등 미술품 1000여점을 조건없이 건넸다. 그러면서 기쁘고 행복하다고 했다. 이같은 오 화백의 통큰 기증에 무안군은 그의 이름을 딴 ‘무안군 오승우 미술관’을 건립해 지역문화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만 해도 무안군은 변변한 전시공간 하나 없는 문화불모지였기 때문이다. 57억 원을 들여 군민들을 위한 문화향유의 장을 만든 무안군의 도전은 많은 지자체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실, 농촌지역인 무안군에 번듯한 미술관이 들어서게 된 건 순전히 오 화백의 작품기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화순 출신으로 타향인 무안에 자신의 대표작들을 흔쾌히 내놓은 데는 1983~1993년까지 10년간 한국을 대표하는 구상미술그룹 ‘목우회’를 이끄는 등 남도화단에 대한 그의 남다른 열정이 있었다.

그가 기증한 컬렉션에는 ‘십장생도’ 연작 60여 점과 ‘백산시리즈’, ‘동양의 근원’ 연작 등 30년 동안 보관했던 대표작들이 다수 망라됐다. 그 시절, 오 화백의 작품 가격이 호당 50∼100만원에 거래된 점을 감안하면 약 100억원대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지난 2009년 완공을 앞둔 미술관은 명칭을 둘러싼 논란에 휩싸여 개관이 늦어지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지역 예술인과 일부 군의원들이 지역과 무관한 특정작가의 이름을 미술관 간판으로 내걸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다행히 지역연고가 없는 작가들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건립해 문화명소로 키우고 있는 타 지자체의 사례를 벤치마킹하면서 지난 2011년 2월 역사적인 개관을 하게 됐다.

무안군 오승우 미술관 전경.
◇지하 1층, 지상2층 모던한 디자인 눈길

그래서일까. 미술관 로비에 들어서자 벽면에 내걸린 오 화백의 대형 흑백사진이 유독 시선을 잡아끈다. 우여곡절끝에 탄생한 미술관이어서인지 검정색 선글라스 너머로 그의 치열한 예술혼이 새삼 와닿는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진 미술관(2,744㎡)은 제1전시실(444.86㎡)와 카페테리아, 아트숍, 제2전시실(285.12㎡), 제3전시실(301,86㎡), 비디오 영상실로 꾸며져있다. 1층의 제1전시실은 주로 오 화백의 기증작들을 상설로 전시하는 공간이다.

널찍한 규모의 전시실에 들어서면 오 화백의 화업을 조망할 수 있는 대표작들이 3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전시돼 있다. 마치 한편의 대서사시를 펼쳐 놓은 듯 관람객들을 색채의 향연으로 빨아 들인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한국의 백산(百山)’ 시리즈다. 불상, 고궁, 전통, 사찰 등 한국적 근원에 대한 탐구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추구해온 고인의 대표작은 1983년부터 1995년까지 전국 130여개의 산을 직접 올라 완성한 ‘백산 시리즈’다. 백두산, 한라산, 무등산, 월출산, 설악산 등의 명산을 찾은 그는 담대한 선과 화사한 색채를 통해 변화 무쌍한 산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냈다.

◇연중 4회 상설전과 기획전 개최

백산 시리즈를 지나면 이국적인 분위기의 ‘동양의 원형’이 관람객을 맞는다. 1990년대 그려진 동양의 원형 연작은 마치 화면에서 붉은 불이 뿜어져 나오는 듯한 색채의 기운이 압도적이다. 외국의 사원과 궁전이 중심이 된 동양의 원형은 거대한 중원의 문명과 찬란한 역사를 유감없이 기록한 것으로 그 어떤 역사적인 아카이브 보다 생생한 감흥을 안긴다.

특히 종교 건축에 관심을 가진 오 화백은 생전 서양의 문명에 뒤지지 않는 동양의 정신문화에 큰 감화를 받았다고 한다. 수차례의 심신 순례를 통해 인도, 중국, 일본, 태국, 라오스,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의 사찰과 유적지, 탑 등을 답사한 후 이들의 기운과 정신을 캔버스에 고스란히 옮겼다.

1층 전시실의 마지막은 십장생도가 장식한다. 오승우의 십장생은 인간의 유한의 한계에 대한 무한 욕망의 상상력으로 설정된 사물과 동물 등을 소재로한 장수의 사상이 담겨있다.

2층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박유석 작가의 작품 ‘회귀’.
◇카페테리아, 아트숍 등 부대시설 갖춰

2층으로 올라가면 특별전과 기획전이 열리는 2개의 전시실이 있다. 오승우 미술관의 색깔은 1층 상설전시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제와 장르의 작품들을 선보이는 기획전에서도 잘 드러난다. 2025년 첫 기획전으로 열리고 있는 장애예술가 초대전 ‘너의 세계에 다른 우주를 여는 나의 감각’은 공립미술관으로서의 역량을 잘 보여준다.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 장애를 겪고 있는 두 작가의 작품을 통해 비장애인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또 다른 우주를 경험할 수 있는 뜻깊은 자리다. 어릴 적 교통사고로 시각과 청각 장애를 갖게 된 김근태 작가는 고하도의 공생원에 수용된 중증 발달장애인을 평생의 화두로 삼았다. 100호 캔버스 77점을 연결한 100m의 캔버스를 악보로 삼아 발달장애인을 음표로 형상화한 ‘들꽃처럼 별들처럼’ 대작으로 2020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받았다.

박유석 작가는 어린 시절 태양 빛을 오래 바라보면 생기는 잔상놀이를 하다가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하지만 이 경험은 오히려 그의 독특한 작업 모티브가 되었고, 빛을 이용한 무빙 이미지와 사운드, 건축적 요소가 어우러져 관람객에게 내면의 감정에 몰입할 수 있게 한다.

1년에 4차례의 상설전과 기획전을 진행하는 오승우 미술관은 개관 10주년 기념 특별전 ‘오지호와 오승우, 그리고 남도 구상화단의 맥’(2021년)을 개최해 전국의 미술애호가들을 무안으로 불러 들였다. 또한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기념전 ‘상상적 기표-선으로부터’ 무안분청 기획전 ‘긴호흡으로 만든 사이로 걷기’(2022년), ‘세상의 모든 것, 만다라 혹은 모나드’(2023년), 박광진 화백 기증전 ‘자연의 소리’(2024년) 등 수십여 차례의 기획전과 초대전을 열어 서남권의 문화발신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오승우 미술관 박현화 관장은 “광주 등 대도시에 비해 접근성이 떨어지지만 광주비엔날레, 전남수묵국제비엔날레 등 대형 미술이벤트 기간이나 축제 계절에는 미술관의 차별화된 컬렉션과 기획전을 관람하기 위해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한다”면서 “미술을 쉽게 접하기 힘든 지역민들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미술학교’와 일선 학교와 연계한 ‘내 학교에서 만나는 우리 박물관’ 등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문화 향유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사진=박진현 기자, 무안군 오승우 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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