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다정한 거인 - 남종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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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다정한 거인 - 남종영 지음
‘고래’는 어떻게 기후변화 해결사가 되었나
2024년 10월 11일(금) 00:00
다음은 어떤 생물인가. 16~17세기 과학혁명 이전 세상 끝에 살던 외로운 괴수였다. 광활한 바다 여백을 채워 넣을 때 그리는 상상물이었다. 때론 인간과 감정을 주고받기도 했다.

바로 고래다. 지난 한 세기에 걸쳐 고래와 돌고래만큼 인간이 바라보는 관점이 현저히 바뀐 생명체는 없다. 당초 바다의 괴수로 여겨졌던 고래는 경제적 자원으로 인식돼 포획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 환경 의식 제고와 자연을 소비하는 방식 변화는 고래에 대한 시각을 변모시켰다.

바다에 사는 고래는 오랜 이웃이자 평화를 부르는 생명체다. <곰출판 제공>
오늘날 고래는 당당한 ‘권리의 주체’로 인정받고 있다. 고래가 권리의 주체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를 전후해서였다. 특히 범고래 틸리쿰 사건은 수족관의 비인도주의에 대중이 분노를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어릴 때 잡혀 온 틸리쿰이 세계 최대 시월드 수족관에서 쇼를 하다가 인간을 습격을 해 3명이 죽음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수족관의 비인도주의에 대한 비판적 연론이 확산됐다. 프랑스, 캐나나, 스위스 등에서는 수족관에 돌고래 신규 도입, 번식을 제한하는 조치가 잇따랐다.

사실 고래는 오랫동안 다양한 문화권의 신화나 전설 주인공이었다. 이누이트의 여신 세드나 전설, 구약성경 ‘요나서’, 신드바드의 모험, 피노키오 이야기 등에 고래가 등장한다.

바다에 사는 오랜 이웃이자 평화를 부르는 생명체인 고래를 조명한 책이 나왔다. 환경저널리스트 남종영 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이 펴낸 ‘다정한 거인’은 인간과 고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남 소장은 기후 변화로 고통받는 인간과 동물을 기록한 ‘지구 종단 3부작’ 시리즈의 저자이자 돌고래쇼를 하던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를 바다로 돌아가게 한 기사로 주목을 받았다.

저자는 “고래에 대한 역사를 새로 써야할 때가 됐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불과 10여 년 만에 고래는 경제와 문화 그리고 법률에서 다른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며 “책은 고래의 생태적 지식을 토대로 고래와 인간 관계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다룬다”고 했다.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돼 있다.

먼저 1부 ‘고래의 탄생’은 어류인지 포유류인지를 다룬다. 19세기 후반 조르주 퀴비에는 고래가 포유류라는 사실을 확정했다. 과학자들은 고래와 육상 포유류와의 3가지 유사점을 발견했다. 허파로 호흡하고 한 쌍의 가슴지느러미 뼈가 포유동물 팔과 다리와 유사하다. 또한 호랑이가 척추를 움직여 달리듯 상하 반동을 매개로 나아간다.

또한 생태적인 부분도 다룬다. 고래의 교미는 배와 배를 접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혹등고래는 서서 교미한다. 암컷과 수컷은 꼬리지느러미를 이용해 물속에서 배를 맞댄다. 이때 수컷의 정자가 암컷 자궁으로 들어간다. 귀신 고래는 교미할 때 제3자 도움을 받는데 두 고래가 배를 맞대고 떠 있을 때, 아래에는 고래 한 마리가 이를 떠받친다.

2부 ‘작살을 피해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상업포경시대를 정리한다. 바스크족의 연안해경부터 시작해 20세기 남극에 공장식 포경선을 투입한 사례까지 담아낸다. 예로부터 프랑스 서안과 스페인 이베리아 반도 위쪽에 자리한 비스케이 만에는 긴수염고래가 출몰했다. 피레네 산맥의 목동이었던 바스크족은 타고난 장산꾼이었다. 이들은 연안에 긴수염고래가 출몰한 것을 알고 양털 조끼를 벗고 작살을 잡았다.

17세기 초반 영국과 네덜란드는 북경 포경에 열을 올렸다. 특히 19세기 영국 포경의 중심지 킹스턴어폰헐에는 화가들이 모여 고래잡이 풍경을 그리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다.

런던자연사박물관의 고래골격(왼쪽) <곰출판 제공>
제3부 ‘살아 있는 고래가 돈을 버는 시대’는 1980년대 이후 고래 산업 체제의 변환, 환경운동의 대응을 살핀다. 죽은 고래보다 산고래가 이득이 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고래관광 산업이 활성화됐다.

제4부 ‘권리의 주체, 그리고 기후변화의 해결사’에서는 권리의 주체로 부상한 고래를 조명한다. 2010년대 들어 수족관산업은 막을 내리고 감금된 돌고래가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바다쉼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자는 “과학의 발전은 인간의 고래에 대한 앎을 확장하고 있으며 고래의 권리에 대한 논의는 그들의 행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고 언급한다. <곰출판·2만9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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