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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박해(丁亥迫害) - 박성천 문화부장
2024년 04월 28일(일) 21:30
정해박해(丁亥迫害)는 1827년(순조 27년) 정해 년에 있었던 천주교 박해를 일컫는다. 전남 곡성을 시발로 경상도, 충청도, 한양에까지 사건이 파급돼 많은 신자들이 투옥되거나 죽임을 당했다. 이보다 앞서 1801년(순조 1년)에는 조선왕조의 대대적인 천주교 박해인 신유박해(辛酉迫害)가 있었다. 당시 노론 강경파들은 정조 통치기에 급부상했던 남인계 인사들이 천주교에 직·간접으로 연루된 정황을 빌미 삼아 탄압을 가했다.

신유박해 이후 천주교 신자들은 전국의 산간벽지로 흩어졌다. 당시 곡성에까지 숨어 들었던 신자들은 교우촌을 일구며 신앙생활을 지켜간다. 그러나 교우촌에서 사소한 다툼이 발생했는데,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만다. 누군가 관아에 밀고를 했고 안타깝게도 500여명 신자들이 투옥되거나 고문을 당한다.

얼마 전 정해박해를 다룬 김탁환 작가의 장편 ‘사랑과 혁명’(전 3권·해냄)이 제27회 가톨릭문학상 본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바 있다. 오랫동안 잊혀진 역사였던 정해박해를 소설로 쓰게 된 데 대해 김 작가는 “소설가라면 신과 인간의 문제는 중요한 화두 가운데 하나다”며 “곡성과 인연을 맺으며 ‘정해박해’를 알게 됐는데 언젠가 소설로 형상화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2018년 곡성과 첫 인연을 맺고 2021년 귀촌한 김 작가에게 ‘사랑과 혁명’은 의미있는 작품이다. KIST 등 대학교수로 재직하며 줄곧 글쓰기와 문학을 가르쳤던 그가 곡성에 터를 잡게 된 것은 생태문제 때문이었다. 섬진강과 보성강 등 자연환경이 좋은데다 생태활동이 활발한 곳에서 글농사와 논농사를 일구며 ‘가장 알맞은 삶’을 추구하고 싶었던 것이다.

곡성성당은 1958년 정해박해 진원지 옥터성지에 지어졌다. 특히 김 작가의 텃밭이 딸린 집이 성당 바로 뒷마당과 이웃하고 있다는 사실은 사뭇 이채롭다. 박해가 있는 곳에는 늘 그렇듯 ‘도도한 혁명’과 ‘민중의 사랑’이 있는 법이다. ‘다른 세상을 꿈꿨다’는 이유로 죽거나 투옥돼야 했던 시절은 야만의 시대다. 그런 시대가 다시 오지 말란 법이 없다.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