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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활동과 도시의 기회 - 노경수 광주대 도시·부동산학과 교수
2024년 03월 25일(월) 00:00
요즘 MZ세대들은 상상할 수도 없겠지만, 일제 강점으로부터 해방되던 1945년 미군정 이후 37년간 유지되었던 야간통행금지법으로 밤 12시가 되면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와 함께 도시는 정적의 암흑세계가 되었다. 개인의 활동을 시·공간적으로 제약한다는 비판을 받아 온 이 금지조치는 88서울올림픽 개최 결정을 계기로 1982년 해제되었다. 그 이후 경제·산업분야에서 기대 이상의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확연히 구별되는 생활패턴 중에서 ‘밤 문화’는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크게 변화하였다. 야간활동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회식·음주문화’는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시행한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각종 모임이 금지되면서 급격하게 감소했다.

2022년 코로나19가 물러간 이후 한때 경기가 살아나는 듯하였다. 그러나 이미 사람들의 조기 귀가 패턴이 일상화되면서 밤 9시 이전에 식당을 비롯한 상가들의 간판 불도 꺼졌다. 통행인도 뜸해진 한산한 거리에는 자동차마저 드문드문 지나다닌다. 게다가 고금리와 고물가에 따른 경기 침체까지 겹치면서 ‘임대’가 나붙은 상점들이 점점 더 많이 눈에 띈다. 이 황량한 거리 풍경과 함께 요즘 자주 등장하는 ‘지방소멸’, ‘저출산’ 등이 겹쳐지면서 ‘이러다가 우리나라, 우리 지역이 망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과 두려움이 문득문득 느껴진다.

세계 선진도시들은 밤을 도시의 활성화 전략에서 핵심 요소로 중시한다. 또한 ‘24시간 도시를 위한 정책(Policy for the 24 Hour City)’을 추진하면서 낮과 밤의 활동 경계가 점차 흐려지고 있다. 런던, 암스테르담, 시드니, 뉴욕 등의 도시들은 야간 시장(Night-life Mayor)제를 도입하고 야간 교통수단을 확충하며 야간 관광 및 축제 콘텐츠를 개발하는 등 야간경제 정책을 통해 산업을 육성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야간경제가 중요한 주제로 논의되고 있는데 작년 5월 서울시에서는 야간 문화 활동과 그 중요성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이 조사에 따르면 서울 시민들 중 78.8%가 야간활동 경험이 있으며, 야간활동 활성화에 대한 정책 필요성을 느끼는 시민은 68.9%에 달했다. 여기서 ‘야간활동’이란 오후 6시~오전 6시 사이의 야간 시간대에 하는 야간개장 시설 방문, 경관 관람, 체험활동, 엔터테인먼트 등을 모두 포함한 활동을 말한다. 시민이 선호하는 야간활동 분야는 ‘문화예술-사회교류-관광-여가·문화-생활체육’ 순이며, 고려사항은 ‘안심·안전-쓰레기·소음-야간 교통수단 이용 편의 제고-상점 영업시간 연장’ 등이 제기되었다.

우리 지역의 경우에도 야간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시도되었던 정책으로는 축제 이벤트, 야시장, 루미나리에(중심시가지의 야간 경관 조명) 등이 대표적이다. 한때 유행처럼 지방도시의 중심가로를 번쩍번쩍하게 수놓았던 루미나리에는 주민과 관광객의 주목을 끌지 못한 채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 소리 없이 사라졌다. 타 도시의 우수한 시책이더라도 모방만으로는 성공하지 못한다는 반면교사의 사례이다.

늘어나는 ‘임대’ 상점과 어두운 야간 가로 풍경 뒤편에서 힘들어하는 소상공인들이 늘어만 가는데 그 대책은 마련되지 못한 채 고금리, 경기침체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도시의 밤 공간은 낮과는 다른 특별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그러한 매력을 즐기기 위해 특정한 목적지 없이도 야간에 외출하고 싶어 한다. 도시민들이 특별한 제약이 없는데도 야간 외출을 하지 않는 것은 별로 즐길 만한 장소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야간 도시공간에 매력 있는 장소를 만드는 지혜가 핵심이다.

국내의 여러 도시들도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야간 문화 활동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먼저 지자체는 그 도시들에서 좋은 사례를 찾고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 우리 역량을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리고 야간 현황들을 적극적으로 조사하고 진단해서, 야간경제를 지원하고 활성화시킬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한다. 이를 통해 코로나19 이후 침체된 경제와 소상공인들이 활력을 되찾고 도시민은 야간 생활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