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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초대석] “자신이 사는 도시의 미래 예측할 수 있는 힘 길러야” 도시문헌학자 김시덕
전국 구석구석 찾아 다니며
19세기 말부터 현재에 이르는
세 겹 ‘시간의 층’ 기록·해석
앞으로 한국 도시
3대 메가시티·6개 소권역 집중
행정적 경계 넘어 지역 바라봐야
2024년 02월 27일(화) 19:00
도시 문헌학자이자 도시 답사가인 김시덕은 전국 구석구석을 걸으면서 문헌학적 방법론으로 19세기 말부터 현재에 이르는 세 겹 ‘시간의 층’(時層)을 기록하고 해석한다. 바로 ‘삼문화’(三文化) 광장이다. 그에게 “세상은 아직 읽지 않은 책이 무한하게 꽂혀 있는 거대한 도서관”이나 다름없다.
“켜켜이 먼지가 쌓인 고문헌이 저에게 말하고 싶어 하는 걸 캐치하듯이, 찬란한 문화유산도 아니고 아픈 역사의 현장도 아니고 랜드 마크도 아니고 맛집도 아닌 평범한 공간들을 걸으면서 그곳의 작은 이야기들을 알아채려 했습니다.”

도시 문헌학자이자 도시 답사가인 김시덕(49)은 ‘서울선언’(2018년)에서 “세상은 아직 읽지 않은 책이 무한하게 꽂혀 있는 거대한 도서관”이라고 밝힌다. 사대문밖 서울을 비롯해 전국 구석구석을 찾아 다니며 문헌학적 방법론으로 19세기 말부터 현재에 이르는 세 겹의 ‘시간의 층’(時層)을 기록하고 해석한다. 그는 한창기 선생의 ‘뿌리 깊은 나무’에서 1983년 펴낸 인문지리지 ‘한국의 발견’ 시리즈(총 11권)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최근에는 ‘인문학자가 직접 탐사한 대한민국 임장 보고서’라는 부제를 단 ‘한국 도시의 미래’(포레스트북스)를 펴냈다.

◇사라지는 철도 관사촌, 기록하는 도시답사가=“여기가 용산 철도 관사촌이었습니다. 지금도 상당히 남아서 주거지와 식당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이 기억하시는 용산역의 풍경이 많이 바뀔 거예요. 시간 있으시면 철도 관사촌을 한번 꼼꼼히 보시면 좋을 것 입니다.”

도시문헌학자 김시덕은 기자와 동행해 용산역 인근 거리를 걷다가 낡은 건물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자 모양을 한 옛 용산역 화물창고였다. 주변에는 관사로 쓰였던 자그마한 맞배지붕 일식 건물들과 여인숙으로 활용된 붉은 벽돌로 지은 2층 양옥 한 채도 눈에 들어왔다. 서울 용산구 용산역 일대 역세권은 대규모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그는 머지않아 사라져버릴 근·현대 ‘시간의 층’을 오롯이 품고 있는 의미 깊은 공간을 스마트 폰에 한 컷 한 컷 담았다.

◇ 행정적 경계를 넘어 시민 삶에 따라 지역을 바라봐야=그는 신간 ‘한국 도시의 미래’에서 “앞으로 한국 도시는 ‘3대 메가시티’(대서울권·동남권·중부권)와 ‘6개 소권역’(대구·구미·김천 소권, 동부 내륙 소권, 전북 서부 소권, 전남 서부 소권, 동해안 소권, 제주 소권)으로 집중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포항-울산-부산-창원-거제-사천-진주-하동-여수-순천-광양을 ‘동남권 메가시티’로 포괄했다. “동남권은 곧 한국의 콤비나트(kombinat·기술적 연관이 있는 여러 생산부문이 근접 입지해 형성된 기업의 지역적 결합체)”라고 표현한다. 우주발사체를 생산·조립·발사하는 창원, 순천, 고흥은 ‘첨단 산업권’으로 묶인다. 특히 행정적 경계를 넘어서서 지역을 바라볼 것을 강조한다.

▲이번 내신 책은 앞서 출간한 ‘우리는 어디서 살아야 하는가’(2022년) 보다 범위를 넓혀 한국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땅·도시·집에 대해 이야기 하십니다. “자신이 사는 도시의 모습을 냉정하게 들여다보고 그 도시의 미래를 예측할 힘을 길러야 한다”라고 밝힌 ‘책을 쓴 이유’가 눈에 띕니다.

-“전 지역에 대해서 관찰과 전망을 정리한 것은 이번 책이 처음입니다. 그런 부분이 가장 큰 의미라고 생각해요. 전국 강연을 하면 지역의 요망(要望)이 있습니다. 그분들이 궁금한 것들을 파악해서 (신간에) 미리 답을 드리는 게 있어요. 서울·경기권 아닌 분들은 자기가 사는 도시와 서울만 비교하세요. 옆 도시와 비교를 안 하시더라고요. 서울 공화국을 비판하려면 광주 공화국도 비판할 수 있어야 되는데 다들 그런 식으로 서울과 비교를 하는 데서 나오는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저는 전국을 다 보고 있기 때문에 공평한 시선으로 ‘여러분 도시는 이렇습니다’ 라고 말씀을 드린 거죠. ‘주변 도시들은 예전 규모일 때, 미래 규모일 때 이렇게 했기 때문에 아마 여러분 도시도 이렇게 되지 않겠습니까’라는 (예측하는) 힘이 생긴다는 거죠. ‘근본은 비교’ 입니다.”

▲“지역을 도·시·군 단위, 즉 면적으로 생각하면 한국 도시의 미래를 올바로 예측할 수 없다. 면적인 ‘단위’만 강조하는 정치인과 행정가들의 생각과 달리, 도시민은 여러 곳의 행정구역을 넘나들면서 ‘선적’(線的)으로 살아간다”는 표현은 어떤 의미인가요?

-“이른바 메가시티 논쟁입니다. 예를 들어 여수·순천·광양 사람들이 병원 진료나 쇼핑하러 광주까지 오냐는 거죠. 요즘에 부산에 가거나 SRT타고 수서 오는 거잖아요. 전라도니까 같을 거라고 하는 자체가 착각이라는 거죠. 교통망이 새로 생기면 다른 행동방식이, 생활권이 생깁니다. 정치인들은 지역구를 중시해 그렇게 얘기하지만 시민들은 행정구역 단위가 아닌 교통망을 따라 시·도의 경계를 넘나들며 선적 (線的) 세계관으로 살고 있습니다. 행정구역이 아닌 시민들 삶에 따라 도시를 바라봐야 합니다.”

한국전쟁 무렵 강원도 춘천시 구도심의 봉의산 서남부 사면에 들어섰던 ‘기와집골’은 고층아파트 단지 건설로 사라졌다. 철거전 ‘기와집골’ 개량기와집 단지 전경(2021년 1월).
◇‘시간의 층’(時層)과 ‘삼문화 광장’에 주목=문헌학자 김시덕은 고려대 일어일문학과 학사·석사과정을 마치고 일본 국립 문헌학연구소인 국문학연구자료관(총합연구대학원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고려대 일본연구센터 HK연구교수와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를 역임했다. 서울 태생인 그는 ‘사대문밖 대서울을 동서남북으로 누비며’ 이사만 30여 번을 다녔다고 한다. 그래서 대서울 전체가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문헌학자가 도시를 답사하는 방법은 일반인과 다르다. 건물 머릿돌과 창문, 지붕, 세탁소 간판, 화분, 장독대, 마을비, 버스정류장 등 도시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문헌학의 방법론을 적용한다. 비(非)문자 자료에도 많은 정보가 담겨있다. 제주 ‘세멘(시멘트) 꽃’처럼 집주인이나 ‘집 장사’가 소박하게 꾸민 ‘시민 예술’도 지대한 관심을 기울인다. ‘광주직할시 광산구 신가동’ 문패와 광주시 광산구 송촌동에 자리한 ‘승주 자동차 공업사’와 같은 간판은 광주직할시와 승주군 시절을 입증하는 ‘도시화석’으로 해석한다. 이처럼 ‘도시에 적힌 글자를 읽으며 세상을 풀이하는’ 그를 도시 문헌학자라고 부를 수 있다.

그는 지난 2010년 9월 풍납토성을 함께 걸은 중세 일본문학 연구자(사사키 다카히로 교수)를 통해 ‘서울 보는 법’을 깨달았다. 백제의 첫 왕성 안쪽에 들어선 고층 아파트를 못마땅해 하는 그에게 일본 교수는 말했다.

“하지만 관점을 바꾸어 보면, 백제 시대의 왕성, 조선시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시기의 서민 동네, 현대의 고층아파트, 이 세 개의 시대가 이렇게 한 곳에 공존하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놀라운 광경입니다.”

그 이후 그는 2017년 여름부터 본격적으로 답사하며 서울을 예전과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었다. 서울 곳곳에 쌓여 있는 여러 시간의 층인 ‘시층’(時層)이 눈에 들어왔다. 이처럼 시간의 층이 확인되는 공간을 ‘삼문화(三文化) 광장’이라고 불렀다. 무엇보다 사대문 바깥인 ‘주변부’와 ‘피지배층’(서민)에 주안점을 뒀다.

그의 광주·전남지역 도시답사 이야기를 들으며 여러 차례 깜짝 놀랐다. 전혀 모르는 폐철로(전일선·임동 산업철도)와 신가동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차관단지 등을 거론했기 때문이었다. ‘문헌학자의 현대한국 답사기 2’(2023년)에 소개된 ‘신가동 차관단지’는 IBRD 차관을 받아 1983년 하남 산업단지의 주거지역으로서 조성됐다. 그러나 현재는 모두 헐리고 남아있지 않다.

도시문헌학자·도시답사가 김시덕은 일주일에 3~4 번 답사에 나선다. 동네 근처부터 먼 지방까지 두루두루 다닌다.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그가 보여주는 스마트 폰 구글지도에는 앞으로 가봐야 할 답사예정지 수 십 개가 빽빽하게 표시돼 있다. 오는 3월에 답사팀과 광양·하동·남해를, 4월에 전북지역 ‘대간선(大幹線) 수로(水路)’를 각각 답사할 계획이다. 전북 완주군 고산면 어우리(어우보)에서 군산시 옥구(옥구 저수지)까지 이어지는 농업용 수로(길이 63㎞)로, 지난해 준공 100주년을 맞았다.

“기본적으로 자기 지역을 안다 생각하지 말고 일단 모른다고 전제를 하고 낯설게 하면 기본적으로 ‘모험 탐험’이 됩니다. 내가 살던 동네나 어느 지역이든 다른 관점으로 봐야 돼요.”

/글=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김시덕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