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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광장] 농담 한마디와 다시 읽는 오웰의 ‘1984’ - 심옥숙 인문지행 대표
2023년 11월 06일(월) 00:00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한 짧은 농담에 웃다가 씁쓸해진다. 요즘은 ‘현실이 드라마보다 훨씬 드라마 같아서 연속극을 전처럼 안 본다’고 한다. 날카로운 풍자적 의미가 분명해서 그냥 웃고 넘겨지지 않는다. 사실 현실이 드라마보다 훨씬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재미’를 준다면 큰일이다. 그만큼 현실이 ‘변태적’인 불행이며 위험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있을 법한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니, 사람이 실제 죽거나 다치고, 고통을 겪는 일은 없다. 하지만 현실이 드라마를 닮아갈수록 고통과 절망과 혼란은 커진다. 이 농담에 담긴 더 큰 뜻은 현실 왜곡에 길들여지고 익숙해지는 것에 대한 위험이다. 현실 상황에 길들여지면서 현실에 대한 무감각함으로 쉽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 무감각의 위험은 삶에 대한 자신의 가치와 감정, 판단의 기준을 외부의 요구와 지시에 따르거나 단절의 벽 뒤에 파놓은 자기 동굴로 숨게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조건인 인간성의 의미는 상호 관계 속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인간성이 제거된 세상을 작가 조지 오웰은 소설 ‘1984’로 묘사했다. 그런데 이 소설 내용이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과 무관한 허구라고 말하기가 힘든 세상이다. 이 작품은 인간의 자유 의지와 생각과 감정이 완전히 말살된 전체주의 세상을 보여준다. 그래서 흔히 디스토피아 작품의 원형으로 평가된다. 디스토피아는 유토피아의 반대인 대립 세계를 의미한다. 개인이 사라지고 집단적 의식과 전체주의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곳이 곧 디스토피아의 세계다. 개인이 살 수 없는 세계, 서로 다른 ‘나와 너’의 관계가 불가능한 곳이다. 이런 디스토피아는 어떻게 생겨나며, 어떻게 해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실이 되는가? 현실적 디스토피아를 생산해내는 집단 또는 조직은 어떻게 개인의 자유와 의지를 통제하고 길들이며 감정과 일상적 생각에도 개입하는가?

오웰은 미래를 앞당겨 경험한 것처럼 날카롭고 정확하게 전체주의 사회를 묘사한다. 모든 것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권력 집단의 지도자이자 최고 권력자가 ‘빅 브라더’다. 우리말로는 ‘큰 형님’이다. 큰 형님! 익숙하고 친근하며 뭐든지 다 알아서 처리해줄 능력자처럼 들린다. 여기서 오웰은 전체주의 이념과 큰 형님의 권력에 맞는 새로운 언어가 왜 중요한가를 역설한다. 언어가 곧 가치와 이념을 위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이 작업을 하는 사람이 소설의 주인공인 윈스턴 스미스다. 그가 ‘진리부 기록국’에서 맡은 임무는 과거 기록을 조작해서 새롭고 절대적인 진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는 강령에 따라 신문, 잡지, 책 등을 현 시점에 맞게 조작하고 재생산한다. 다시 말하면 새 시대의 진리 기록은 과거 조작이며, 진리의 왜곡이다. 시대에 맞는 ‘새로운 언어’라는 강제적 언어정책으로 과거를 지우려는 것이다. 전혀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주인공 스미스는 금지된 사랑을 하고, 통제를 거부하며 자신의 삶을 살고자 하지만 결국 파국을 맞는다. 스미스는 거듭된 고문과 세뇌 끝에 빅 브러더에게 굴종적 복종을 맹세하며, 자신의 마지막 인간성까지 파괴당한다. 끝내 스미스는 생존을 위해서 ‘자백을 하더라도, 마음만은 그들도 바꾸어 놓을 수 없다’라는 마지막 신념마저 배신한다. 오웰이 전체주의 세상에서의 개인의 자유는 육체적 자유는 물론이고 사고와 감정까지 지배당하는 암울한 세상으로 묘사하는 이유다. 이 세상에서는 공동체의 언어와 역사는 철저히 통제되고, 전쟁과 폭력은 평화를 위한 도구로 왜곡된다.

그런데 우리를 지배하고 통제하는 갖가지 권력, 이 권력 앞의 공포와 무력감의 실체는 무엇인가? 현대의 전체주의적 통제는 각 개인에게 요란하게 다가오지 않아서 타인의 일이라고 여기기 쉽다. 그래서 전체주의적 힘에 나 자신이 어떻게 잠식당하는가를 알기 어렵다. 이 억압이 가시적이고 폭력적인 강요가 아니라, 우리의 ‘자발적’ 동의와 선량한 침묵을 통해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결국 스스로 자발적 동의자임을 알아차리는 것, 이 자각이 없이는 ‘큰 형님’은 늘 다양한 얼굴과 목소리로 우리 곁을 맴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