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운주사에서 만난 달마- 박용수 수필가·동신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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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의 향기] 운주사에서 만난 달마- 박용수 수필가·동신여고 교사
2023년 09월 17일(일) 22:00
고달프면 마음보다 몸이 먼저 찾아 나선다. 그윽한 풍경과 조용한 경내, 나를 기다리는 어머니 품 같은, 그리움 사무치는 곳, 자주 찾지 못해 더 간절한 곳, 천불동 운주사 가는 길은 발도 편안하고 마음도 흐뭇해진다.

예전에는 백사장터에서 경내로 갔다. 배를 타듯 아래로 내려가면 논밭 사이로 항아리 탑이 있고 숨은 절이 고개를 수줍게 내밀었다.

일부러 그리 간다. 절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조붓한 길을 내려가 사박사박 눈 밟듯 경내를 밟는다. 공사 바위도 칠성 바위도 뵙고 와불 님 앞에서는 두 손도 모은다. 그리고 지금은 입구가 된 산 중턱에, 여전히 참선 중인 달마를 찾아간다. 아니, 거기 슬며시 몸을 기대고 있는 부처, 나를 만나러 간다.

9년 면벽한 그 오기, 그 집착을 배우고 싶다. 절에서 버리라고 한 것이 집착이다. 그렇게 계율을 어겨가며 찾고자 집착한 것이 무엇일까. 진짜 누군가를 기다렸을까. 달마는 이미 자기 마음을 부순 이다. 모든 것을 보는 이다. 그는 짚신 한 짝만 신고 서천으로 간 생멸이 없는 이다. 면벽 정진 9년, 어느 순간 뒤에 무언가 사부자기 움직인다.

“정법을 알려주십시오.”

간절함이 묻어난 목소리에 달마도 단박 보통내기가 아니란 걸 안다.

“무엇을 구하느냐, 하늘에서 붉은 눈이 내리면 법(法)을 주겠다.”

침묵이 흐르고 잠시 후,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달마가 뒤를 돌아보니 하늘에서 붉은 피가 눈처럼 흩날린다. 팔 하나가 바닥에서 팔딱이고 있다. 넌지시 거부의 뜻으로 건넸는데 그는 검을 뽑아 단칼에 자기 왼팔을 벤 것이다.

부처나 보살도 몸으로 몸을 삼지 않고, 목숨으로 목숨을 삼지 않았다. 정법을 구할만한 이다.

신광이 비로소 달마의 제자가 되어 ‘혜가(慧可)’가 되는 순간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혜가가 된다. 어디로 갈까. 어떻게 살까. 그렇게 세상을 떠돌고 삶을 헛돈다. 내 불안은 내 것만이 아니다. 세상에 부정의가 난무하는데 부정의보다 침묵하고 있는 내가 더 슬프고 아프다. 한시도 편안할 날이 없다. 미래의 불안, 재물이 남은 삶을 편안하게 해 줄 것으로 여긴 이는 하수들이다. 사막이건 정글이건 본질을 찾을 수만 있다면 기꺼이 지옥이라도 찾아가 처절히 싸울 것이다. 왼팔만이 아닌 오른팔, 몸뚱이까지 내놓을 것이다.

그는 불법에 정진했어도 늘 마음이 답답하고 불안했다. 또다시 스승 달마 앞에서 읍소한다.

“마음이 불안합니다.”

달마는 혜가의 심중을 조목조목 읽고 있던 터다. 아파테이아를 꿈꾸지만 자기 안의 창살을 벗어나지 못한 그를 보고 묵직하게 입을 연다.

“불안한 네 마음을 내놓아라. 내가 편안하게 해 주겠다.”

혜가는 지금 운주사 입구 거지탑에 지그시 기대어 쉬고 있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걸쳐 올린 탑은 누더기를 입고 있는 달마 그대로다. 그 앞에 팔 하나 없는 부처가 혜가다. 운주사를 묘법연화경 경전에 근거하여 풀어내는 박춘기 님의 해석대로 나는 운주사에 가면 이곳 달마에 몸을 기댄다. 그리고 혜가를 된다. 아니 나를 만난다.

어디에나 이런 스승이 있었으면 좋겠다. 고단한 마음을 달래주고 위로해주는 것이 비록 돌멩이거나 바위일지라도 난 거기서 피가 돌고 심장이 뛰는 것을 느낀다. 달마 무덤을 파 보았더니 정말 짚신 한 짝만 있었다는 말을 일부러 믿는다. 지금 이곳 운주사에 와서 와불을 바라보며 백 년 아닌 천 년 면벽하고 있는 이가 그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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