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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 없는 친밀성이 아닌, 삶의 메타포 배우기 - 심옥숙 인문지행 대표
2023년 07월 31일(월) 00:00
많이 쓰는 표현 중 하나가 메타포, 즉 은유다. 어떤 것을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대신에 ‘한 사물을 다른 사물과 비교하면서 말하는 방법’이다.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표현으로 예를 들면 ‘나에게 너는 언제나 오월’과 같은 것이다. 메타포가 무엇이고 어떻게 쓰이며, 그 힘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는 소설이 ‘네루다의 우편배달부’(1985)다. 네루다는 칠레의 국민 시인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로서, “모든 언어권을 통틀어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이라고 평가받는 바로 그 파블로 네루다(1904-1973)다. 작품의 원제는 ‘불타는 인내’였는데, 네루다가 1971년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여명이 밝아올 때 불타는 인내로 무장하고 우리는 찬란한 도시들로 입성하리라”라는 랭보의 시 일부를 인용한 것에서 나왔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당시에 무명이던 안토니오 스카르메타라는 작가가 썼는데, 이 작가는 시인 네루다보다 36년이 젊다. 시인 네루다는 젊은 작가를 기꺼이 만났고, 스카르메타는 사회적 지위와 나이 차이와 명성에도 개방적이고 인간적인 유머가 넘치는 시인에게 무한한 존경심을 가졌다. 작품 속 네루다는 실제와 달리 평생 칠레를 위해 싸우고 수많은 고난을 겪어낸 투사의 모습이 아니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서 한 시인에 대한 국민적 사랑과 존경심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뛰어난 유머와 감각적 표현으로 보여준다. 맹목적 찬양과 숭배가 아니고, 조국과 삶에 대한 사랑이 어떻게 구체적인 실천 행위와 결과로 나타나는가를 보여준다.

유명한 시인이 주인공처럼 보이지만, 오해다. 주인공은 작은 어촌 마을 청년이다. 소설은 청년이 하루하루 빈둥대다가 우연히 시인의 전담 우편배달부가 되면서 시작된다. 시인에 대한 존경심으로 제대로 말도 못 건네던 청년은 어느 날 메타포가 무엇이냐고 묻고 차츰 서로 간에 깊은 우정을 쌓아간다. 배운 것도 없고, 특별히 원하는 것도 없던 청년은 메타포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알게 되면서 삶의 한가운데에서 비로소 살기 시작한다.

삶에 대한 메타포를 이해하고 사용하면서 불가능해 보이던 사랑을 쟁취하고 미래에 대한 의지와 책임을 깨닫는다. 시인 네루다의 진정한 위대함은 아는 것도, 가진 것도, 미래도 없던 청년과 좋은 친구가 되고, ‘생각 없던 청년’이 이제 삶을 사랑하고 세상의 고통을 나눌 만큼 성장하는 과정에 동행하는 것이 아닐까. 이야기 속 청년은 보통의 칠레 사람이다. 이런 의미에서 청년이 성장하는 모습은 곧 작가가 시인의 불타는 인내와 평등한 친밀성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칠레에 대한 믿음과 평등, 사랑의 메타포다.

상호적 개방과 존중 위에서만 우정과 사랑은 건강하게 자란다. 이 두 가지의 상호성이 제거된 친밀한 태도를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은 ‘평등 없는 친밀성’이라고 말한다. 높은 지위와 막강한 힘을 가진 사람이 대중적 소탈함과 호탕함을 거침없이 내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친밀한 관계에서 가장 근본적인 조건은 서로가 대등하고 평등하게 생각하는 상호성이다.

더없이 친밀하고 거리감 없는 모습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지배적인 ‘갑’의 태도를 보이는 것이 오웰이 말하는 평등 없는 친밀성이다. 이런 친밀성은 “친밀함이 관계의 주된 내용이 아니라 오히려 관계의 본질을 은폐하는 도구”로 쓰인다는 것이다. ‘나는 친밀함을 보여줄 수는 있으나, 너는 감히 그럴 수 없다’는 의미다. 서로 평등하지 않다고 여기면서 표현된 친밀함은 관계의 목적과 의도를 감추기 위한 위장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친밀성은 늘 일방적이며, 때로는 감사하기 이를 데가 없는 ‘은혜’가 된다. 오웰은 지배자의 대리인으로서 자신이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평등 없는 친밀성은 지배 욕망이 감춰진 것이며, 다른 사람에 대한 교묘한 지배방식이라고 고발한다.

절대적 우월감에 뿌리를 둔 평등 없는 친밀성이 몸에 밴 사람들에게 평등의 가치는 기껏해야 책 몇 권으로 학습된 화려하지만, 허명의 단어일 뿐이다. 심장 뛰는 삶과 일상의 언어로 시를 쓴 네루다의 시 한 구절이다. “너(책)를 닫을 때, 나는 삶을 연다 / 나는 책에서 오지 않았다 / 나는 삶에서 삶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