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정후식 칼럼] 지역 소멸·지방대 위기 ‘평생교육’으로 넘자- 논설실장·이사
2023년 06월 20일(화) 18:30
배움에 대한 열망에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할 나라로 꼽힌다. 그 범상치 않은 교육열은 세계 10위 경제 대국 도약과 민주 사회를 앞당긴 원동력이었다. 전쟁 통에 피난을 가서도 천막을 쳐 놓고 배웠고, 힘든 공장 일을 마치면 야학을 이어갔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것을 가장 큰 즐거움으로 여기며, 죽어서도 배우며 살다간 ‘학생’(顯考學生)이고자 했다.



학습 공동체로 주민·도시 동반 성장

하지만 모든 것이 광속으로 바뀌는 대전환의 시대, 지식과 정보의 효용 기간은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가상현실(VR) 등 변화하는 환경을 따라잡기조차 버겁다. 반면에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간 수명은 빠르게 늘고 있다. 광복 직후 40대에 불과했던 평균 수명은 80대로 증가했다. 100세 시대도 머지않았다.

장수는 생애 주기에도 변화를 불러왔다. 어릴 적 공부하고, 젊어서 일하고, 늙으면 쉬는 삶의 경로는 옛말이 됐다. 학창 시절 배운 것으로 평생을 풀어먹기 힘들게 된 것이다. 평생 직장의 개념은 퇴색되고, 인생 이모작과 삼모작이 일반화되고 있다.

사회 구조와 생활 양식의 변천 속에 날로 팽창하는 지식과 기술은 학교라는 테두리에 묶여 있던 교육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했다. 인간의 교육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가정·학교·사회에서 전 생애에 걸쳐 이루어져야 한다는 평생교육(Lifelong education)의 태동이다.

1960년대 유네스코 성인교육회의에서 제창된 이후 세계 주요 국가들은 평생교육을 통해 국민 삶의 질 향상은 물론 국가 생존에 필수적인 경쟁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독일과 덴마크의 성인교육, 일본의 생애학습이 대표적이다. 핀란드는 ‘학습의 기쁨’(The Joy of Learning)을 국가 의제로 내걸었다.

평생교육은 육하원칙으로 풀자면 시민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무런 제약 없이 학습할 수 있는 교육 체계를 말한다. 그 목적은 자아실현과 문화 다양성 확보, 지속 가능한 사회 발전에 있다. 학습자 스스로가 교육의 전 과정을 선택하고 수행하는 ‘자기 주도 학습’이 특징이다.

우리나라에서 평생교육이 본격화된 것은 1999년 평생교육법 제정 이후부터다. 일부에선 아직도 취미·교양이나 여가 선용의 방편 정도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 영역은 학력 보완, 기초 문해, 직업 능력 향상, 인문 교양, 문화예술, 시민 참여 교육 등 폭넓고 다채롭다.

정부는 평생교육 진흥을 위해 지난 2001년부터 평생학습도시를 선정하고 있다. 평생학습도시는 지역 사회의 모든 교육 자원을 연계해 학습 공동체를 일구는 도시 재구조화(restructuring) 운동이다.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을 통해 주민과 도시가 동반 성장을 꾀한다.

올해까지 전국 195개 지자체가 지정됐는데, 광주 다섯 개 자치구와 전남 15개 시군이 포함됐다. 광주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모든 자치구가 장애인 평생학습도시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해 프로그램을 운영한 광주의 평생교육기관은 평생학습관·행복학습센터 등 348개소, 프로그램 수는 3000여 개에 이를 정도로 양적 성장은 괄목할 만하다.

하지만 ‘교육 도시’ 광주의 평생교육 진흥 업무를 총괄하는 광주시 평생교육진흥원의 정원은 18명(1처 3실)에 불과, 전국 최초로 평생교육국을 만든 경기도(4과 18팀 84명)의 추진 체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광주 자치구에는 평생교육사들이 배치돼 있지만 최근 조직 개편으로 교육정책관을 신설한 광주시 본청에는 평생교육 전문가조차 없다.

일자리와 교육은 지방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양질의 직장과 교육 기회가 풍부하다면 굳이 나고 자란 곳을 떠날 이유가 없다. 평생학습도시 활성화는 국가-시도-시군구-읍면동으로 이어지는 평생교육 체제 구축은 물론 학습을 통해 일자리 창출, 지역 활성화의 선순환 구조를 창출한다. 고령층에 대한 재교육과 재훈련을 통해 생산성을 높임으로써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 균형 발전의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 국가와 지자체들이 평생교육 진흥에 더 큰 관심을 쏟아야 하는 까닭이다.



일자리·교육 연계 정주·취업 확대를

학령인구 감소로 존폐 위기에 처한 지역 대학들에게도 평생교육은 활로를 열어 줄 수 있다. 교육부는 2025년까지 감축 예정인 대입 정원 1만 6000여 명 중 2337명을 평생교육 목적의 성인학습자 정원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아울러 중장년층이 일과 학업을 병행하며 학위 취득과 경력 개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대학 평생교육체제 지원 사업’(LiFE), 전문대·지자체 간 협력으로 지역 특화 분야 인재를 양성하는 ‘고등 직업교육 거점지구’(HiVE) 사업을 통해 대학의 체제 전환을 유도하고 있다.

지역 대학들도 그동안 등한시했던 평생·직업 교육 기능을 강화해 살길을 찾아야 한다. 청년층과 제2의 삶을 모색하는 성인 학습자에 대한 직업 교육을 확대해 정주 및 취업·창업 기회를 열어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학 재정 지원 권한을 넘겨받게 될 지자체와 교육청, 대학 간 촘촘한 협력이 필수적이다.

평생교육은 이제 개인적 차원을 넘어 참여와 연대를 통해 공동체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지역의 변화를 모색하는 사회적 학습으로 확장되고 있다. 고령화 속도가 빠른 광주·전남의 평생학습 수요는 다른 지역에 비해 풍부하다. 평생교육이 지역과 대학을 되살리는 희망의 불씨가 될 수 있도록 관심과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