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견 트라우마 - 채희종 정치담당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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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견 트라우마 - 채희종 정치담당 편집국장
2023년 04월 27일(목) 23:00
로봇견이 붕괴 위험이 있는 건물 속에서 생존자를 탐지하거나 인질극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 투입되는 것은 이제 영화 속 장면만은 아니다. 로봇견이 인간을 대신해 위험한 일을 처리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같으면 대다수가 환영할 만하지만, 먼저 로봇견을 사용한 미국에서는 반대 여론이 거세다. 역사적으로 맹견이나 경찰견이 유색 인종이나 흑인을 탄압하는데 사용됐던 미국 사회의 트라우마 탓이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수많은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로 이주했고, 원주민(인디언)들의 땅이 필요했던 백인들은 ‘인디언 사냥’을 개시한다. 그 중 한 방법으로 영국 마스티프종 맹견을 사냥개로 활용했는데, 당시 마스티프로 인디언을 물어뜯게 하는 건 합법이었다. 18세기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벤자민 프랭클린은 인디언 사냥 직전에 개를 가둬 놓도록 권장했다고 한다. 개를 가둬 약을 올리면 개가 한층 광포해져 사냥이 쉽다는 이유에서다.

이후 미국에서는 노예제가 유지되는 동안 도망자를 추적하거나 평소 노예를 손쉽게 제압하기 위해 맹견을 사용했고, 심지어 1960년대에도 경찰이 흑인 인권 운동가들을 겁주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현재도 경찰견은 주로 유색 인종에게 사용된다는 인식이 강하다.

미국에서 애초 수년 전 로봇견이 투입됐던 곳이 공교롭게 흑인이나 히스패닉 등이 사는 곳이어서, 유색 인종 출신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로봇견의 성능 시험 대상이 됐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이로 인해 여러 지역에서 추진되던 로봇견 투입이 중단되기도 했다.

최근 LA경찰이 다시 로봇 경찰견을 스왓팀(기동 타격대)에 투입시킬 계획을 세웠지만, LA시민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서면서 시의회가 일단 로봇 경찰견 투입을 미루고, 두 달 후 투입 여부를 결정짓기로 했다.

로봇 경찰견 투입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로봇이 흑인과 히스패닉 커뮤니티를 감시하고 괴롭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며 문제를 제기, 뉴욕 사회는 물론 전국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결국 시민들의 로봇 경찰견 반대는 로봇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경찰에 대한 불신과 맹견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것이다. /채희종 정치담당 편집국장 chae@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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