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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용복 사라토가 회장, 여덟살 피난길에 아버지 잃고 생계 위해 전쟁물자 운반
“전쟁에서 교훈 얻지 못하면 불행한 역사 반복”
2023년 03월 27일(월) 02:00
전 세계 190여개국을 다닌 오지여행가로 유명한 도용복(81·사진) ㈜사라토가 회장은 건강하고 활기찼다. 대구 대백프라자 카페서 만난 그는 지인 전시회를 관람하고, 그랜드호텔에서 특강을 하기 위해 대구에 왔다고 했다.

도용복 회장은 음악을 사랑하고, 여행을 좋아하는 성공한 사업가로 알려져 있지만, 어린 시절 다부동 전투 현장에서 생사를 오가는 줄타기를 했다. 국민학교 1학년 여덟 살 때였다.

“인민군 내려온다는 소식에 피난길에 올랐고, 전쟁통에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저와 어머니, 동생 등 네식구는 우여곡절 끝에 칠곡 다부동 고개를 넘었는데, 그때가 다부동 전투가 벌어지기 불과 며칠 전이었을 겁니다.”

어린 나이에 안동서 걸어 다부동까지 온 도용복 소년과 동생들은 배가 너무 고팠다. 어머니도 피난 온 타지서 자식을 챙겨 먹일 마땅한 방도가 없었다. 그때 귀가 번쩍하는 희소식 들렸다. 국군의 총알 나르는 일을 하면 흰쌀밥을 고봉으로 준다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소년은 자기보다 큰 지게로 전투가 벌어지는 다부동 고지로 총알을 날랐다. 소년은 고지를 오가면서 군인과 민간인이 죽는 모습을 수없이 봤다. 어느 날 같이 일하던 또래 두 명이 보이지 않았다. 어른에게 물어보니 인민군 총에 맞아 죽었다고 했다. 무서웠다. 그만하겠다고 했다.

도 회장은 “살면서 제일 무서운 게 뭔지 아세요? 죽음? (고개를 가로저으며) 배고픈 겁니다. (총알 나르는 일을) 안 한다고 작심하고도 아침이 되면 쌀밥 유혹에 또 가는 겁니다”라고 회상했다. 당시 소년에겐 죽음의 두려움보다 배고픔의 고통이 더 컸다. 아침 식전 탄약통 2상자를 왕복 3~4시간 거리의 고지에 나르고 오면 정말 혼자서는 다 못 먹을 양의 쌀밥이 나왔다. 집에서 굶고 있을 어머니와 동생 생각에 호박잎을 따 주먹밥 두덩이를 먼저 만들어 챙겼다. 그렇게 소년은 15일 정도 죽음을 무릅쓰고 다부동 고지에 총알과 전쟁물자를 날랐다.

도 회장은 “(살면서) 무섭고 겁나는 게 없다”고 했다. 어린 시절 사선을 넘나들었던 경험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했다. 특히 그는 참전국에 각별한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참전국 용사들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뜻을 담아 UN참전국송을 만들었고, 꿈의 공연장 미국 카네기홀 무대에서 한국전쟁 전사자를 위한 레퀴엠(진혼곡)을 한미 합창단과 함께 불렀다.

“우리 위정자들은 不經一事 不長一智(불경일사 불장일지: 한 가지 일을 거치지 않으면 한 가지 지혜가 자라지 않는다) 구절을 꼭 새겨야 합니다. 우리가 6·25전쟁을 겪었지만 교훈을 얻지 못하면 같은 불행은 반드시 다시 오기 때문입니다.”

/매일신문 이영욱 기자 hello@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