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선 의원들의 정치적 의무- 임동욱 선임기자 겸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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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선 의원들의 정치적 의무- 임동욱 선임기자 겸 이사
2023년 03월 22일(수) 00:30
지난 2010년 “젊은이들에게는 분노할 의무가 있다”라는 화두를 담은 ‘분노하라’라는 책이 세계적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200만부가 넘게 팔린 34쪽의 작은 책에는 민주주의라는 사회적 토대가 시장경제 논리에 의해 훼손되고 있는 것에 대해 젊은 세대가 적극적으로 저항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또 무관심이야 말로 최악이며, 타자의 고통에 참여하고 구조적 불의를 시정하는 공감적 연대로 좀 더 나은 세상을 꿈꿔야 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창조하는 것, 그것은 곧 저항이며, 저항하는 것, 그것이 곧 창조”라고 강조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맞서 싸운 레지스탕스 출신 92세 노인(스테판 에셀)의 쩌렁쩌렁한 외침은 그의 조국 프랑스를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주류의 홍위병 전락

2023년 대한민국의 정치는 점차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 상생과 협치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기 보다는 지난 대통령 선거 이후 상호 혐오로 점철된 정쟁을 반복하며 오히려 과거로 퇴행하고 있다. 여야 모두 기득권 구도에 안주하며 각자도생의 길을 찾는 ‘무소신’ 정치가 민심의 피로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특히, 소신을 바탕으로 마주한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 제기로 혁신의 물결을 만들어야 할 초선 국회의원들의 목소리가 실종되면서 정치적 퇴행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초선 국회의원은 전체 299명 중 156명으로 과반이 넘는다. 원내 제1당인 민주당의 경우 169명 가운데 초선이 81명(47.9%)을 차지하고 있고 여당인 국민의힘은 115명 가운데 63명(54.7%)이 초선 의원이다.

하지만, 혁신의 아이콘으로 정치 지형을 뒤흔들던 초선 국회의원들의 모습은 최근 들어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오히려 당내 주류 입장을 대변하는 들러리 역할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당인 국민의힘 초선의원들은 지난 3·8 전당대회에서 새로운 변화를 이끄는 동력이 되기보다 주류 진영에 의해 움직이는 ‘장기판의 졸’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국민의힘 초선 의원 50여명은 유력 당권 주자로 꼽혔던 나경원 전 의원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의 뜻을 왜곡하고 내부 갈등을 조장했다”며 전당대회 불출마를 주장하는 연판장을 돌려 출마 자체를 좌절시켰다. 윤심(윤 대통령의 의중)의 당무 개입 논란에 대해 초선으로서 비판적 목소리를 내기보다 오히려 주류 진영의 홍위병 역할을 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여기에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계속되고 있는 각종 실정 논란에 대해 정부에 쓴 소리를 하는 초선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민주당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초선 의원들의 모임인 ‘더민초’가 구성됐지만 기존 질서에 대한 성찰과 분노의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선과 지방선거 패배에도 불구, 초선 의원들은 극성 팬덤 정치에 굴복하고 당내 주류 진영으로 편입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 정국 속에서 민주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소신을 밝히는 초선들의 목소리는 사실상 실종됐다.

초선의 목소리가 점차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계파 정치가 극성을 부리기 시작한 지난 19대 국회부터다. 보수 진영에서는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 그룹이, 진보 진영에서는 친문(친 문재인) 진영이 당내 권력을 장악하면서 초선 의원들이 계파 구도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 것이다. 특히, 공천에 당내 주류 진영의 입김이 반영되면서 시대를 개척하겠다는 결기 있는 초선 의원들이 탄생하기 어려운 구조가 자리 잡게 됐다는 분석도 있다. 오히려 초선 의원들이 각 정당 주류 진영의 정치적 돌격대로 전락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친윤(친윤석열), 친명(친이재명) 일색으로 구성된 여야 지도부가 정쟁을 반복하는 것도 주류 진영을 제대로 견제하는 초선 그룹의 부재가 원인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현재 정치권은 시대의 흐름을 읽는 ‘통찰’도 없고, 스스로를 향한 ‘성찰’도 없다. 국제 정세가 요동치고 민생이 휘청거리지만 “이래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을 찾아보기 어렵다. 상대를 비난하며 닮아가는 내로남불의

정치적 자폐 극복을

‘정치적 자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초선 의원들의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 상식을 바탕으로 하는 합리적 진보와 보수의 판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정쟁으로 꽉 막힌 시대의 물꼬를 터야 한다. 시대에 대한 성찰의 분노로 무장해야 한다. 정치를 시작한 초심을 되새겨야 한다. 그것이 민심과 시대가 초선들에게 요구하는 ‘정치적 의무’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깝고, 밤이 깊을수록 별은 빛난다. 여야의 초선 의원들이 차기 총선 공천의 압박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의 판을 만들어가는 연대의 지혜와 용기를 발휘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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