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기다림 지쳤다…중흥구역 재개발 지정 취소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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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기다림 지쳤다…중흥구역 재개발 지정 취소해 달라”
광주 북구 중흥동 주민들, 시에 ‘재개발 정비예정구역’ 취소 요구
사업 정체에 건설경기 침체 겹쳐 철회 결정…주민간 갈등만 격화
2023년 03월 07일(화) 20:20
광주 중흥동 광주역 일대 전경. [광주일보 자료사진]
광주시 북구 중흥동 중흥재개발사업 정비예정구역 토지 소유자들이 스스로 재개발구역 해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2006년 광주시가 재개발 예정지역으로 지정했지만, 20년 가까이 개발은 진행되지 않았고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까지 겹쳐 주민들이 이례적으로 스스로 재개발사업 정비예정구역 해제를 요구한 것이다.

광주시 북구는 10일께 광주시 북구 중흥동 748번지 일대에 지정된 ‘중흥구역 재개발사업’(면적 2만3131㎡)지정을 취소해달라는 ‘정비예정구역 해제 요청서’를 광주시에 접수한다고 밝혔다.

토지 소유자 과반수 이상(115명중 59명)이 해제를 요청해왔기 때문이다. 광주시 등에 따르면 정비예정구역 단계에서 주민들이 직접 재개발 구역을 취소해달라고 요청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이곳은 지난 2006년 광주시의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 기본계획’에 따라 주택재개발사업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정비예정구역 지정은 재개발사업 진행 첫 단계로, 노후·불량한 주거환경을 대상으로 안전과 위생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광주시에서 지정한다.

토지 소유자들은 지정된 해에 바로 추진위원회를 구성했으나, 건설경기 침체와 주민들의 관심도 저하 등의 이유가 겹치면서 지난 2021년까지 사업이 장기간 정체됐다.

최근 광주지역에서 대형건설사 위주의 재개발 사업이 완료되면서, 일부 토지 소유자가 지난해 다시 추진위원회를 구성했지만 결국 주민들은 재개발 사업 철회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광주시가 재개발 구역 지정만 해놓고 방치해 주민들의 갈등만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광주일보 취재진이 7일 오후 방문한 이 지역 주민들은 재개발 이야기만 꺼내도 고개를 저었다.

일부 주민들이 통상적으로 평균 10년 이상 걸리는 재개발 사업에 난색을 표시하면서, 재개발 사업 대신 지역주택조합과 같은 일반주택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투표가 지난해 11월 진행됐지만 주민들의 갈등만 증폭됐다는 것이다.

재개발 사업이 20년 가까이 정체되면서 고령의 주민들은 “이제 와서 어디로 이사 가느냐”며 재개발 사업 반대로 돌아섰고, 젊은 주민들은 “지금이라도 재개발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섰기 때문이다.

또 다른 주민들은 행정절차가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빨리 진행할 수 있는 지역주택조합을 요구하면서 투표 결과도 완전히 반으로 나뉘었다.

인근에서 10여년째 복사집을 운영하는 김지훈(54)씨는 “같은 집안 내에서도 나이 드신 어르신은 재개발을 거부하지만 자식들은 재개발을 원하는 등, 재개발 여부를 놓고 마을 전체가 완전히 두쪽으로 갈렸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주민은 “10년 넘게 이곳에서 살고 있지만 이제는 재개발 사업에 관한 어떤 사람도 믿을 수가 없다” 며 “투기꾼이 들어왔다거나, 추진위원이 이 지역 사람이 아니라는 등 별별 소문이 다 돌면서 재개발 사업과 관련해서는 이웃의 말도 믿을 수 없게 됐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주민 신경석(87)씨는 “재개발이 된다고 했다가, 안된다고 했다가 이제는 지쳤다”며 “재개발의 ‘재’자도 듣고 싶지 않다”고 손사래를 쳤다.

한때 재개발 사업이 진행될 것이란 소문에 외부인 등이 빈 집을 샀다가 그대로 방치하면서 마을 전체가 흉흉하게 변했다는 것이 주민들의 설명이다.

지역에서 20여년째 상가를 운영하고 있는 주민은 “재개발을 믿고 낡은 집을 고치지 않고 살다가 결국 지쳐 지난 2018년에 새로 고쳤다”며 “재개발 초창기에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주변 빈 집을 많이 샀는데, 재개발이 진행되지 않으면서 방치돼 지역 전체가 으스스한 편이다”고 말했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다른 재개발 구역은 직사각형 모양이지만, 해당 구역은 새장 모양으로 사업성이 없어 건설사가 들어 오지 않으려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다른 재개발 단지와 비교해봐도 구역이 작아 사업이 원활히 진행이 되지 않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주민간 갈등이 커지고 마을이 슬럼화되고 있지만, 광주시는 재개발 사업에 시가 개입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광주시는 10년에 한번씩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5년에 한번씩 타당성 용역을 진행하면서도, 2006년 당시 재개발 사업을 아직까지 그대로 두는 것은 직무유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 지침에는 ‘정비예정구역 지정 이후 정비사업이 착수되기 전까지의 기간이 길어질 경우 정비예정구역관리계획을 별도로 수립할 수 있다’는 관리 규정을 두고 있지만, 이 지역에는 지난 17년 동안 어떠한 계획도 세워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시 관계자는 “재개발구역에 해당 규정을 반드시 해야 하는 강행규정은 아니다”며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다”고 해명했다.

/천홍희 기자 str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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