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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재 허백련 동상 앞에 웬 ‘친일파 단죄문’?
시, 광주 상징 조형물 삼겠다며 미술관에 있던 동상 학동삼거리로 옮겨
서정주 시인이 쓴 시비 있다는 이유로 작년 동상앞에 친일 단죄문 설치
의재 선생 친일행적 한 것으로 오인…“광주시 전형적 탁상행정” 지적
2022년 05월 23일(월) 20:50
광주시 동구 학동삼거리 소공원에 있는 의재(毅齋) 허백련(1891~1976) 동상 앞에 친일파 서정주 시인의 단죄문이 설치돼 있다. 사진 왼쪽 아래는 서정주 시인이 쓴 시비.
광주시 동구 학동삼거리에 있는 의재(毅齋) 허백련(1891~1976) 동상 앞 친일파 단죄문이 논란이다.

광주시가 지난해 8월 동상 우측 앞에 세운 ‘친일 반민족 행위자 서정주’ 단죄문이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시민들은 남종화의 대가 의재 허백련이 친일파인지, 아니면 동상 자체가 친일파인 서정주 동상인지 헷갈린다는 것이다.

진도출신의 의재 선생은 호남의 대표적인 인물로 남종화의 대가로 불린다. 일생 동안 꾸준히 작품활동을 한 것은 물론 다양한 사회경험을 기반으로 후진양성과 사회운동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 가운데서도 연진회(鍊眞會)발족은 호남지역 전통화단 형성에 많은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의재 선생의 동상은 선생이 타계한지 3년이 지난 1980년 7월 후학들의 모임인 연진회가 주축이 돼 건립했다.

동상은 천안 독립기념관의 ‘불굴의 한국인상’을 제작한 故 김영중 작가의 작품으로, 동상 앞에 의재 선생 업적을 기린 시비는 연진회의 부탁으로 그와 친분이 있었던 서정주 시인이 작성했다.

시비의 글씨는 ‘윤봉길 열사 기의비’, ‘백범 김구 선생 묘비’,‘유관순 기념비’ 등에 글씨를 남긴 서단의 거장 故 김충현 선생이 썼다.

당초에는 광주시 동구 학동 의재 창작스튜디오(구 연진미술관)내에 설치돼 있던 것을 2010년 광주시의 요청으로 현 위치로 옮겼다. 당시 광주시는 문화예술중심도시를 표방하면서 의재 선생을 기리는 도로인 ‘의재로’(학동삼거리~증심사 3.7㎞)의 초입에 동상을 설치하길 원했고 결국 (재)의재문화재단으로부터 기증받아 이설하게 됐다.

광주시는 이에 학동삼거리에 소공원(609㎡ 규모)을 조성하고 화단과 바닥분수, 소나무 숲, 학 조형물 5종 등을 설치하고 의재로 중간에 있던 동상을 이전해 시민 및 외지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했다. 의재 선생 동상을 문화중심도시 광주를 상징하는 조형물로 삼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광주시는 이설 11년만인 지난해 8월 의재 선생 동상 앞에 친일 단죄문을 설치했다.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계기로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친일잔재조사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면서 일제 잔재물을 청산한다는 명목이었다. 전문 기관에 조사를 의뢰해 65개 일제 잔재물을 선정한후 지난해까지 3년 동안 친일파 관련 시설에는 해당 인사의 검증된 행적이 낱낱이 기록된 단죄문을, 일제 때 만들어진 신사나 산업시설 및 군사용 지하 동굴 등에는 이를 설명하는 안내문을 설치했다.

문제는 친일 반민족 행위자인 미당 서정주의 시비가 의재 선생 동상에 새겨져 있다는 이유로 동상 바로 앞에 친일 단죄문을 설치했다는 점이다. 광주시는 ‘친일 반민족주의자 서정주’ 단죄문이라는 팻말을 달았지만 남종화의 거장이자 호남 서화계의 상징적 인물인 의재 선생이 친일 행적을 한 것처럼 오해를 불러 일으킬 소지가 있다.

광주1호선 학동증심사 입구역 3번 출구 바로 앞에 위치한 의재 선생 동상 앞에 ‘친일 반민족 행위자 서정주’라고 적힌 단죄비가 자리잡고 있어 모르는 시민들은 이 동상을 서정주 동상으로 오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할 경우는 의재 선생까지 친일파로 오인될 수 있다는 점에서 친일잔재 처리라는 성과에 휩쓸린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유족들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의재 선생의 유족인 허달재 의재문화재단 이사장은 “허백련 선생님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없이 동상 앞에 친일 단죄문을 설치한 것은 모르는 사람이 볼 때 충분히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어 보인다. 또 전체 동상에서 서정주 비문은 극히 일부분이다”면서 “시민들의 의견이 어떠한지는 모르겠으나 반발이 심하다면 시비 자체만을 철거해 미술관에 보관하는 방법도 고민중이다”고 말했다.

광주시도 이러한 문제의 민원을 제기받고 고민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시는 문제가 되는 단죄문의 위치를 옮기는 방안을 검토중이지만 일부에서는 단죄문의 위치만 동상에서 떨어뜨리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 방안인지는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글·사진=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