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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돼지를 위한 정치-하정호 위민연구원 이사
2022년 01월 17일(월) 02:00
“어차피 대중들은 개돼지입니다. 거 뭐 하러 개돼지들한테 신경을 쓰시고 그러십니까?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감독판까지 합쳐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내부자들’에서 언론사 주필이 정치인에게 한 대사이다. 쉽게 끓어올랐다가 금방 식어 버리는 냄비근성을 꼬집는 말이다. 그 다음 해에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이 경향신문 기자들 앞에서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고 흉내내 말했다가 큰코다치기도 했다.

“나는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다 평등할 수는 없기 때문에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신분이 정해져 있으면 좋겠다는 거다. 미국을 보면 흑인이나 히스패닉, 이런 애들은 정치니 뭐니 이런 높은 데 올라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대신 상·하원, 위에 있는 사람들이 걔들까지 먹고 살 수 있게 해주면 된다. 상하 간의 격차가 어느 정도 존재하는 사회가 어찌 보면 합리적인 사회 아니냐. 출발선상이 다른데 그게 어떻게 같아지나. 현실이라는 게 있는데. (구의역에서 컵라면도 못 먹고 죽은 아이) 그게 어떻게 내 자식 일처럼 생각되나. 그렇게 말하는 건 위선이다.” 그날 기자들 앞에서 나향욱 기획관이 했다는 얘기들이다. 그는 행정고시 출신으로 이명박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 비서관,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했고 교육부 대학지원과장, 교직발전기획과장, 지방교육자치과장을 거쳐 정책기획관으로 승진한 인물이었다. 당시에는 이 발언으로 파면되었지만 소청 심사를 거쳐 지금은 부이사관급(3급)으로 강등만 당한 채 국립국제교육원에서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언론은 종종 후진적인 정치를 시민들의 냄비근성 탓으로 돌린다. 사건 사고가 있을 때는 열심히 떠들다가도 결국 선거에서 뽑는 것은 그런 문제를 일으킨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령 시민들에게 그런 냄비근성이 있다손 치더라도 덜떨어진 정치를 모두 냄비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냄비는 저절로 데워지지 않는다. 군불을 땐 누군가가 있게 마련이다. 정치든 언론이든. 그래서 또 정치가 언론을 탓하는 것일까? 누굴 탓하려 들면 그 연결고리는 뱅뱅 돈다. 낙후한 정치는 시민 탓이고, 시민이 그 모양인 건 언론 탓이며, 언론이 그렇게 썩은 것은 또 이를 악용하는 정치 탓이다. 하잘것없는 이 순환 논증의 고리를 끊는 법은 간단하다. “그래, 이게 다 내 탓이야. 내가 책임질게.”

우리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2016년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아 4·16 교육 체제의 도입을 선언한 때였다. 교과서 자율 발행제, 학부모의 학교 참여 휴가제, 선거권 만18세 하향 조정, 교대·사범대 통폐합 또는 교대 단일대학으로의 통합, 보육과 유아교육 서비스 연계 강화, 고교 완전 무상교육, 국가교육위원회와 교육격차해소위원회 설치, 수능 절대평가제 도입과 수능 폐지 후 자격 고사제 전환, 대입추첨제 전형 도입 등이 모두 그 선언에 포함됐다. 세월호 유가족들 앞에서 한 약속이었다.

당시 공동선언문에 합의한 14명의 교육감 대부분은 아직 현직에 있다. 약속은 얼마나 지켜졌나?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처럼 혁신 학교를 4·16 교육 체제의 성과라고 자랑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지금은 14명의 교육감 모두 그 약속을 잊은 것 같다. 지난 10일 발표한 이재명 후보의 교육 공약도 4·16 교육 체제에는 훨씬 못 미친다. 세월호 10주기가 될 때에는 “우리는 개돼지가 아니다”라고 떳떳하게 답할 수 있을까?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말한 지도 50년이 지났다.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는 게 전태일 열사의 외침이었다. 4·16 교육 체제 공동선언을 지켜라. 아직 세월호 아이들이 지켜보고 있다. 커다란 아픔을 겪고도 그 만큼 성숙하지 못한다면 자신과 이웃의 삶에 대한 바른 태도가 아니다. 대선에 줄 서서 교육감 되기만 바라는 게 아니라면, 말 못하는 대통령 후보의 입이라도 열어라. 그게 소위 ‘진보 교육감’이라고 불리는 당신들이 해야 할 일이다. 당신들이 내뱉은 말. 지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