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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감히 대권(大權)이라고 하는가-박재영 광주전남연구원장
2022년 01월 13일(목) 23:10
어이가 없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라고 명시돼 있다. 1조 1항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적시하고 있다.

그런데 모든 언론, 정치인, 대선 후보자, 지지자 등이 아무런 생각 없이 아니 대놓고 ‘대권(大權) 도전’ ‘대권 향배’ ‘대권 쟁취’ 등의 용어를 쓰고 있다. 그래도 되는 걸까? 늘 이러한 점이 못마땅했다. 우리나라가 왕을 모시는 전제국가, 왕권 국가인가?

엄연히 1948년 제헌 헌법 이래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돼 있는데 말이다.

20대 대선 후보가 결정되기 전 2020년 초 당의 대선 후보를 놓고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을 때다. 어느 당 후보 측근에게 “‘대권 도전’처럼 대권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말이 되느냐? 대통령이라는 큰 임무를 내가 맡으려고 한다는 의미에서 ‘국가 대임’이라는 말을 쓰고, 국가 대임 후보 출정식이나 하라”고 했더니 어떤 방송사 정치부장을 했던 후보 측근이 “그게 그거지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핀잔을 주었다.

그래서 필자가 “왜 차이가 없느냐, 우리가 왕조 국가나 북한과 같은 공산 국가도 아닌데 대권이라는 말을 써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지방 일간지 사장과 또 다른 신문사 정치부장에게 언론에서 캠페인이라도 해야 한다고 다시 얘기했더니 오히려 난감해 하면서 투고를 권유했다. 올해 초 한 지방신문 사설에서도 ‘대권의 향배’라는 용어를 썼다. 신지영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가 한 일간지와 인터뷰한 내용을 보고 많은 공감이 갔다. 신 교수는 ‘언어의 줄다리기’(2018년)란 책에서 ‘각하’에 이어 ‘대통령’은 사라져야 할 표현으로 지적했다. 각하는 봉건시대에 ‘폐하-전하-저하-합하-각하’ 순으로 황제부터 차례로 신분 차이에 따라 쓰던 말이다.

각하는 일제강점기 조선 총독에게,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대통령 등에 사용되다가 이제는 거의 쓰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인데 절대로 ‘각하’라는 말을 써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신 교수는 ‘대통령’이라는 단어도 일본을 통해서 들어온 것으로 미국의 ‘President’를 ‘대통령’으로 옮긴 것이라 한다. 회의의 주재자가 어느새 ‘크게 거느리고 다스리는 사람’으로 되었다고 지적한다. 대통령이란 용어는 국민을 주권자가 아닌 관리자 통제의 대상으로 여기는 생각이 들어 있다고 본다.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표, 줄여서 대표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대권’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신 교수는 ‘대권’은 왕의 권한을 의미하는 것으로 군주제의 망령이 서린 표현이므로 반드시 쓰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권’은 큰 권력이라는 뜻이라고만 볼 때도 큰 문제이다.

대통령은 권력이나 권리가 아니라 의무와 책임을 갖는 자리다. 대임(큰 임무) 정도가 어떨까 라고 생각해 본다. 이제 모든 언론에서 이 문제 즉 대통령이라는 용어, 대권이라는 용어를 쓰지 말자는 캠페인, 제언을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통령 후보들에게 이 용어를 쓰지 말고 소위 대임, 대한민국 대표라는 용어를 쓰자고 제안해야 한다. 언론부터, 정치권부터, 학계부터 일반인들에게도 이 제안이 받아들여져 제발 20대 대통령(대한민국 대표) 시대부터 ‘대권’(대임), 대통령이라는 용어가 쓰지 않거나 바뀌어 쓰이면 좋겠다는 행복한 상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