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은 어떻게 우리의 눈을 가리는가 - 채희종 사회부장 겸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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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은 어떻게 우리의 눈을 가리는가 - 채희종 사회부장 겸 편집부국장
2021년 08월 10일(화) 23:10
도쿄 2020년 하계올림픽은 ‘코로나19’ 공포에 폭염까지 겹친 데다 무관중 경기로 열려 흥행에 실패한 최악의 올림픽으로 꼽힌다. 하지만 매 경기 온 몸을 불사른 투혼이 있었다. 모두가 패배를 점쳤던 터키와의 경기에서 기적을 일군 여자 배구팀이 대표적이다. 결승전에서 패하고도 주저 없이 금메달을 딴 상대에게 엄지를 세워 보인 태권도 이다빈 선수의 매너도 우리를 흐뭇하게 했다. 한 경기 한 경기 모두 벅찬 감동의 연속이었다.

아직 나이가 어려서 멀었고, 이젠 나이가 많아서 힘들고, 신장이 크지 않아 불리하고, 힘이 달려 불가능하다는 주위의 편견들을 하나하나 깨뜨리며 한계에 도전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눈물샘을 자극하고 새삼 가슴을 뛰게 했다.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으로 과학적 전력 분석을 단순한 편견으로 일축해 버리는, 혼이 담긴 경기에 우리는 열광한다. 후회 없는 경기를 하고 그래서 져도 웃을 자격이 있는 선수들에게 어떤 편견을 가질 수 있겠는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구도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지식으로 알 수 있는 것만을 존중하며,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신기해하고 싫어하는 것은 낡았다고 여긴다. … 편견은 무지의 결과이며, 인간의 편견보다 더 강한 것은 없다. 편견을 버린다는 것은 그것이 언제일지라도 결코 늦지 않다”면서 편견의 해로움을 지적했다. 편견이 우리의 눈을 어떻게 가리는지, 상대에게 얼마나 큰 폭력으로 작용하는지 보여 주는 일화도 있다.

버나드 쇼가 초청한 예술 비평가들

‘버나드 쇼’는 영국의 예술 비평가들 중 미켈란젤로를 좋아하는 사람은 로댕을 싫어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들 비평가들은 미켈란젤로의 데생은 탁월하지만 로댕의 데생은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버나드 쇼는 어느 날 이들을 만찬에 초대했다. 만찬이 끝날 즈음, 그는 아주 귀한 작품을 보여 주겠다며 그림 하나를 펼쳐 보이더니 “여러분. 로댕의 데생입니다”라고 말했다. 일순 조용해진 장내에서 웅성거림과 함께 “구도가 이상한데” “뭐 아마추어 작품인가” 심지어 “저것도 그림이야?”라는 혹평과 비난이 쏟아졌다. 잠시 후 버나드 쇼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제가 실수를 했어요. 이 작품은 로댕 것이 아니라 미켈란젤로의 것입니다”라고 사과하자, 만찬장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고 한다.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른 김은국의 소설 ‘순교자’는 극한 상황에서의 인간주의를 주제로 다뤄 ‘도스토옙스키와 알베르 카뮈의 도덕적이며 심리적인 전통을 훌륭하게 이은 작품’이라는 뉴욕타임스의 찬사를 받았다. 이 소설은 6·25전쟁 때 북한의 목사 14명이 인민군에게 체포돼 이중 12명이 처형되고 2명만이 살아남은 얘기를 다루고 있다. 생존자 중 한 명은 충격으로 미쳐 버렸다. 다른 또 한 명의 생존자로, 유일하게 사건의 진실을 아는 신 목사는 자신이 살아남은 일은 ‘신의 개입’이라고 말할 뿐 침묵을 지킨다.

이 때문에 교회 신도들과 주변 사람들은 하나님을 배반한 대가로 혼자만 살아남았을 것이라는 상상과 편견으로 신 목사를 매도하고 괴롭힌다. 그러나 진실은 결국 나중에 밝혀진다. 12명의 목사들은 목숨을 구걸하느라 신을 부인했으나 신 목사만이 당당히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한 것이다. 인민군은 12명을 가짜 목사라며 처형했는데, 당당한 자세를 잃지 않은 신 목사만 진짜 목사로 인정받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안산 선수가 짧은 머리를 한 이유

도쿄올림픽에서 세계 최초로 양궁 3관왕에 오른 안산 선수가 두 번째 메달을 딴 직후, 한 네티즌이 그의 짧은 머리 스타일을 지적하면서 페미니스트 논란이 일었다. 정작 안산 선수는 ‘그냥 편해서 짧은 머리를 했다’는데도 이들은 막무가내였다. 급기야 안산 선수를 극단적 페미니스트로 몰며 ‘금메달을 박탈하자’는 황당한 주장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거야말로 개인 취향에 여성 혐오라는 화살을 쏜 폭력이자 국가 망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20여 년 전 사회부 사건기자 시절에 가졌던 편견 하나가 있다. 매일 경찰서 취재를 한 탓인지 몸에 문신을 한 사람들은 대부분 전과자이거나 폭력배, 아니면 수준이 떨어지는 사람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게 됐다. 이러한 편견은 십수 년의 세월이 흘러도 바뀌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해 어떤 회사의 신입사원 채용 면접관으로 참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여섯 명의 여성 응시자 중 두 명의 직원을 뽑아야 했다. 한데 최종 합격한 두 명 중 한 사람은 손목에, 다른 한 사람은 목 부위에 문신이 있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문신은 개인의 취향이자 선택’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내 안의 편견을 깨려고 노력 중이다.

편견은 쉽게 들어오지만 좀체 나가지 않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편견과 싸우는 것은 그림자와 싸우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고, 깨우쳐 줄 수도 없다. 편견은 자신을 가두는 감옥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편견은 지금 버려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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