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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벅 작가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이중성 표현하고 싶었다”
곤충으로 작품 만들기 20년…고흥서 전시회
빛과 끈끈이로 곤충 유인…‘폭력성’으로 만든 20여 점
윤리단체 등서 항의 받기도 “잔혹함 보다 내면 봐주길”
2021년 08월 01일(일) 23:20
정원 한켠에 우물 펌프가 한 대 놓여있다. 펌프는 본래 인간에게 필수적인 물을 공급하는 ‘생명’의 상징이지만, 이 펌프는 곤충들의 사체를 쌓아 만들었다. 죽음과 생명, 두 상징이 공존하는 이 기묘한 광경은 유벅(63·본명 유성일) 작가의 손에서 태어났다.

유 작가가 고흥 도화헌미술관에서 ‘TO MAKE NATURE’(자연 만들기)를 주제로 개인전을 연다. 전시는 1일부터 오는 30일까지 이어진다.

유 작가는 ‘죽은 곤충’을 소재로 삼았다. 끈끈이와 빛으로 곤충을 유인한 뒤 그 사체를 모아 그림을 그리는 식이다. 이번 전시에는 곤충을 이용해 만든 ‘우물펌프’, ‘새’, ‘나무’ 등 작품 20여점을 전시했다.

그는 전시는 우리가 접하는 자연이 정말 순수한 자연일지, 인간의 입맛에 맞게 재단하는 등 ‘만들어낸 자연’은 아닌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고 돌아봤다.

유 작가는 “작은 곤충들을 죽이면서 형상을 만드는 것은 인간 내면의 폭력성과 권력욕 등을 보여준다”며 “자연을 아름답다고 예찬하면서, 한편으로 폭력으로 자연을 잘라내는 인간의 이중적인 내면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유 작가는 2001년께부터 곤충 작품을 만들어왔다. 당시 비디오 아트 제작에 전념했던 그는 빔프로젝터 빛에 이끌려 날아든 곤충들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생명을 상징하는 ‘빛’이 인간의 손을 거치면 곤충들에게 죽음으로 향하는 유혹이 되는 등, 곤충은 자연과 인간 사이의 모순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소재였다고 한다.

“처음엔 해가 뜨기 전 새벽에 비디오 아트를 상영하고, 햇빛에 차츰 영상이 가려지면 숨겨진 곤충 형상이 드러나는 작품을 했죠. 그 이후 곤충 작품의 가능성을 보고 20여년 동안 작품 소재로 활용해 왔습니다. 2010년 이후로는 비디오 아트보다는 곤충 작품, 설치 미술, 골판지 예술 등에 집중하고 있죠.”

작품 하나를 제작하려면 충분한 양의 곤충이 모여들어야 한다. 짧게는 2~3일, 길게는 일주일 넘게 걸리기도 하며 그나마도 곤충이 많은 6~7월에만 만들 수 있다.

생명체를 이용한 작품인 만큼 종교인이나 자연보호·생명윤리단체 등으로부터 반발도 많았다.

유 작가는 “고기를 얻고자 동물을 도축하는 등 인간은 다른 생명체를 죽이면서 자기 생명을 지켜 왔다”며 “이 모순을 표현하기 위해 예술가로서 해야 하는 일이다. 잔혹한 겉모습보다 내면의 의미를 곱씹어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 작가는 추계예술대학 서양화과와 프랑스 파리 8대학 조형예술과를 졸업했다. 런기스 고기공장 영상 프로젝트(프랑스), 반 호에크 갤러리(파리), 파스칼 갤러리(파리), 토탈 미술관(서울)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 및 세계수영선수권대회 특별전(광주), 2018 PAF 파리(바스티유,파리), 금강 자연 미술 비엔날레 큐브전(공주) 등에서도 작품을 선보였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