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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겹게 내는 SOS 신호…학교가 눈·귀 더 열어야
방관이 부르는 비극 학폭 <하>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형식적인 실태조사 도움 안돼
피해 학생들 입 열 수 있도록
지속·효과적인 예방교육 절실
멘토 담당 교사들도 많아져야
2021년 07월 15일(목) 00:30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최근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고교생은 또래 학생들 10여명에게 수시로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학교는 학생의 피해 사실을 전혀 몰랐다. 지난해 9월 이 학교 대상자(702명)의 82.1%인 576명이 참여한 온라인 학교폭력 실태 전수조사에서도 학교폭력 피해를 제보한 학생은 없었다.

10년 전인 2011년 12월 학교폭력으로 세상을 등진 대구 권승민군 사건 이후 나온 전문상담사 배치, 폭력실태 전수조사, 매학기 1차례 이상 교사·학생 1대 1 면담 등의 정책들이 현장에서 겉돌고 있는 것이다.

학교폭력은 현장을 중심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학교가 학생들이 힘겹게 내는 SOS 신호를 잡아내는 데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안타까운 학폭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학교야, 눈을 뜨고 귀를 열어라=비영리공익법인인 푸른나무재단이 실시한 학교폭력 실태조사는 학교에서 학교폭력이 발생해도 학교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거나 개입을 꺼리는 현실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재단이 지난해 말 전국 학생(초등 2~고교 2학년) 62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1 전국학교폭력·사이버폭력 실태조사’ 결과, 학교폭력 피해를 당한 뒤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응답한 학생은 18.8%에 달했다. 학교폭력을 저지른 뒤에도 가해 학생들에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응답한 경우는 21.5%나 됐다.

학교폭력이 일어났는데, 가해자도 별다른 제재가 없는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나다보니 피해자들이 입을 다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광주 고교생 학교폭력 피해 사건의 경우 가해자로 10명 이상이 지목됐고 교실 안팎에서 수시로 괴롭힌 것으로 파악되는데도 학교측은 전혀 징후를 느끼지 못했다. 상담 요청도, 상담을 통한 피해 호소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학교측은 피해학생의 고통을 모른 채 고작 ‘교육관계가 좋은 학생’으로만 파악하고 있었다.

교육청 관계자는 “예전에는 생활기록 기초조사를 통해 가정 조사를 했지만 지금은 개인정보보호 때문에 파악하기가 어렵다”면서 “가족 내부 일을 학교에서 묻는 자체로 낙인 효과 등 인권침해 우려가 있어 밀접한 면담은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학교폭력 실태조사도 허점이 적지 않다. 광주 학교폭력 피해학생의 경우 학교에서 실시한 정서행동특성검사 결과, 별다른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다는 게 교육계 설명이다. 학생이 직접 상담이나 피해를 드러내지 않는다면 파악하기 어려운 점을 감안하면 학교와 교육당국의 세심한 관찰과 학생들이 피해 사실을 드러내 말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절실하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어느 시점에서 학교폭력이 우리의 학교와 시스템으로 확인이 되지 않는 것은 학생들이 믿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교사의 부재 때문”이라며 “평소 학생들이 믿고 의지 할 수 있고 긴밀한 관계를 맺는 멘토 교사의 역할을 담당할 교사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야, 아이들을 살펴라=지난 3월 개정된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은 교사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심각한 신체폭력이 아닐지라도 학교폭력의 조짐이 있거나 발생을 목격할 경우 보호자나 해당 학교에 통보하거나 교육청에 보고나 신고하도록 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교사 개입은 한정적이다. 학교도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다 은폐 우려까지 나온다.

올해부터 ‘학교장 자체 해결제’를 통해 경미한 학교폭력은 학교폭력자치위원회를 통해 심의·의결로 해결 하고, 이외의 사안은 교육지원청 심의위에서 해결하도록 변경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학교측이 학교폭력 문제를 크게 만들지 않기 위해 경미한 학교 폭력으로 넘길 우려도 여전하다.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발견된 폭력을 보고하거나, 학생의 진술서를 받고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

‘학교폭력 전담 교사’도 행정적 절차를 수행하는 데서 멈춰야 한다. 피해학생 보호를 위한 교사의 구체적인 역할이 제도에서 빠져있다 보니 피해학생들이 호소할 곳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지난 2011년 학교폭력에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고(故) 권승민 군의 어머니 임지영씨도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담당 교사는 진술서만 쓰면 된다는 인식이 생기게 된다”면서 “학교현장에서 발생하는 학교폭력은 학교에서 가장 빨리 알아챌 수 있기 때문에 학교와 학교장의 강력한 의지가 있다면 충분히 사전에 인식 가능하다”고 말했다. <끝>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