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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목싸목 남도 한바퀴 - 목포, 발길 닿는 곳마다 역사의 흔적
유달산부터 고하도까지
해상케이블카 타고 유적지 탐방
일제강점기 수탈 현장 고하도
해상데크길엔 이순신 장군 동상
100년 전 시간여행 ‘근대역사관’
번화로 따라 일본식 가옥·상가도
2021년 06월 29일(화) 07:00
목포 북항에서 유달산을 거쳐 고하도까지 운행하는 ‘목포 해상 케이블카’. 전체길이는 3.23㎞로 국내에서 가장 길다.
예향(藝鄕), 맛의 도시, 낭만항구, 대한민국 4대 관광거점도시… 목포를 수식하는 브랜드는 다채롭다. 개통 2년을 맞은 ‘목포 해상케이블카’와 대반동 ‘스카이 워크’, ‘춤추는 바다분수’ 등은 여행자들에게 목포만의 색다른 인상을 남긴다. 일제강점기 건축물과 유달산 자락에 형성된 서산동, 목원동 등지 좁은 골목길을 찾아 10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산과 도심, 바다를 동시에… ‘목포 해상케이블카’=지난 2019년 6월 개통한 ‘목포 해상케이블카’는 지난 1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에서 주관하는 ‘2021~2022 한국관광 100선·야간관광 100선’에 이름을 올렸다.

해상 케이블카는 ‘북항 스테이션’을 출발해 ‘유달산 스테이션’에서 잠시 정차한 후 바다를 가로질러 ‘고하도 스테이션’까지 왕복 운행한다.

‘북항 스테이션’(목포시 해양대학로 240)에서 ‘크리스탈 캐빈’에 올랐다. ‘일반 캐빈’과 달리 밑바닥이 투명하다. 케이블카는 얼음 지치듯 매끄럽고, 가뿐하게 출발한다. 발 아래로 짙은 초록물결이 흐르는듯 하다. 진행방향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1970년대 인기를 끈 하이틴 영화 ‘얄개시대’ 촬영지인 목포 혜인여고와 목포 시가지, 멀리 삼학도가 보인다. 오른쪽으로는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유달산 일등바위, 이등바위가 손에 닿을 듯하다. 마치 거대한 새를 타고 산위로 날아가는 것 같다. 유달산 능선에 ‘유달산 스테이션’이 마련돼 있어 하차해서 목포출신 가수 이난영을 기리는 ‘목포의 눈물’ 노래비를 찾아보거나 산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유달산 한자표기에도 목포의 역사가 배어있다. ‘목포시사(木浦市史)’(2017년)에 따르면 조선시대에 450여 년간 ‘놋쇠 유’(鍮)자를 써서 ‘鍮達山’으로 표기했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깨우칠 유’(諭)자로 바꿔 ‘諭達山’으로 문서에 기록했다. ‘조선민족을 몽매(蒙昧·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음)에서 깨우침에 이르도록 한다’는 치욕적인 의미가 담겨있었다. 이때 목포 사람들은 이에 맞서 의식적으로 ‘선비 유’(儒)자를 써서 ‘유학의 가르침에 이르도록 하다’는 현재의 ‘儒達山’으로 표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목포 해상케이블카를 이용해 유달산과 고하도까지 하루에 ‘슬기롭게’ 돌아보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김문심 문화관광해설사는 이렇게 말했다.

“세 곳의 케이블카 스테이션 가운데 ‘북항 스테이션’이 가장 타기가 좋습니다. ‘북항 스테이션’에서 탄 후 중간 ‘유달산 스테이션’에서 내려서 유달산 전경을 보고, 다시 고하도 용오름부터 이순신 장군 유적지까지 봅니다. 그리고 해가 질 무렵쯤 돌아오는 케이블카를 타게 된다면 저녁 노을과 목포 전경을 다 볼 수 있습니다. 이때가 너무 아름답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바다끼고 호젓하게 걷는 ‘고하도 해상데크길’=‘북항 스테이션’에서 ‘고하도 스테이션’까지는 20분이 소요된다. 케이블카에 내려 나무계단과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 여러 척의 판옥선을 겹쳐놓은 듯한 디자인의 전망대에 닿는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목포대교와 목호 내항, 유달산 풍경이 가슴 속까지 시원하게 한다. 바다를 끼고 해안절벽과 나란히 걷는 해상 데크길은 호젓하다.

현재 고하도 해상데크 연장 작업이 한창이다. 목포시는 지난 2019년 11월 개통한 1080m 길이의 1차분 해상데크에 이어 738m 길이의 2차분 해상데크를 7월 개통을 목표로 시공하고 있다.

‘고하도 해상데크’에 설치돼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
해상 데크길 중간에 칼을 빼든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세워져 있다. 김 문화관광해설사는 충무공과 고하도의 인연에 대해 설명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이 106일을 머물면서 7000명의 군사를 모집하고, ‘해로통행첩’(海路通行帖)을 발급해 많은 군량미를 확보하고, 40여척의 전선(戰船·판옥선)을 건조해 조선수군을 재건한 곳입니다. 노량해전에 출정하기 까지 징검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고하도는 일본강점기 일제의 수탈과 노동력 착취의 역사현장 이기도 하다. 1904년 목포 일본 영사 와카마츠 도사부로(若松兎三郞)의 주도로 미국산 육지면 시험재배에 성공한 곳이다. 선착장 인근 해안 등 고하도에는 전황이 긴박하게 돌아가던 태평양 전쟁 말기에 판 군사용 인공동굴 14곳이 남아있다. 미군 군함을 공격할 목적으로 일본 해군의 특공 잠수정을 감추기 위해 U자형을 띠고 있다.

해변데크길을 여유롭게 거닐고, 충무공 5세손 이봉상 수군통제사가 세운 ‘고하도 유허비’(이충무공 기념비)와 주변 곰솔 숲까지 돌아보려면 시간을 충분하게 내야할 듯싶다.



◇ 100년 전 목포 근대역사 속으로 ‘시간여행’= 목포(木浦) 지명은 나무나 목화와 무관하게 ‘영산강과 바다가 만나는 길목에 있는 포구’라는 지리적 특성에서 유래했다. 1439년(세종 21년) 4월 목포진이 설치되면서 지명으로 확정됐다. 목포항은 1897년 10월 1일, 대한제국이 자주적으로 개항했다. 일제 또한 목포가 가진 ‘항구로서 지리적 장점’과 ‘목포진을 중심으로 한 시가지 건설상의 확장 가능성’에 주목했다.

목포 근대역사관 제1관(옛 일본 영사관)과 목포 근대역사관 제2관(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에서 100여 년 전 목포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목포시에서 만든 ‘목포 근대역사 문화공간’(등록문화재 제718호) 지도가 길라잡이 역할을 톡톡히 한다.

옛 일본영사관 앞 개항장 도로망은 격자형을 이루고 있는데 ‘채광’을 고려한 도시계획이라 한다. 영사관에서 바다 쪽으로 뻗은 도로 폭은 8m로, 지금 개념으로도 무척 넓은데 ‘목포시사’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계절적으로 직사량을 최대한 받기 위해 주요 도로의 건설을 동서로 하였고, 해안성 기후의 이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풍향 등을 고려하여 계획하였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리플렛에는 모두 15곳의 건물이 안내돼 있다. 유달초등학교(옛 목포 공립 심상소학교)앞에서 번화로를 따라 일본식 가옥과 상가들을 하나씩 찾아본다. 2년 전 ‘샘집문구’라는 상호를 달고 있었던 2층 ‘일본식 가옥-1’은 집주인이 운영하는 카페 ‘번화로’로 멋지게 변신해 있었다. 본래 농업과 임업, 개간지임대 업무를 하던 후쿠다(福田) 농업주식회사 사택으로 1935년 지어진 집이다.

‘상가주택-1’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 신발(게다)을 팔던 상점이었다. ‘사슴 수퍼마켓’이라는 간판을 그대로 달고 있는 이곳은 목포를 찾은 여행자들의 하루를 기록하는 ‘기록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주변에는 ‘결연한 전진’이라는 작품명의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일본의 진정한 사죄와 배상을 받기 위해 세운 작품으로 ‘목포 평화의 소녀상’과 함께 울림을 준다.

‘옛 동아부인사오히 목포지점’ 내부를 살펴본 후 ‘해안로 붉은 벽돌창고’를 가던 중 강원도 춘천에서 왔다는 60대 부부와 마주쳤다. 부부 역시 벽돌창고를 찾아가고 있다고 했다. 창고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딱! 오라이!’와 ‘06식당’ 건물 사이 ‘용궁장’ 간판 아래에 있어 놓치기가 쉽다. 목포에 남아있는 유일한 부두창고로 3동이 어깨를 맞대고 있다. 붉은 벽돌을 엇갈려 가며 단단하게 쌓은 조적(組積)방식에서 ‘식민통지와 물자수탈을 영구히 하고자 했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다.

날이 저무는 시각, 대반동 ‘스카이 워크’(목포시 해양대학로 59)로 발길을 돌린다. 지난해 7월 개방한 이곳은 바다 쪽으로 15m 높이의 구조물이 돌출돼 있다. 바닥이 투명 강화유리와 스틸 발판으로 돼 있어 마치 바다 위를 걷는 듯한 스릴을 안겨준다.

개항 120여년, 목포는 수탈과 침략의 아픈 역사를 딛고 미래로 비상(飛翔 )하고 있다.

/글·사진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 목포=박종배 기자 pjb@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