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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 아닌 딛고 일어서는 ‘광주’ 보여주고 싶었다”
[5·18 40주년 기념 창작 뮤지컬 ‘광주’ 고선웅 연출가]
5·18 상징 ‘님을 위한 행진곡’
대중화·세계화 사업 기획 작품
“진실은 아무리 파묻어도 진실, 그냥 편안하게 보러 오시라”
2020년 11월 24일(화) 10:00
창작 뮤지컬 ‘광주’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1980년 5월의 추모곡이자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노래인 ‘님을 위한 행진곡’(김종률 작곡)의 대중화·세계화 사업의 하나로 기획된 작품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광주광역시가 주최하고, 광주문화재단과 라이브(주), 극공작소 마방진이 제작했다. 뮤지컬 ‘광주’를 무대에 올린 고선웅(52) 연출가를 최근 서울 대학로 공연장에서 만났다.

◇80년 오월의 ‘진실’과 마주하는 뮤지컬=창작 뮤지컬 ‘광주’는 서울 초연을 마치고 전국 투어를 진행중이다. 경기도 고양시와 부산, 전주(28~29일)를 거쳐 광주 빛고을 시민문화관(12월 11~13일)에서 광주 시민들을 만날 예정이다. 지난 10월 9일부터 한 달간 서울시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무대에 올려진 뮤지컬 ‘광주’는 1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뮤지컬 ‘광주’는 고선웅 연출가가 ‘80년 오월 광주’를 소재로 무대에 올린 4번째 작품이다. 앞서 연극 ‘들소의 달’(2009년)과 ‘푸르른 날에’(2011년), ‘나는 광주에 없었다’(2020년)를 통해 ‘광주’의 이야기를 특유의 감각으로 풀어낸 그에게 이번 작품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경계인 같은 느낌으로 작업을 했어요. 애매한 선을, 줄을 타는 사람과 비슷한데 (광주)속으로 쑤욱 들어가면 뮤지컬적인 서사를 풀기 어렵고, 너무 빠져나와 버리면 광주가 가지고 있는 본질이 희석되고…. 애매한 경계에서 뮤지컬을 풀어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계속 저를 무겁게 했었죠.”

이전 작품과 닮은 동음반복의 서사 방식을 피하면서 ‘광주’를 이야기 하고, 엔터테인먼트적인 대중성도 확보해야 하는 ‘애매한 경계’에서 뮤지컬을 풀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그의 어깨를 무겁게 했다. 고 연출가는 누구나 이미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2시간 25분 동안 계속 이야기를 관람하면서 몰입할 수 있는 연극적 장치들을 고안하고, 서사를 만들어내기 위해 고심하며 ‘큰 그림’을 그렸다.

이번 뮤지컬에서 눈에 띄는 캐릭터는 ‘편의대’(便衣隊)이다. 1980년 당시 미 육군 방첩부대(501 정보여단) 광주파견대 군사정보관으로 재직했던 김용장 씨가 지난해 5월, 기자회견에서 “일명 ‘편의대’로 불리며 시민행세를 했던 사복 군인들이 있었다”라고 폭로한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찾았다. 고 연출가는 동음반복의 서사를 피하기 위해 남들이 가지 않았던 길을 선택해 작품을 구상했다. 가해자와 피해자 중간에서 당시 광주 상황을 대변할 수 있는 특수부대 편의대원 ‘박한수’의 제 3의 시선을 통해 새롭게 5·18의 진실에 다가가 서사를 풀어가는 방식이다. ‘박한수’ 역은 뮤지컬 배우 테이와 민우혁, 서은광이 맡아 열연했다.

이번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수도권 ‘코로나 19’ 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격상에 따라 갖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연습실을 4번이나 옮겨야 했고, 최소 인원만 모여 연습해야 했다. 고 연출자를 비롯한 스태프와 배우들은 지난 6월, 광주 망월동 묘지와 옛 505 보안부대, 옛 전남도청 등지를 현장 답사하며 ‘오월 광주’를 가슴으로 이해하고자 했다. 10월 9일 열린 쇼케이스에서 그는 “(당시 광주 시민들이) 넘어져서 아파하는 것이 아니라 (아픔을) 딛고 일어선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창작 뮤지컬 ‘광주’는 1980년 5월 광주를 배경으로 신군부의 폭력에 맞서 싸운 시민들의 뜨거운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연합뉴스
◇누나 책꽂이에 있던 책 통해 5·18 접해=고 연출가는 치밀한 연출을 통해 비밀임무와 양심 사이에서 고뇌하다 변화하는 ‘편의대원’ 박한수와 ‘평범한’ 광주시민들을 두 축(軸)으로 삼아 이야기를 전개한다. 505 부대 특무대장 ‘허인구’와 야학교사 ‘윤이건’·‘문수경’, 음악사 주인 ‘정화인’, 열혈 시민군 ‘이기백’, 야학생 ‘오용수’·‘장삼년’ 등 많은 캐릭터들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 5·18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를 지켜보고 씻김굿 같은 느낌으로 해원(解寃)해 주는 ‘거리천사’ 설정도 눈길을 끈다.

“봄이잖아 그렇잖아/ 이제 그만 가슴을 열어/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말하고 노래하고/ 후회없이 사랑할 거야!”(‘그날이 올 때까지’ 중)

뮤지컬 ‘광주’에서 극 주요 장면마다 흘러나오는 ‘넘버’들이 돋보인다. 창작 음악극과 뮤지컬 분야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는 최우정 서울대 작곡과 교수가 작곡한 서곡부터 ‘그날이 올 때까지’와 ‘검은 리본 달았지’, ‘어둠은 가시고 눈물은 마르리’, ‘진실 속에 영원히’ 등 40곡의 넘버들이 관객들의 가슴을 울린다. ‘훌라훌라’와 ‘천불난다’ 등 장면마다 다채로운 노래들이 팽팽한 극의 긴장감을 풀어준다.

극의 마지막, ‘산자’와 ‘죽은 자’, 진압군 까지 모두 무대에 나와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선율 속에 ‘님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부른다. 그리고 꽃으로 수를 놓은 대형 액자 하나가 서서히 무대에 내려온다. 거기에는 영정사진 대신 ‘진실을 진실로 알고 진실되게 행하는 자 진실 속에 영원히’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묵직한 여운을 주는 피날레 설정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걸까?

“저는 돌아가신 분들이 그렇게 사셨다고 생각해요. 진실 속에 영원히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진실은 아무리 파묻어도 진실이고, 거짓은 아무리 숨겨도 거짓이에요. 아무리 그분들을 폄훼(貶毁·깎아내려 헐뜯음)해도 그분들의 진실은 영원한 거죠. 그 이야기를 전해 드리고 싶었어요.”

‘80년 오월 광주’를 소재로 4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린 고선웅 연출가는 광주와도 인연이 깊다.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난 그는 중3 때 아버지 고향인 무안으로 전학을 와서 1984년부터 3년간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때 조대부고 문학반 ‘갯벌’과 광주지역 연합 문학동인 ‘청솔’에서 활동하며 시에 푹 빠져 살았다. 학력고사 보기 1주일 전까지 3년 동안 시(詩)토론에 한 번도 안 빠진 것을 자랑으로 삼는다.

그는 고교시절, 전남대 총여학생회 간부로 활동하던 ‘운동권’ 누나의 책꽂이에 꽂혀있던 여러 사회과학 서적들을 들춰보곤 했다. 그중 한권이 1985년 5월 출간된 5·18 항쟁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였다. 무척 놀랐다. 시(詩) 습작과 5·18, 최루탄 가스, 대학생 시위… 10대 후반 광주에서 강렬하게 뇌리에 박힌 기억들은 나중 ‘5월 광주’를 소재로 한 첫 작품 ‘들소의 달’ 등을 극작할 때 큰 도움이 됐다. 그는 “(뮤지컬 ‘광주’를) 준비하는 내내 가슴뼈가 따끔거렸습니다. 나도 그들처럼 그럴 수 있었을까”라고 속마음을 표현했다.

◇고전 비틀기 등 ‘고선웅 스타일’ 작품 호평=중앙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고 연출가는 직장생활을 하다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우울한 풍경속의 여자’로 등단하며 연극판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후 연극 ‘푸르른 날에’와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창극 ‘변강쇠 점찍고 옹녀’, 뮤지컬 ‘아리랑’, 오페라 ‘1945’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화제작을 무대에 올려 주목받았다.

특히 5·18의 무거운 현대사를 ‘명랑 신파극’으로 풀어낸 ‘푸르른 날에’를 연출해 박근혜 정부 시절,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실이 2017년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그는 연극을 하며 행복하다. 연습하고, 작업하는 자체가 즐겁다. 질린 적이 없다. 연극의 놀이성과 관객과의 소통을 중시한다. 그에게 연극은 놀이와 같다. 지난 2005년에 그가 ‘마술적 사실주의’를 내세우며 창단한 극공장소 마방진은 올해로 15주년을 맞았다. 창의적이고 날카로운 시선과 통찰력이 담긴 그의 연극적 화두(話頭)는 무엇이고, 연극 세계는 어떻게 확장될까? ‘우리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 연극계 ‘미다스 손’으로 불리는 그는 앞으로 어떤 ‘좋은 연극’ 작품을 쓰거나 연출하고 싶을까? 관객들은 고선웅의 끝없는 ‘진화’를 기대한다.

“저는 솔직히 공부가 깊진 않지만 노자, 장자 같은 분들을 좋아하죠. 앞으로 인생의 넉넉한, 어떤 이슈거리나 논박(論駁)에 휘말리지 않는 편안하고 사랑스러운 그런 이야기를, 작품을 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마무리 하며 뮤지컬 ‘광주’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그냥 뮤지컬 ‘광주’를 보러 오셔야 된다고 생각해요. ‘광주의 아픔을 같이 하십시오’라고 하고 싶지 않아요. ‘광주의 이야기니까 이래야 되고, 이런 장면은 이런 상황이니까 이래야 돼’ 라고 하는 자기만의 구분 짓고, 분별없이 (광주에서) 벌어진 일들에 그냥 충분히 편안하게 보시면 어느 순간 광주가 심장에 들어오지 않을까… 제 속마음입니다.”

/글·사진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