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과 양’ ‘달’ ‘비상하는 학’…한국화 계승 공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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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과 양’ ‘달’ ‘비상하는 학’…한국화 계승 공간으로
(11) 이천시립월전미술관
2020년 10월 19일(월) 09:00
월전미술관의 전시실 모습
경기도 이천을 여행하다 보면 인상적인 풍경이 있다.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안흥지와 설봉호수다. 안흥지가 도심 속 연못이라면 설봉호수는 이천시를 감싸는 오아시스 같다. 그래서일까. 인구 35만 여 명의 중소도시이지만 전원도시 같은 분위기가 감돈다. 특히 인공호수인 설봉호는 99.174㎡(약 3만평)의 면적에 둘레가 1.05㎞에 달해 시민들의 산책 코스로 인기가 많다. 무려 80m의 높이까지 무지개빛 물을 뿜어내는 고사분수와 세계 각국 유명 작가들의 조각 작품들로 빼곡한 설봉국제조각공원이 호수를 에워싸고 있어 포토존으로도 유명하다.

이천시립 월전미술관은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설봉공원 안에 들어서 있다. 한국화의 거장이자 현대화단의 마지막 문인화가였던 월전 장우성(1912~2005) 화백의 예술혼을 기리기 위해 설립됐다. 월전은 동양 고유의 정신과 격조를 계승해 현대적 조형기법을 조화시킨 인물로, 해방이후 ‘신문인화’의 회화세계라는 새로운 미술의 형성과 발전에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장우성 화백 작 ‘승무’(비단에 채색·1937년 작)
충북 충주에서 태어난 장 화백은 3살 때 경기도 여주군 외사리로 이사온 뒤 1959년 가족들이 모두 서울로 올라갈 때까지 40여 년을 여주에서 살았다. 그가 생활하던 여주 외사리는 이천시와 지리적으로 가까워 자녀가 모두 이천에서 학교를 다녔고 생전 이천의 지역인사들과 교분을 나누는 등 인연이 깊었다.

서울대 미대와 홍익대에서 후학들을 양성한 그는 한국화단을 위해 평생 모은 사재를 환원하기로 하고 1989년 월전미술문화재단을 설립, 그의 대표작과 국내외 고미술품 컬렉션을 모태로 1991년 서울시 종로구 팔판동에 사립 월전미술관을 건립했다.

하지만 월전 미술관이 연고지인 여주가 아닌 이천에 둥지를 틀게 된 데에는 지역사회의 러브콜이 있었다. 당시 연고지인 여주와 월전의 출생지인 충주가 앞다투어 유치전에 뛰어 들었지만 월전은 이천을 선택했다.

지난 200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중 양인전’은 월전 미술관이 이천에 오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 전시회장을 찾은 유승우 전 국회의원(전 이천시장)은 장 화백의 예술세계에 감명을 받은 후 이천과의 인연을 내세워 시립미술관 유치에 적극 나서면서 탄력을 받았다. 이천시는 장 화백의 숭고한 예술혼을 품은 명품 미술관으로 짓기 위해 ‘시립 월전미술관건립 건축현상설계공모’를 실시했다.

지난 2007년 개관한 이천시립월전미술관은 생전 달을 좋아했던 장우성 화백의 예술세계를 기리기 위해 그의 호인 월전(月田)을 형상화 한 공간이다. <사진·월전미술관 제공>
지난 2005년 국내 5개 업체가 참여한 공모에서 (주)삼우동인 건축사무소의 설계안이 최종 선정돼 이듬해 착공을 거쳐 마침내 2007년 8월 설봉공원에 개관했다. 대지 9505㎡(2875평), 건축면적 1160(351평), 연면적 1981(599평) 규모로 설계된 미술관의 콘셉트는 ‘음과 양의 공간’, ‘달의 공간’, ‘비상하는 학(鶴)의 공간’이다.

‘음과 양의 공간’은 설봉공원의 자연적 입지를 고려해 양의 건물과 음의 외부 자연공간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콘셉트이고, ‘달의 공간’(일명 월전광장)은 월전의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공간 답게 원형의 광장을 통해 수면에 비친 달의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장 화백은 자신의 호를 월전으로 지을 만큼 평소 달을 좋아했다고 한다.

‘비상하는 학의 공간’은 설봉공원에서 미술관 본관으로 들어가는 이미지를 학의 비상하는 날개짓으로 표현한 것으로 한국화의 새로운 형식과 방향을 모색한 그의 기품이 느껴지는 곳이다. 특히 미술관으로 이어지는 진입로는 일명 ‘물의 다리’로 불리는 데 마치 학의 다리를 떠올리게 한다. 데크 재질의 길다란 다리를 걷다 보면 속세에서 선계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월전미술관의 매력은 온고지신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순백의 외관과 유리로 마감된 모던한 분위기는 현대미술관을 연상케 하지만 내부는 한국화와 고미술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콘셉트는 월전이 지향했던 한국화의 새로운 형식과 계승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2층 규모의 미술관은 총 5개의 전시실로 구성돼 있으며 1층에 자리한 카페테리아, 아트숍은 시민들의 문화쉼터로 인기가 많다. 자연풍광이 아름다운 공원에 위치해 있는 카페테리아는 미술관 방문객 뿐만 아니라 일상의 피로에 지친 이들 사이에 힐링 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뭐니뭐니해도 월전미술관의 색깔은 컬렉션에서 돋보인다. 장 화백이 기증한 117점의 작품은 과거 지식인의 그림으로 여겼던 문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들로 문학, 글씨, 그림이라는 세가지 장르를 하나의 화폭에 담아낸 독창성은 그의 남다른 예술세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대표작으로는‘한국의 성모자상’(1949년 작, 130x88cm, 종이에 채색), ‘귀관’(1987년 작, 90x91cm), ‘심청’(1985년 작, 150x90cm, 종이에 채색), ‘나모도 아닌 것이’(1999년 작, 19x118cm, 종이에 수묵), ‘노묘’(1968년 작, 65x85cm, 종이에 수묵) 등이 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영정’(현충사 소장), ‘백두산

설봉호수에 설치된 도자기 조형물


천지도’(국회의사당), ‘한국의 성모와 순교복자’성화 3부작(바티칸 미술관), ‘절규’(국립현대미술관), ‘화실’(삼성미술관 리움), ‘회고’(퀼른시립동아시아박물관) 등 다수의 작품이 국내외 주요기관에 소장돼 있다.

특히 그가 평생 수집한 1532점의 고미술품과 유물은 월전미술관의 독보적인 콘텐츠이다. 고미술의 매력에 심취한 그는 한국 전통미술연구와 문화재 보호를 목적으로 회화, 서예, 도자, 금속공예, 불교미술품 등 다양한 분야의 유물을 수집했다.

무엇보다 월전 미술관은 한국화의 계승을 지향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국내 미술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크다. 광주 운암동에 들어서 있는 의재 허백련(1891~1975)화백을 기념하는 의재미술관과 함께 문인화의 정신과 수묵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가을기획전으로 개최한 ‘쌍벽(雙璧):남농과 월전의 세계’는 월전 장우성과 남농 허건(1907 ~1987)의 작품세계를 비교한 자리로, 미술계의 화제를 모았다.

장준구 월전미술관 학예실장은 “20세기 후반 문인화의 상징적 존재였던 두 대가는 전통의 가치를 되살리고, 현대 한국화의 길을 제시하고자 했던 숭고한 예술혼을 지녔다”면서 “약 두달간 개최된 이 전시회에는 이천 시민은 물론 서울과 수도권에서 약 2만 5000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가는 등 큰 호응을 얻었다”고 말했다.

미술관에서 나오면 또 다른 특별한 공간이 방문객을 기다린다. 미술관 위쪽에 자리한 월전 기념관으로 장 화백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작업했던 작업실을 원형 가깝게 재현해 놓은 곳이다. 기념관 앞뜰에는 그의 예술정신을 상징하는 조각공원이 조성돼 있으며 오랫동안 월전예술의 숨결을 이어가는 본류로 삼기 위해 제작한 ‘월전화사 칠팔세상(月田畵師七十八歲像)’이 놓여 있다.

/이천=박진현 문화선임 기자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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