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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삶, 아름다운 이웃
2020년 09월 01일(화) 00:00
곽진 상지대학교 명예교수
나이 들어 지난 추억과 욕망을 덜어내려는 건 그 빈자리의 주인을 새로운 나로 삼겠다는 희망 때문이다. 손때 묻은 물건 하나하나에 늘 삶의 추억이라는 DNA를 입혀 온 우리들은 비우고 버린다는 행위가 연인과 정을 떼는 일처럼 그리 손쉽지 않은 일임을 너무도 잘 안다.

특히 책을 보는 사람의 연구 공간은 바로 그 사람의 정신세계라 더욱 그렇다. 새로운 나란 다른 배움의 길로 들어서는 걸 말한다. 고인들은 ‘참 나’의 세계를 개척하려면 비움과 겸손을 앞세우라고 권한다.(肆古爲學, 虛心遜志) 덜어내고 비운다는 것은 자기 발견을 위한 준비라, 지난 추억들로 넘치는 공간은 새 삶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는 암시가 아닐까.

그렇다고 과거가 온통 쓸모없다는 게 아니다. 다만 철 지난 생각과 물건들을 다이어트해 새 공간을 만들자는 거다. 과거라는 담을 쳐 놓고 그 속에서 사는 한 새로운 삶은 그 추억의 담을 넘어서기 어렵다. 남은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려면 과거라는 그 두꺼운 벽을 허물어야 한다. 버리고 비운다는 ‘속 나’는 쉽게 버리는 일회용 물품을 말하는 게 아니다.

쉽게 사고 쉽게 버리다 보면, 우리의 삶의 깊이는 그만큼 얄팍해지기 마련이다. 지난 추억과 물건에도 정이 붙는다. 이처럼 오래 묵은 친구처럼, 정든 여인처럼, 추억이 깃든 물건들도 다른 삶을 위해서라면 새 인연을 찾아 주라는 것이다. 인연이 다한 물건들을 ‘아직’이라는 이유로 붙잡아 둔다면 새로운 내가 들어설 공간은 좁아진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있다. 가장 아름다운 삶은 물처럼 사는 것이라는 뜻이다. 지난 세월의 집착을 지워 낸 자리에 새로운 나를 넣어 물처럼 유장하게 사는 인생이다. 남들과 겨루거나 다투지 않는 삶, 생명을 기르고 정성을 쏟지만, 그 공을 드러내지 않는 모습, 그것이 상선약수의 삶이다. 즉 물 위의 빈 배(虛舟)처럼 물결치는 대로 움직이며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我心則虛舟之不繫也, 惟水之順而已) 참 자유이다.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러운 물도 그 흐름을 거역할 때는 격노한다. ‘주역’에서는 이러한 양면의 기질에 대해 ‘겉은 부드럽지만 속은 굳세다’는 감괘로 정의했다. 이런 이유로 흔히 물의 분노를 돌아선 백성의 마음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부드러움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물의 속성을 배우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는 누구와도 소통할 나를 꿈꾸기에 그렇다. 부족한 곳은 메워 주고, 만나는 모든 것들을 어루만지며, 수만 년을 그렇게 흘러가는 그 끝없는 사랑을 배우려는 것이다. 품어 주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침묵의 몸짓으로 깨우쳐 주는 물의 삶이 부럽다.

중국 남북조시대의 역사서인 ‘남사’(南史)를 보면 송계아(宋季雅)라는 분이 퇴직 후 살 집을 구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당대 최고의 명사였던 여승진(呂僧珍)과 이웃하려고 시세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일천백만 금)을 주고 집을 장만했다. 소문을 들은 여승진이 놀라 그 까닭을 묻자, 그는 ‘백만매택, 천만매린’(百萬買宅, 千萬買隣)이라고 답했다. 즉, “백만금은 집값이고 천만금은 당신의 이웃 값으로 낸 비용입니다.” 여승진의 반응이 궁금해진다. 자신을 인정해 주는 사람이 거금을 들여 이웃하자고 찾아왔으니, 반듯하게 살아온 지난 세월이 입증된 셈 아닌가. 물론 그 후 이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 좋은 이웃으로 지내며 여생을 마쳤다 한다.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주는 이와 어울려 사는 환경을 가장 큰 복이라고 여겼다. 이 두 사람의 만남을 두고 세상 사람들은 ‘꽃의 향은 백 리요, 술의 향은 천 리지만, 사람의 향은 만 리’(花香百里, 酒香千里, 人香萬里)라고 하여 세상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만남이라고 칭송하였다. ‘덕을 부지런히 닦아 간다면 반드시 알아주는 이웃이 생긴다’(德不孤必有隣)고 했던 공자의 말씀이 떠오르는 일화이다.

새로운 나를 찾아내 물처럼 소통하는 삶을 산다면 다른 사람들의 좋은 이웃이 될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스스로가 좋은 이웃이 되는 길을 찾아보자. ‘좋은 사람이 되어야 좋은 사람이 보인다’는 옛 말씀이 새삼스러운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