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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에서 시작된 밀랍이 다시 꽃으로…아름답다 ‘윤회매’
밀랍으로 만든 매화 ‘윤회매’
조선시대 이덕무 선생 창제
김창덕 작가 혼신 다해 재현
양림동에 문화관 열고 대중과 소통
14일부터 은암미술관서 전시
2020년 02월 11일(화) 00:00
항아리에 꽂은 윤회매 작품들. 밀랍과 노루털, 홍매화 분말 등 천연재료들만 사용한다.
봄에 피어야 할 매화가 겨울의 한복판이던 1월에 피어있다면 가짜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다시 꽃을 피웠으니 진짜 매화나 매한가지다.

“‘윤회매(輪廻梅)’는 밀랍으로 만든 매화입니다. 벌집을 한자로 밀랍(蜜蠟)이라고 해요. 꿀벌들이 꿀을 채우려면 벌집이 필요하잖아요. 꽃에서 성분을 추출해서 침을 섞어 입으로 벌집을 만드는 거죠. 꿀이 채워지고 나면 사람들이 벌집만 남기고 꿀을 사용해요. 남은 벌집으로 꽃을 만들었으니, 꽃에서 시작한 밀랍이 다시 꽃으로 가는 이치가 ‘돌고 도는 윤회’와 같다고 해서 ‘윤회매’가 된 것입니다.”

눈 앞에 피어있는 매화는 다음 김창덕 작가가 손으로 피워낸 ‘윤회매’다. 윤회매는 조선 정조때 실학자였던 청장관 이덕무(1741~1793) 선생이 창제한 것으로, ‘윤회매’라는 단어도, 밀랍으로 매화를 표현한 것도 이덕무 선생이다.

“겨울을 난 다음 봄의 전령사로 처음 꽃을 피우는 게 매화에요. 실제 매화가 피어서 지는 게 한 달을 못가거든요. 피고 지는 그 아쉬움 때문에 두고두고 찻 자리에서 볼 수 있도록 만드신 거죠. 선생은 실제로 차인(茶人)이기도 하셨습니다. 차를 즐겨하시는 분들은 찻잔에 띄운 매화꽃을 보며 향도 맡고 마시기도 해서 좋아했다고 해요.”

가난한 선비였던 이덕무 선생은 책 외에는 친구가 없을 정도로 책을 좋아했다. 정조대왕이 왕실 도서관이자 학문기관인 규장각을 창설하면서 능력있는 서자(庶子)들을 대거 등용했는데 이덕무 선생도 서른아홉의 나이에 늦게 벼슬에 오를 수 있었다.

“이덕무 선생이 세상을 뜨고 3년 후 정조대왕이 ‘청장관 전서’를 내게 합니다. 청장관 전서는 이덕무가 생전에 쓴 글을 정조의 명을 받고 이덕무의 아들이 모은 문집입니다. 임금이 신하 책을 문집으로 내게 한 건 드문 일이었는데, 그만큼 아꼈다는 거지요.”

평면화 작업으로 완성된 ‘윤회도자화’. 도자기는 돌가루를 여러 차례 덧대어 입체감을 표현했다.
◇‘청장관 전서’ 읽으며 윤회매 재현= 다음 작가는 차(茶) 문헌을 보다가 윤회매를 알게 됐다. 궁중채화장 황수로가 쓴 ‘윤회매 십전’을 읽으면서 1998년 처음으로 윤회매를 제작했다. 윤회매 십전은 ‘청장관 전서’ 10번째 책에 나온 것으로, 이덕무가 직접 그림으로 그리고 글로 적으며 윤회매를 만드는 10가지 과정을 상세히 남겼다.

책을 보고 재현한 윤회매는 매화 그 자체다. 밀랍과 노루털, 나뭇가지, 색소 등 천연재료들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굳어있는 밀랍은 75℃의 열을 가해 녹인 다음 ‘매화골’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잎을 만든다. 꽃술은 노루털을 사용하고 옻칠을 해서 황을 묻힌다. 매화잎과 꽃술, 꽃받침 등은 밀랍땜질로 나뭇가지에 붙이면 완성된다.

홍매화는 분말로 된 붉은매화로, 푸른빛의 매화는 분말로 된 쪽빛을 구해와 색을 표현했다. 나뭇가지 역시 본래의 매화가지를 이용한다. 작가가 직접 나뭇가지를 구하러 다니는데 ‘매화님에게 빌리러 가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옛 분들은 매화를 전지하지 않으면 어리석다고 했고, 벚꽃은 전지를 해주면 어리석다고 했어요. 벚꽃은 나무 수형 구조가 타고나므로 전지해주면 거기서부터 썩어들어가는 거죠. 매화가지는 수형을 해주지 않으면 멋이 없어요. 매화나무가 휘어서 멋있게 보이는 건 부러졌거나 전지를 해주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거에요.”

매화가지는 가을에 전지해야 단단하다. 겨울에 얼어죽지 않으려고 안에서 수맥을 차단하는데 이때 전지하는게 좋다. 채취해 온 나뭇가지는 한달 정도 건조를 시킨 다음 100℃로 끓인 밀랍에 담근다. 나뭇가지 안에 밀랍이 스며들어야 좀이 생기지 않는단다. 가지 작업을 제외하고라도 꽃잎을 만드는 데만 사흘이 꼬박 걸린다.

다음 작가는 매화 필 무렵이면 ‘도망’을 잘 다닌다. 매화를 보러 떠나는 거다. 그의 주머니에는 항상 ‘루뻬’(확대경)가 들어있다. 매화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서다. 꽃술도 자세히 보는데 45~47개까지 세어본 적이 있다.

그동안 항아리에 꽂은 윤회매를 표현해 오던 작가는 최근 평면화 시켰다. 일명 ‘윤회도자화’다. 항아리에 꽂아두면 오픈돼 있어서 먼지가 앉기도 하고 망가질 우려가 높다. 여름철에는 그나마 괜찮지만 날씨가 추워지면 유리처럼 바스라지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꽃이 상하지 않고 보호될까 고민하다가 평면으로 옮긴 거에요. 여기에 우리 도자기를 접목한 거죠. 말차 마시는 다완, 꽃 꽂는 화병 등 차와 어울리는 우리 도자기와 접목을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도자기 작업은 꽃 만들 때 보다 시간이 더 소요된다. 돌가루를 이용하는데, 말리는 과정만 15일이 걸린다. 여러번 덧대서 다시 바르고 난 후 사포질 하고, 그림 그리고, 옻칠(아홉 번)을 하거나 보이차를 진하게 우려서 색을 표현하기도 한다. 윤회매를 재현하는 일도 만만치 않지만 창작자 입장에서 새로운 걸 시도하는 작업도 설렘으로 다가온다.

‘윤회매 작가’ 김창덕이 양림동 ‘윤회매 문화관’에서 이덕무 선생의 삶을 설명하고 있다.
◇윤회매 문화관 열고 대중 곁으로= 많은 이들에게 청장관 이덕무 선생의 사상과 성품, 삶을 알리고, 더불어 윤회매를 알리고 싶었던 다음 작가는 광주시 남구 양림동에 윤회매 문화관을 열었다. ‘찻집’이라는 문패도 함께 달았다.

“이곳에 오시면 차(茶)와 음악이 있습니다. 거기에 또 윤회매가 놓여있는 거죠. 저는 윤회매를 통해 이덕무 선생의 삶을 알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차도 하나의 물에서 나온 같은 맛이잖아요. 하지만 이걸 판단하는 건 각자에게 맡기는 거에요. 향이 어떻고 맛이 어떻고 느끼는 건 다 다를 수 있어요. 하지만 근본은 하나인 거에요. 전체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전체인 것. 이덕무 선생은 그걸 윤회매를 통해 인문학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는 14일부터 3월 17일까지 광주 은암미술관에서는 다음 작가의 ‘윤회도자화, 찻잔에 잠기다’ 전이 열린다. 윤회매 작품 30여 점이 관람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전시 기간동안 매주 토요일 오후 2~3시 차와 함께하는 ‘작가와의 대화’ 시간이 마련되며 2월 29일에는 관람객들 앞에서 윤회매 꽃피우는 모습을 보여줄 계획도 갖고 있다.

지난해 완성한 청장관 전서 필사본도 전시회를 통해 처음 공개한다. 6개월에 걸쳐 한글과 한자본으로 각각 필사하고 절첩식으로 이어붙였다. 펼치면 한자본은 10m30㎝, 한글본은 22m76㎝나 된다.

/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

/사진=나명주 기자 mjna@·김창덕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