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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100년 <19> 코리안 뉴웨이브(Korean New Wave)
사회비판 메시지 담은 뉴웨이브 감독들 한국 영화에 경종을 울리다
6월 민주항쟁, 군사독재정권 종식
사전겸열제도 폐지 영화제작 자율화
내용·형식 혁신 ‘코리안 뉴웨이브’ 등장
한국영화 기폭제 역할 세대교체 이뤄
박광수, ‘칠수와 만수’로 분단문제 언급
장선우, 소비자본주의 성공신화 비판
2019년 10월 09일(수) 04:50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진 군사독재정권을 종식시켰다. 그리고 이때의 승리는 국민들이 직접 대통령을 뽑을 수 있도록 했고, 사회 전반에 걸쳐 민주화를 앞당겼다. 한국영화 역시 이러한 사회변혁의 기운을 타고 변화의 조짐을 보였다. 영화 사전 검열제도가 폐지되었고, 영화제작도 자율화되었다. 이는 새로운 한국영화가 태동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군부정권의 강압적인 통치 아래서 한국영화는 80년대 내내 핑크빛으로 스크린을 물들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6월 민주항쟁은 한국영화의 기폭제 역할을 하며, 기존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영화를 탄생시키게 된다. 박광수의 ‘칠수와 만수’, 장선우의 ‘성공시대’, 이명세의 ‘개그맨’이 바로 그 영화들이다. 이들 영화들은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담는데 적극적이었으며, 기존의 관습을 전복한 새로운 미학으로 주목받았다. 그리고 이들 영화들은 후에 ‘코리안 뉴웨이브(Korean New Wave)’라는 명칭을 부여받았다.

한국영화의 새로운 물결이라는 의미의 ‘코리안 뉴웨이브’는 프랑스의 ‘누벨바그’나 미국의 ‘뉴아메리칸 시네마’처럼 이전 영화세대와는 다른 영화를 지향했고,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도 새로운 혁신을 보여주었다. 그러니까 ‘코리안 뉴웨이브’ 감독의 영화들은 구태의연한 한국영화에 경종을 울리며 등장했던 것이다.

뉴웨이브의 선두주자는 박광수였다. 그는 데뷔작 ‘칠수와 만수’(1988)에서 ‘분단문제’를 언급했다. 이는 이전의 한국영화가 엄두도 내지 못했던 소재였다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이었다. 영화는 도입부부터 대한민국이 분단국가임을 드러낸다. 버스 안에서 졸고 있던 칠수(박중훈)가 민방위훈련 때문에 버스에서 내리는 장면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주인공들 역시 분단과 무관하지 않다. 칠수(박중훈)는 동두천에서 미군을 상대로 포주생활을 했던 집안의 아들이고, 만수는 비전향 장기수를 아버지로 두었다. 칠수는 미군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누나의 초청을 꿈꾸고 있고, 만수(안성기)는 남들처럼 해외에 나가 돈을 벌고 싶지만 연좌제가 그의 발목을 잡는다. 고층 건물에 광고 그림을 그리는 칠수와 만수는 영화의 끝 대목에서 서양여인의 젖가슴이 도드라지도록 그린 빌딩 옥상의 광고탑에 올라 세상에 대고 울분을 토하게 된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첨병’ 위에서 자신들이 토해낸 절규는, 세상 사람들에게 시위로 받아들여지며 이들은 궁지로 몰리게 된다.

박광수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인 ‘그들도 우리처럼’(1990)은 탄광촌으로 피신한 운동권 출신 청년의 이야기였고, ‘베를린 리포트’(1991)와 ‘그 섬에 가고 싶다’(1993)역시 분단의 상처를 다루고 있다. 이어서 내놓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은 국민주 모금 방식을 통해 완성된 작품으로 전태일의 삶을 한 지식인의 회상을 통해 보여준다. 데뷔작부터 견지된 박광수 감독의 영화는 주제의식과 영화미학에서 한국영화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박광수는 ‘이재수의 난’(1999) 이후 이렇다 할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장선우는 선우완과 공동 연출한 ‘서울황제’(원제 서울예수·1986)로 검열의 수난을 겪은 후, 실질적인 데뷔작 ‘성공시대’(1988)를 내놓게 된다. 김판촉(안성기)은 오직 출세를 위해 자신의 영혼까지 팔아넘기는 인물이다. 그는 ‘모든 것은 팔 수 있을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을 사랑하는 여인 성소비(이혜영)까지 회사의 이익을 위해 이용한다. 장선우 감독은 경제활동의 객체로 전락한 인간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물질적 가치가 우선하는 소비자본주의 사회의 성공신화를 냉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서울 변두리 우묵배미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우묵배미의 사랑’(1990)은, 서민들의 삶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가 미덕인 영화다. 실제 삶에서 길어 올린 생생한 대사와 생기 넘치는 표현과 캐릭터들은 이 영화가 한국리얼리즘영화의 백미라는 찬사를 받도록 했다. 이후 장선우 감독은 ‘경마장 가는 길’(1991)에서 지식인들의 허세를 담아냈고, 불교의 화엄사상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화엄경’(1993)을 내놓은 이후,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4), ‘꽃잎’(1996), ‘나쁜 영화’(1997), ‘거짓말’(2000),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에 이르기 까지 만드는 영화들마다 수많은 이슈를 만들어낸 주인공이었다.

이명세 감독은 기존의 한국영화가 가지고 있는 통념을 거부하는 신선한 어법으로 한국영화에 식상한 관객들을 흔들어 깨웠다. 데뷔작인 ‘개그맨’(1988)은 이전의 한국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전복의 상상력을 펼쳐 보이며 한국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배우 지망생인 이발사 문도석(배창호)과 감독이 꿈인 개그맨 이종세(안성기)가 우연히 손에 넣은 총 한 자루를 가지고 무장 강도에 나서는 예측불허의 여정을 따라가는 영화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는 내러티브의 연속성을 파괴하고, 각각의 분절된 이야기들이 모여 하나의 큰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독특한 구조의 영화였다. 그러나 정감 넘치는 영화적 표현과 신혼부부로 나온 박중훈, 최진실의 매력은 이 영화가 많은 관객들에게 사랑받도록 했다. 이후 이명세 감독은 내놓는 영화들마다 영화형식을 실험했고, 미장센(화면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을 선보이며 한국영화의 지평을 넓혔다.

이렇듯 박광수, 장선우, 이명세로 대표되는 코리안 뉴웨이브 감독들은 단일한 범주로 묶기 힘든 다양한 스타일과 주제의식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이들을 한데 묶어주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촬영감독이 유영길이었다는 점이다. 유영길(1935~1998)은 한국영화사에서 80년대 ‘코리안 뉴웨이브’를 뒷받침한 영상마술사로 통한다. 유현목 감독의 ‘나도 인간이 되련다’(1968)로 촬영기사의 길에 들어선 유영길은, 70년대 초 하길종 감독 등과 작업하면서 영화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했고, 이후 배창호, 장선우, 박광수, 정지영, 이명세 등 80년대 후반과 90년대를 주도한 감독들의 작품 상당수를 카메라에 담았다. 그는 일관된 미학을 고집하기 보다는 함께 작업한 감독들의 개성과 작품주제에 따라 다양한 영상의 질감과 분위기를 표현해냈다. 유영길은 이창동의 ‘초록물고기’(1997)를 거쳐 허진호의 ‘8월의 크리스마스’(1998)를 유작으로 남기고 영면했다.

/조 대 영 광주독립영화관 프로그래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