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스포츠 유산’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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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스포츠 유산’ 어떻게 할 것인가
2019년 08월 28일(수) 04:50
새터민이자 국가대표 리듬체조 상비군 감독, 체육계 최초로 ‘미투’(Me too)를 감행한 용기 있는 사람. 이경희 감독이 광주에 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문득 궁금해진 게 있었다. ‘왜 광주를 택했을까?’ 그를 만났을 때 의문은 바로 해소됐다. “광주에는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치른 국제적인 인프라가 있어요. 선수가 좋은 환경을 경험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국가대표 리듬체조 선수단의 광주 방문은 지난 2015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U대회)를 비롯해 올해까지 네 해째 계속되고 있다. 이번에는 국가대표 후보 선수 12명이 이 감독과 함께 와서 지난 7월말까지 20일 동안 광주에서 태극마크의 꿈을 키웠다. 이들이 머문 광주여대 시립유니버시아드체육관은 지난 2015년 U대회 때 지어졌다. 리듬체조 선수가 볼과 리본을 마음껏 던질 수 있는 12m 높이 경기장에다 구름성 좋고 피봇(pivot·회전동작)이 잘 먹는다고 알려진 독일제 스피치(spich) 매트가 있다. 시가 4000만 원대인 이 제품은 FIG(국제체조연맹)가 공인한 매트다. 올림픽, 아시아대회, 세계 체조선수권대회 등에서 두루 쓴다. 선수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국제공인 연습장은 없는 셈이다. 국가대표 상비군이 체육관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강원도 양구를 마다하고 광주를 찾은 이유다.



수영대회 레거시 좋지만



광주여대 시설관리팀 최기영 팀장은 체조 전용 매트 관리의 달인이다. 최적 상태로 보관하기 위해 4년째 공을 들이고 있다. 매트 밑에 까는 합판의 탄성을 유지하기 위해 합판과 합판 사이에 받침목을 넣어 쌓아 두었다가 다시 꺼내 건조하는 번거로운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다. 리듬체조 선수단이 머물 때면 가로·세로 1.2m짜리 합판을 두 개 층으로 포개 도합 242장을 깔고 그 위에 매트를 감쪽같이 까는 일도 그의 몫이다. 눈썰미 있는 그는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 덕분에 전문 스포츠사에 맡기지 않고도 능히 해낼 수 있다. 그의 손길이 없었다면 최상급 매트는 평범한 카펫이 됐을 것이다. U대회 자산은 이렇게 살뜰하게 관리되고 ‘광주를 마케팅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U대회 때 지어진 광주국제양궁장은 국내보다 외국 선수에게 더 인기 있는 공간이다. 국제경기장 최소 공인 규격은 72명이 일제히 서서 쏠수 있는 72개 사대(射臺)지만, 광주에서는 144명까지 사대에 설수 있다. 창문을 열고 활을 쏠 수 있는 실내 사대까지 갖추고 있어 전천후 경기와 훈련이 가능하다. 예천 진호양궁장, 청주 김수녕양궁장, 전북 오수양궁장 등이 국제양궁장이지만 광주는 차별화한 강점이 있어 국내외 선수 가리지 않고 선호한다. 도심에 경기장이 있어 숙식을 어렵지 않게 해결하고 관광·쇼핑에 나설 수 있으며 경기장과 숙소를 오가며 낭비하는 시간도 상대적으로 적다.

김성은 광주양궁협회 전무는 국제양궁계 인맥을 활용해 광주를 팔고 있다. 그는 U대회 개최 이듬해인 2016년 일본·중국·스페인 선수단의 전지훈련을 광주로 유치했다. 일본·중국 선수단은 매년 찾는 단골이 됐다. 중국 선수단은 지난 1월과 6월 두 차례나 광주에서 전지훈련을 했다. 최소 50명에서 150명에 달하는 해외 선수단은 보름 혹은 한 달 가량 광주에서 돈을 쓴다. 김 전무는 친분으로 선수단을 불러들였지만 양궁장 임대 사용료나 숙박비에는 전혀 에누리가 없다. 광주 경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편중과 쏠림은 경계해야



시민들의 관심 밖에 놓여 있었지만 지난 5월 진월 국제테니스장에서는 남자프로테니스(ATP) 광주오픈 챌린저 4회째 대회가 열렸다. 광주시와 광주테니스협회가 유치한 이 대회에는 선수단 400여 명이 참가했다. 역시 U대회를 계기로 건립한 경기장과 이를 활용하려는 이들의 열정과 노력이 있었기에 유치가 가능한 국제대회였다. 챌린저 대회는 조코비치(1위·세르비아)도 무명 시절에 메이저대회 출전 기준이 되는 랭킹 포인트를 쌓기 위해 출전했던 무대로, ATP 홈페이지에서 생중계됨으로서 광주 경기 장면을 전 세계 테니스 팬이 시청할 수 있었다.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가 끝나자 광주시는 국제 규격의 수영장과 훈련 시설을 갖춘 광주수영진흥센터 건립과 함께 전국 규모의 수영선수권대회와 동호인 마스터즈 대회를 창설하겠다고 밝혔다. 수영 대중화를 이끌어 ‘수영 도시 광주’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구상이다. 이른바 국제대회 개최 효과를 지역 발전 동력으로 삼으려는 레거시(Legacy·유산) 사업이다.

하지만 광주시가 추진하겠다는 이러한 레거시 사업을 보면서 한 가지 걸리는 대목이 있다. 수영도시 조성에만 행·재정력을 쏟아붓는 편중과 쏠림이다. 광주여대 시립유니버시아드체육관과 광주국제양궁장 등을 중심으로 싹튼 유·무형의 레거시는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균형 발전이 핵심인 엘리트·생애·학교체육 등 생태계를 조성하는 일은 어찌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 꼬리를 문다.

/penfoot@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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