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시티’와 ‘518-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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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시티’와 ‘518-062’
방탄소년단의 5·18 찬가
20년 전 정립된 민주화운동
2019년 05월 29일(수) 00:00
5월이 간다. 광주는 5월이면 철저히 고립된 채 외롭게 죽어갔던 ‘1980년’ 그날의 악몽과 마주한다. 짐짓 태연한 척, 애써 잊은 척 그렇게 40년을 하루 같이 살아냈다. 아직 1980년 5월은 한줄기 빛조차 들지 않았던 절망의 공간에 멈춰 선 시간이다.

계엄군의 총칼은 수많은 광주 시민을 학살했고, 살아남은 자에겐 끊임없이 침묵을 강요했다. 5·18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탄압의 대상이던 시절이 있었다. 숨지 않고 그날의 진실과 억울함을 말할 수 있기까지 또 한 세월이 흘렀다. 통한의 세월을 보내고 나니 바깥 사람들은 오월을 잊어 가고 있었다. 심지어 역사의 과오를 인정하기 싫은 세력은 5·18을 폭도로 몰았고,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40년 전에도 없었던 종북 몰이에 혈안이 돼 있었다. 5·18을 흠집 내고, 한국의 민주화를 부정하고 싶은 이들의 역사의식은 수십 년이 흘렀지만 한 치도 나아가지 못했다.

광주사태로 왜곡됐던 5·18이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규정된 것은 1988년 신군부 정권인 노태우 정부 시절이었다. 이후 김영삼 정부가 1995년 특별법에 의해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했고, 1997년 국가기념일이 됐다. 그해 대법원이 ‘전두환·노태우 12·12군사반란과 5·18내란 사건’ 관련 전두환 무기징역, 노태우 징역 17년을 확정해 광주 학살의 주범을 단죄했다. 이렇게 5·18은 22년 전에 한국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민주화운동으로 우뚝 섰다.

5·18민주화운동 제39주년 기념행사가 지난 27일 전남도청에서 최후 항전을 벌이다 산화한 희생자 넋을 기리는 부활제를 끝으로 한 달여의 장정을 마쳤다. 매년 찾아오는 오월이지만 부활제가 끝나야 광주는 살아남은 자의 부채 의식을 털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이번 오월은 예년과 달리 여운이 가시지 않는 대목이 있다.

5·18 39주년을 앞둔 상황에서, 한국의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 BTS가 2015년 발표한 노래, 그리고 멤버 중 ‘슈가’가 데뷔 10년 전 내놓은 5·18 노래가 새삼 화제가 된 것이다. 이 두 노래로 인해 5·18에 관심 갖는 국내외 팬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BTS가 2015년 공개한 마 시티(Ma City)는 멤버 3명이 작사한 곡으로 각자 자란 도시를 주제로 삼고 있다. 이 중 특히 광주 출신 ‘제이홉’이 담당한 랩 가사 ‘나 전라남도 광주 baby/ 내 발걸음이 산으로 간대도/ 무등산 정상에 매일매일 … 내 광주 호시기다 전국 팔도는 기어 / 모두 다 눌러라 062-518’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노래를 들은 해외 팬들이 가사에 나온 숫자를 궁금해 했고, 국내 한 팬이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062는 광주 지역번호이고, 518은 5·18민주화운동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마 시티’가 관심을 끌면서 대구 출신인 ‘슈가’가 고2 때 만든 ‘518-062’에도 눈길이 쏠리고 있다. 슈가는 이 노래를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져 가는 5·18민주화운동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자 만든 곡”이라고 설명했다. ‘그들을 움직이는 팔다리가 되어 배어 진 몸에 상처를 태극기로 채워… 탁한 바람 가득한 땅 위에 내린 새싹 5-1-8 어둡던 지난날의 밤이 지나 탄생한 새 역사를 위해서 손을 들어… 포장뿐인 자의 혀는 믿지 마’ 고교생이 5·18의 역사와 현재를 꿰뚫는 가사를 썼다는 사실에 감동마저 전해 온다.

두 노래로 인해 BTS 공식 팬 카페에서 활동하는 팬들은 5·18 관련 영화인 ‘택시운전사’와 ‘화려한 휴가’를 추천하는가 하면 5·18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5·18민주화운동기록관 홈페이지를 연결해 놓기도 했다. 이중 제이비(JayVee)라는 미국 팬은 지난 4월28일 광주에서 열린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콘서트’ 관람 직전 5·18묘지를 참배한 해외 팬을 다룬 광주일보 기사를 ‘성숙한 BTS 뒤에 성숙한 팬’이라는 제목으로 트위터에 소개해 수천 건의 리트윗과 ‘좋아요’를 받았다.

‘마 시티’와 ‘518-062’를 시간 날 때마다 들었다. 아이돌 노래가 생경할 수밖에 없는 50대들도 즐길 수 있는 곡이었다. 특히 슈가의 ‘518-062’의 첫 소절은 80·90년대 학생이라면 누구나 불렀을 민중가요 ‘광주출전가’를 연상시킨다. 웅장한 리듬과 함께 터져 나오는 랩 가사 ‘go go go go go five-one-eight’은 광주출전가의 ‘나가 나가 도청을 향해’라는 가사와 묘하게 오버랩되며 전율을 일으킨다.

아직도 이들 노래를 들어보지 못했다면 이번에 꼭 들어보기를 권한다. 5·18의 바람이 우리들이 바랐던 세상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는 것이라면, 그 답을 20대 청년들로부터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5·18민주화운동이 내년에 40주년을 맞는다. 광주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40주년 행사 기간에 광주에서 BTS의 ‘마 시티’와 ‘518-062’를 들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chae@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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