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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 아래서 쪽잠 자는 사람들
채희종 여론매체부장
2018년 09월 12일(수) 00:00
“정신을 차리자 내가 어머니의 뺨을 때리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전혀 기가 죽지 않았다. ‘엄마를 때리다니, 너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그러고도 네가 아들이야!’ 어머니는 소리를 지르며 두 주먹을 움켜쥐고 덤벼들었다. (중략) 나는 다시 어머니의 뺨을 때렸다. (중략) 어머니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온 뒤에야 정신이 들었다. ‘엄마를 때리다니, 이 미친놈이 엄마를 때리다니…….’ 어머니는 뺨을 누르며 계속 중얼거렸다.”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를 홀로 돌보던 아들이 참다못해 이성을 잃는 대목이다. 일본의 유명한 과학 전문 기자인 마쓰우라 신야(57) 씨가 치매 걸린 어머니와 함께한 1000일간의 실화를 기록한 자전적 소설, ‘엄마, 미안해’의 한 페이지다.

이 소설은 환각 증상과 음식 투정 등 급격히 악화되는 치매 증세와 낙상, 길어진 간병으로 인한 생활고, ‘차라리 돌아가시면 편할 텐데’라는 자포자기의 심정, 어머니에게 손을 댄 패륜 등을 담은 진솔한 얘기로 일본에 엄청난 충격과 고민을 안겨 주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다. 간병 생활이 길어지면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 심신이 피폐해지고, 심지어 이성을 잃어 극단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우리도 고령화사회에 접어들면서 50대 이상 중년의 자식이 부모를 간병하는 모습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치매 노인도 많아지고 그 외 낙상이나 골절 등으로 병원을 찾는 고령자들이 늘고 있다. 노인 외에 교통사고나 암 등 만성질환으로 인해 장기 요양이 필요한 환자도 언제나 넘쳐 난다.

이로 인해 병원에서 쪽잠을 자며 간병하는 이들이 많다. 간병은 체력적으로 젊은이들도 쉽지 않은 일이다. 직장과 간병 생활을 병행하는 보호자라면 더욱 말할 게 없다. 자식들은 제대로 간병하지 못해 미안해 하고, 부모는 고생하는 자식을 보며 마음 아파한다. 간병인을 쓰면 되지만 한 달 치 비용이 한 사람 월급 정도여서 서민들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필자도 최근 아버지가 낙상으로 병원 신세를 지는 통에 간병비가 치료비보다 더 든다는 말을 실감했다. 골절 치료 및 입원으로 8일간의 병원비는 55만 원이었지만 간병비는 이보다 많은 60만 원이 들었다.

건강보험공단 광주지역본부 자료에 따르면 70대 김영순(광주) 씨는 만성질환으로 입원해 4개월 동안 수술비를 포함해 900만 원을 병원비로 썼다. 여기에 움직임이 불편해 간병인을 쓰는 바람에 1000만 원 가량의 간병비가 들었다고 한다. 현재 광주에서 통용되는 간병비는 하루 24시간 기준 9~10만 원선이다. 식사비를 주는 경우도 있고 2주마다 하루의 유급 휴가도 줘야 한다. 한달로 치면 300만 원이 넘게 든다.

암 치료, 노인 임플란트, 스켈링 등 의료보험 혜택이 넓어지고 있지만 실상 서민이나 맞벌이 입장에서 보면 간병비 해결이 훨씬 절실하다. 다행히 국가는 간병비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지난 2015년부터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이하 통합서비스)를 시행, 간병을 건강보험에 포함시켰다. 통합서비스는 간호사와 간호보조사가 팀을 이뤄 간호뿐만 아니라 간병까지 하는 시스템이다. 통합서비스를 이용하면 간병비로 하루 1만~1만 5000원만 내면 된다.

통합서비스는 간호사로부터 질 높은 간병 서비스를, 그것도 저렴한 비용으로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최고의 의료 혜택이자 선진형 복지 정책이라 하겠다. 무엇보다 지난 2015년 메르스 사태가 병원 내 감염으로 확산한 점을 고려하면, 통합서비스는 감염 관리 및 방역의 기본이라는 점에서도 확대 시행해야 한다.

그러나 통합서비스를 시행하는 병원이 적어 제도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광주·전남북 병원 가운데 통합서비스를 시행 중인 병원은 15%로 타 지역 18%에 비해 상당히 뒤진 상태이다. 더욱이 병상 수를 기준으로 하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올 8월 말 기준 광주 권역은 2321병상으로 대구 권역 3993병상, 대전 권역 2807병상 등에 비해 참여율이 턱없이 낮다.

광주는 총 90개 병원 가운데 전남대·빛고을전남대·조선대·KS·광주보훈·서광·동아·하남성심·해피뷰·에스케이제이·광주새우리·시원 병원 등 12개 병원만이 통합서비스에 참여하고 있다. 이 중 광주새우리병원만이 전 병동에 통합서비스를 실시 중이며 나머지 병원들은 일부 병상 만을 적용하고 있어 광주에서 총 644병상, 즉 644명만이 간병비 혜택을 보고 있는 셈이다.

이렇듯 통합서비스 참여율이 낮은 이유는 간호사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막대한 시설 투자비를 들여 통합서비스를 확대했다가 실패할 우려 때문이라는 게 병원 관계자들의 얘기다.

고령화 속도와 늘어나는 중증·만성 질환자 등 장기 간병 수요를 감안하면 통합서비스에 대한 요구는 더욱 커질 것이다. 간호사 자격증 소지자의 3분의1 정도는 다른 직업을 갖고 있을 정도로 간호사는 힘든 직업이다. 간호사의 근무 환경 및 처우 개선 없이는 인력난을 해결할 수 없다. 여기에 통합서비스를 도입하는 병원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책도 검토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