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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봉근 광주지법 목포지원 판사] 약속, 계약, 법률
2017년 03월 27일(월) 00:00
며칠 전 아들이 고열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아들을 밤에 겨우 재우고, 아내와 나는 번갈아 밤을 새우며 아들의 체온을 확인하며 물수건으로 아들의 몸을 닦아 열을 내리도록 하자고 약속했다. 아내는 약속을 잘 지켰고 교대할 시간이 되어 나를 깨웠는데, 나는 잠에서 깨지 못한 채 계속 잠을 잤다. 결국, 아내가 밤을 새워 내가 할 몫까지 다 하고 말았다. 아침이 되어서야 잠에서 깬 나는, 잠을 자지 못해 지친 아내의 모습을 보고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무척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모두가 알다시피,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 도덕을 어기게 되면 윤리적 비난을 받게 되지만, 법을 어기게 되면 일정한 불이익을 받게 된다. 국가의 기본법인 헌법에 바탕을 두어, 개인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최소한의 약속을 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개인의 법률행위를 해석하는 법률 영역이 민사법이다. 또한, 특정한 금지행위를 정해 두고 이를 어기는 경우 형벌을 부과하는 법률 영역이 형사법이고, 그 외에도 국가의 행정행위 등을 규율하는 행정법 등 여러 가지 법률들이 있다. 이처럼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법률들은 우리가 선거를 통해 선출한 대표인 국회의원들이 모인 국회에서 제정되고, 제정·공포된 이후 좁게는 개인의 권리와 의무 관계를 규율하고 넓게는 국가공동체를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우리나라의 정치·사회 상황은 혼돈의 연속이다. 급기야는 헌정 사상 최초로 국민의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서 파면되고, 그 직후 검찰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를 받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전 대통령의 파면 결정과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정치적 해석이 있을 수 있고 그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이같이 혼란 상황을 초래한 원인 중 하나로 ‘법률을 잘 준수하지 아니한 것’을 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법을 지키는 것은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법을 지키는 것은 일견 개인의 행동에 제한을 가져오게 되므로 다소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법을 지키지 아니한 채 자기가 하고 싶은 행동만을 하게 되면, 모든 것이 무한하지 않은 사회에서 개개인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게 되고 사회의 혼란만을 가져오게 된다. 결국, 법으로 개개인의 행동을 일정 부분 제한하는 것이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되는 것이다.

약속과 계약도 마찬가지로 그것을 정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사람들은 모두 어떠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자의적으로 다른 사람과 약속을 하고 계약을 체결하며, 약속과 계약이 제대로 이행될 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비록 사용자와 근로자의 관계 등 현실적으로 계약을 체결하는 당사자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모두 같을 수는 없어 이와 같은 점들이 계약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 반영이 되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한번 체결된 계약의 효력을 부정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약속과 계약이 지켜지지 아니하면 그것을 체결한 당사자들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게 될 것이고, 이는 범위만 다를 뿐 법률이 지켜지지 아니한 경우 발생되는 상황과 같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하고 간단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풀어쓴 기분이 든다. 그러나 언론을 통해 보이는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사회적 혼란 상황과 그 원인을 살펴보았을 때, 과연 혼란 상황과 관련된 당사자들이 ‘법을 조금만 더 잘 지켰더라면’ 이같은 혼란 상황이 발생하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법조인이기 이전에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필자부터 간단한 약속, 계약과 법률을 잘 지켜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나부터 ’약·계약·법률’을 잘 지켜야, 판사로서 주어진 사건의 결론을 도출하는 데 좀 더 떳떳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