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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한 마리 키우는 데도…
2017년 02월 08일(수) 00:00
채 희 종 사회2부장
#. 네가 양계(養鷄)를 한다고 들었다. 닭을 치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하지만 닭을 기르는 데도 우아한 것과 속된 것, 맑은 것과 탁한 것의 차이가 있다. 진실로 농서를 숙독해서, 좋은 방법을 골라 시험해 보렴. 빛깔에 따라 구분해 보기도 하고, 횃대를 달리 해 보기도 하거라. 닭을 살지고 번드르르하게 길러 다른 집보다 번식도 낫게 해야지. 간혹 닭을 관찰해 시(詩)를 짓도록 해라. 이것이 글 읽는 사람의 양계니라. 만약 이익만 따지고 의리는 거들떠보지 않는다거나 기를 줄만 알고 운치는 모른다면…(중략) 못난 사내의 양계인 것이다. 너는 어떤 식으로 하려는지 모르겠구나. 이왕 닭을 기르려면 옛 책에서 닭에 관한 기록을 베껴 모아 목차로 정리하면 좋겠구나.

강진에 유배된 정약용은 1805년 자신을 찾아온 맏아들로부터 작은아들이 양계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맏아들 편에 작은아들에게 보낸 편지 내용의 일부다. 그는 닭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는 사전에 많은 공부를 해야 하며, 자신만의 양계 노트를 만들라고 가르치고 있다. 특히 닭에 대해 열정을 갖고, 시 짓기를 하라고 훈계하고 있다.

정약용은 ‘양계 편지’를 통해 지식인이 갖춰야 할 두 가지 덕목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것은 리더십이나 위기관리 또는 상황 판단력 등과 같이 지도자들이 갖춰야 할 특별한 능력과는 거리가 있다. 국가 경영이나 학문 같이 거창한 목표가 아닌, 양계처럼 소소한(?) 일일지라도 ‘기본 소양’과 ‘열정’을 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지만 이번 최순실 국정 농단이 밝혀지자 국민들은 또다시 충격과 자괴감에 빠졌다. 대통령과 정부의 무능 여부를 떠나, 무엇보다 대한민국이 국가로서의 기본 틀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에 큰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수사하는 특검에 수준 이하의 자세로 대처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뻔뻔함에 국민들은 이제 할 말마저 잃었다. 더 나아가 애초 깜냥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대권 후보로 내세웠던 여권 정치인들을 같은 부류의 공모자로 싸잡아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대통령을 뽑은 것은 국민이다. 한때 여론조사에서 국정 운영 지지율이 역대 최고일 정도로 지지해 준 이도 국민이었다. 기본이 안 된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선택해 놓고도,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한다.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의 수준이 곧 우리의 수준 아닌가.

질의응답조차 없는 일방적인 기자회견과 제대로 된 토론회 한 번 갖지 않은 불통 대통령을 경제대통령이 될 것이라며 지지했고, 지역감정에 휩싸여 맹목적인 몰표를 던졌고, 품성이나 능력 검증 없이 보수 세력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무조건 찍은 결과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와 최순실 국정 농단을 계기로 더 이상 정치를 정치인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정치는 우리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돼 있고, 정신적 물질적 삶의 질마저 좌우한다.

정약용은 닭 한 마리 기르는 데도 기초 공부를 해야 하고, 양계에 성공하려면 열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국민이라면 이제 대통령을 뽑든 국회의원을 뽑든 공부를 해야 한다. 만들어진 홍보물과 공약에 의지할 것이 아니라 직접 후보의 발언을 곱씹어 보며 당사자의 품성과 사회성, 지도자로서의 인식 등을 검증해야 한다. 평소 인터뷰나 저서 등도 뒤적여 봐야 한다.

요즘에는 인터넷만 잘 활용해도 후보들이 각종 행사나 매체에서 했던 말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조그만 정성을 기울이면 거짓말을 잘하는지, 약속을 잘 어기는지, 말을 자주 바꾸는지, 실속은 없으면서 겉만 번지르르한지, 반대 세력이 있음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는지 등을 구별할 수 있다.

때마침 광주·전남기자협회가 9일 오후 5시 광주YMCA 무진관에서 좋은 대통령을 뽑을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토론회를 갖는다고 한다. 이제 국민이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선택하는 국가의 주인이자 ‘왕’임을 깨닫게 해야 한다.

/chae@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