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님의 선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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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님의 선물방
김 미 은
문화1부장
2016년 12월 28일(수) 00:00
꼭 한 번은 가 보고 싶었던 ‘그곳’을 드디어 찾았다. 환한 미소의 그녀는 보자마자 선물 보따리부터 안겼다. 인상적인 건 선물로 준 책과 함께 놓인 붉은 산다화 한 송이였다. ‘아!’ 짧은 감탄사와 함께 ‘걸어다니는 선물 가게’답다 싶었다.

2003년 첫 인터뷰 후 꼭 13년 만의 방문이었다. 당시 그녀의 작은 천가방에선 책이며 양초·엽서·조개껍질 등이 끝도 없이 나왔다. 인터뷰 중 “작은 가방이 무슨 보물상자 같다” 했더니 그녀는 “선물은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행복하게 해주는 거”라고 했다. ‘민들레 영토’의 시인 이해인 수녀 이야기다.

그녀가 머무는 부산 광안리 성 베네딕도 수녀원엔 ‘해인 글방’이 있다. ‘작은 우체국’으로도 불리는 선물의 방이다. 그녀는 이곳에서 글을 쓰고, 문서 선교를 하고, 독자들에게 편지를 쓴다.

아기자기한 물품들로 가득한 선물방에 값비싼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 그녀를 위하는 마음과 정성이 담긴 것들이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조가비, 메모를 위해 수녀복 호주머니에 연필을 넣고 다니는 걸 아는 지인들이 보내 준 각양각색의 몽당연필, 마음을 나누는 벗이었던 장영희 교수의 유품, 그리고 영정사진으로 쓰고 싶다고 말한 사진 등. 물론 그 속에는 그녀가 만나는 이들에게 전하는 소박한 선물들도 자리하고 있다.

무엇보다 정성이 담긴 편지는 최고의 선물이다. 그녀를 따라 들어간 ‘편지 창고’에는 엄청난 양의 편지가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수십 년 동안 한 독자가 보내 온 편지는 언젠가 그에게 다시 돌려주려고 따로 챙겨 두었다. ‘서진 룸살롱’ 사건 사형수들이 보낸 편지와 선물도 있었다.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형수 7명은 밥풀을 짓이겨 만든 작은 십자가와 식빵 봉투를 묶는 작은 끈을 이어 짚신을 만들어 보내고 참회의 편지를 썼었다. 인터뷰에서 그녀는 “아주 작고 사소한 물건이라도 그 사람의 마음이 돼 생각하고 전해 주면 귀한 선물이 된다”고 했었다.

며칠 전 푸른길 공원을 자주 산책하는 지인이 ‘어떤 사람’에 대해 이야기했다. 산수동 굴다리 인근을 산책하는데 누군가 매일 노인들에게 간식을 ‘선물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매일 오후 3시, ‘간식함’에 50인분의 빵과 우유를 채워 둔다. 취재를 해 보니 그는 오랫동안 나눔을 실천해 온 구제길 씨였다.

지인은 이 말을 전하면서 지나가는 말처럼 “나도 몇 분에게 작은 선물을 해 볼까?”했다. 어쩌면 그도 어딘가에서 동네 어른에게 간식을 대접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올해 들었던 따뜻한 뉴스 중 기억에 남는 건 ‘냉수 천사’ 이야기다. 부산에 거주하는 50대 아저씨가 4년째 택배기사, 미화원, 경비원에게 ‘얼음 생수’를 제공한다는 미담이다.

그는 매일 오전 9시쯤 미리 얼린 500㎖ 용량 생수 30여 병을 경비실 앞 아이스박스에 넣어 뒀다. 소식을 들은 누군가는 생수 구입비를 후원했다. 동네 돼지국밥집은 폐지 수집하는 노인들에게 생수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전국에서 택배 기사 등에게 ‘얼음 냉수’를 전달하고 있다는 글들도 이어졌다. 나눔은 또 다른 나눔을 낳는다.

성탄절에 시청한 ‘다큐 3일’은 서울 요셉의원 이야기를 다뤘다. 1987년 문을 연 병원은 의료보험 이용이 불가능한 영등포 쪽방촌 사람들에게 단돈 1원도 받지 않고 ‘무료 진료’를 해주는 곳이다. 지금까지 진료 건수는 60만 건에 달한다.

병원 살림은 항상 어려웠다. 직원들은 “언제나 부족했지만, 언제나 채워져 있었다”고 말했다. 후원자 8000명과 의료 봉사자들이 그 힘이었다. 하루하루 버티기도 힘든 삶속에서도 150만 원 상당의 당첨된 복권을 요셉의원에 ‘선물’한 가난한 ‘그 환자’의 이야기는 뭉클했다.

연말연시, 모임이 많은 요즘이다. 애써 챙겨 안부를 묻게 되는 때이기도 하다. 마음에만 담아 두었던 작은 선물 하나씩 건네도 좋을 듯하다.

돌아오는 길, 수녀님에게서 두 권씩 갖고 있는 고전 문학작품 여러 권을 선물로 받았다. 책들은 광주일보가 정기적으로 기증하는 아름다운 재단 용봉동 헌책방에 보낼 예정이다. 그러면 책방을 찾은 누군가가 그 책을 사게 되고, 그가 지불한 몇천 원은 우리 지역 어려운 이웃에게 ‘작은 선물’을 전하는 데 쓰일 터다. 나눔은 전염된다.

/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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