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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섭 변호사]판사실을 떠나 세상 속으로
2015년 12월 28일(월) 00:00
벌써 한 해가 저물어간다.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빨리 지나버린 느낌이다. 2015년은 국제적으로 그리고 국가와 사회적으로 참으로 다사다난한 해였지만 개인적으로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변화와 새로운 경험의 시기였다.

필자가 지난 2월 해남지원장 겸 부장판사를 끝으로 17년간의 법관 생활을 뒤로하고 변호사로 새 출발한 이유 중 하나는 세상을 더 잘 이해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판사는 정제된 기록과 법정 진술을 통해서 사건을 파악한다. 그것은 중립적이고 객관적일 수는 있어도 마치 희뿌연 장막을 사이에 두고 물체를 보거나 두 눈을 가린 채 이야기만 듣고 모습을 상상하는 것처럼 답답하였다. 진실만을 말하는 사람이 없지 않으나 어떤 당사자들은 의도적으로 진실을 가리거나 심지어 왜곡까지 하기에 판사는 인간과 삶에 대한 상당한 경험과 통찰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판사실을 떠나 세상 속에서 정제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진실을 체험하고 싶었다. 그러한 체험이 없다면 원숙한 법조인으로 성장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지난 10개월간 변호사로서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들에게는 절박함과 간절함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자신을 위해서건 가족을 위해서건 그들은 지금의 이 어려움에서 안전하게 벗어나기를 원했다.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야하는 그들에겐 든든한 횃불이 필요했다. 그런 그들은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이웃이었다.

한 해를 돌아보면서 나는 곤경의 터널을 지나는 그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반성해본다. 어떤 이들은 분명 최선의 결과를 얻었다. 선대로부터 누적된 거액의 회사 비자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횡령 등으로 기소되었지만 상당부분 무죄와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기업인, 회사와 관계된 일로 증언하였다가 위증으로 기소되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무죄로 된 회사원, 무면허 음주운전을 하여 기소되었지만 소년부 송치되어 부모 위탁의 보호처분을 받은 청소년,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지면서 성관계를 한 것이 강간이라고 기소되어 무죄를 선고받은 대학생, 임차한 마트 중 일부를 전대하면서 임대인의 명도 요구를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기죄로 실형 선고를 받고 법정구속되었다가 항소심에서 무죄로 풀려난 사업가, 음주운전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가 벌금형으로 감경된 농민, 장애인을 위한 아파트를 분양받은 뒤 전매하여 시세차익을 남기려다 주택법 위반죄로 실형 선고를 받고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나온 부동산중개인, 입찰담합으로 6개월간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을 받았지만 3개월로 변경받은 회사 등 일일이 헤아리기 쉽지 않다.

의도했던 성과를 얻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변호사는 다만 최선을 다할 뿐 결정은 법관이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지만, 일말의 기대를 했던 의뢰인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을 때는 깊은 자괴감도 들곤 했다. 사실은 이런 때가 변호사로서 가장 힘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에게 아직 희망은 남아있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마음속에 희망이 있는 한 방법은 항상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경험에 비추어 보면 판사로서 보는 진실과 변호사로서 보는 진실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판사가 양 당사자 사이에 있다면 변호사는 판사와 의뢰인 사이에 있다. 그래서 변호사는 객관성을 유지하면서도 의뢰인을 위해 그와 한마음이 되어야 한다. 두 진실 가운데 꼭 어느 것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변호사의 역할은 그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변호사 되기를 결심하면서 스스로 한 다짐이 있다. 사건을 보지 말고 언제나 사람을 보자, 내가 아니라 의뢰인을 위한다는 마음은 변치 말자. 그 약속은 내가 변호사로 활동하는 한 언제까지나 간직하고 싶다. 2016년 새해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희망을 간직하고 이루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