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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우 광주지법 해남지원 판사]화해·평화를 회복하는 법
2015년 11월 30일(월) 00:00
“이제 그만 이 자리에서 화해하시면 어떨까요?” 필자가 법정에서 종종 당사자들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하는 말이다.

보통 ‘화해’라고 하면 친구와 사소한 일로 싸우고 밤새 고민하다가 다음날 아침 손을 내밀며 ‘화해하자’라고 말했던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화해는 이러한 일반적인 뜻과 함께 법적으로는 ‘당사자가 상호 양보하여 분쟁을 끝낼 것을 약정하는 것 ’이라는 의미가 있다. 소송 중에도 다투고 있던 권리관계에 대하여 양 당사자가 조금씩 양보하여 합의를 이뤄낸 후 그 내용을 조서에 기재하면 소송은 판결에 의하지 않고 화해로 종결된다.

대부분 당사자는 법원이 판결로 결론을 내려주기를 기대한다. 많은 경우에 그렇게 하는 것이 타당하지만 화해를 통한 해결이 당사자들에게 더 유익한 경우도 많다. 재판을 하면서 보게 되는 몇 사례를 말해 보려 한다.

첫째, 원고는 전복양식장을 하는 피고에게 몇 년 전부터 사료를 외상으로 공급해 왔다. 그런데 태풍이 몰려와 전복의 반이 죽었다. 피고는 대금을 마련할 수 없었고 원고는 소송을 제기했다. 피고는 내년 여름이면 남은 전복을 키워 팔아 돈을 마련할 수 있으니 시간을 달라고 한다. 이런 경우 판결의 결론은 분명하다.

그러나 원고는 판결을 받아도 피고의 재산을 찾아 경매해야 돈을 받을 수 있는데, 피고의 전복양식장을 경매에 부쳐 버리면 피고는 더 이상 돈을 벌 길이 막히고 원고는 경매에서 받은 돈 이상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이런 경우에 원고가 변제기를 연장해 주거나 분납 기회를 주는 방식으로 화해를 하면 분쟁은 일찍 종결되고 피고가 전복을 잘 키워서 돈을 갚게 되면 원고는 번거롭지 않게 돈을 받을 수 있다. 피고가 화해조항에 따라 돈을 갚지 않으면 화해조서를 가지고 바로 강제집행을 하면 된다.

둘째, 원고는 A라는 사람을 통해 피고와 거래를 했고 돈도 보냈다. 그런데 피고는 A에게 다른 일을 시키며 피고 이름을 쓰게 했을 뿐 원고와의 거래는 시키지 않았고 돈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피고가 그 거래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는지 판단하려면 거래과정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그런데 그 과정을 다 알고 있는 A는 잠적했고 객관적인 증거는 없다. 증거를 찾아 재판을 하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결과가 어찌 될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판결이 나오면 한쪽은 전부 승소하고 다른 쪽은 전부 패소할 수밖에 없어 원고와 피고 모두 불안하다. 이런 경우에 관점을 바꿔 원고는 확인을 충분히 하지 않은 책임을 인정하고 피고는 A를 잘 감독하지 않은 책임을 인정해서 손해를 분담하기로 화해하면 원고와 피고 모두 분쟁을 일찍 끝내고 전부 패소할 위험을 덜 수 있다.

셋째, 건축업자 원고가 피고의 부탁을 받고 1억 원에 공사를 하기로 했다. 공사 중 피고가 몇 가지 공사를 더 해달라고 하면서 대금은 들어간 비용에 이익을 더해서 적절히 주겠다고 했고 원고는 추가공사를 했다. 원고는 공사 후 추가공사대금으로 2천만 원을 달라고 했고 피고는 1천만 원이면 충분하다고 따졌다. 원고는 결국 소송을 제기한다. 판결을 하려면 공사에 들어간 적정 비용이 얼마인지를 알기 위해 감정을 해야 한다. 감정을 하려면 수백만 원이 필요한데 그 돈은 원고가 일단 내야 한다. 원고는 판결 결과에 따라 피고로부터 감정비를 전부 또는 일부 받을 수 있지만 수개월의 시간이 더 걸린다. 이럴 때 양 당사자가 서로 양보해서 화해를 하면 원고는 돈을 빨리 받을 수 있고 양 당사자 모두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이와 같이 화해가 유익한 상황들이 있기에 판사는 화해 방안을 고민해서 화해를 권한다. 당사자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화해가 될 수 없기에 판사는 법정에서 진지하게 설득하기도 하고 화해권고결정문을 만들어 보내기도 한다.

필자는 화해를 권하면서 앞서 본 화해의 유익과 함께 한 가지 더 소망하는 것이 있다. 바로 평화를 회복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소송이 제기되어 법정에 나온 사람들은 이전에는 평화로운 관계에 있었고 그래서 거래도 해 왔다. 그러다가 어떤 이유로 분쟁이 발생해서 평화가 깨진 상태로, 때로는 매우 적대적인 상태가 되어 법원을 찾는다. 판결이 분쟁을 일단 끝내는 길은 될 수 있지만 평화를 회복하기에는 좀 부족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양측이 조금씩 양보하고 분쟁을 일찍 종결하게 되면 분쟁이 끝나는 것을 넘어서 평화가 회복될 가능성이 커진다. 채무자는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나눠 갚고, 채권자는 이런 채무자를 믿고 다시 거래를 할 수도 있다. 일을 하다가 생긴 손해를 서로에게 지우려 하던 회사들은 손해를 분담하기로 하고 다시 거래할 수도 있다. 줘야 할 돈이 얼마인지를 놓고 다투던 사람들은 일찍 소송을 끝내고 대화와 양보의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거래할 수도 있다. 이러한 평화의 회복을 기대하며 필자는 화해를 권한다. 화해를 통해 법원이 분쟁을 끝내는 것을 넘어서 평화를 회복하는 역할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