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호텔’은 달려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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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새호텔’은 달려야한다
2014년 04월 16일(수) 00:00
지난해 3월 일본 21세기 가나자와 미술관을 찾은 기자는 가슴 뿌듯한 경험을 했다. 앤디 워홀, 제임스 터렐 등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어서였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내로라하는 아티스트들 속에서 범상치 않은 존재감을 보여준 한국작가 서도호(53) 때문이었다. 가나자와 미술관에서 만난 서도호 특별전은 반가움을 넘어 자부심을 느끼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집 속의 집’을 주제로 열린 전시회에는 그의 설치작품들을 보려는 관람객들로 북적거렸다. 반투명 천으로 여러 가지 집을 재현한 대형 설치작품과 영상, 드로잉은 ‘집짓는 미술가’의 명성을 실감케 했다. 3개월 동안 열린 특별전에는 5만 여 명에 가까운 관람객들이 다녀갔다. 가나자와시 인구가 47만 여 명인 점을 감안하면 ‘대박’이나 다름없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서도호 전시회가 반가웠던 건 그의 2012 광주비엔날레(9월7일∼11월11일) 출품작 ‘틈새호텔’을 다시 만났기 때문이다. 비록 실물이 아닌 영상이었지만 4개월 전 막을 내린 광주비엔날레의 현장으로 되돌아간 것 같아 즐거웠다. 특히 틈새호텔의 24시를 카메라에 담은 영상은 가나자와 시민들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일부 관람객은 “한국에 가면 꼭 한번 틈새호텔에 머물며 광주를 느끼고 싶다”고 했다.

틈새호텔은 2012 광주비엔날레의 최대 히트작 가운데 하나다. 1.2톤 규모의 봉고차량에 1인 객실을 꾸민 이 작품은 전시장의 붙박이가 아니라 광주 전역을 돌아다니는 이동식 호텔이라는 점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실제로 외지에서 온 비엔날레 관람객은 틈새호텔로 광주 전역을 돌아다니다 집과 집 사이, 건물과 건물사이의 이름 없는 틈새에서 숙박하며 광주와 소통하는 체험을 했다. 당시 비엔날레 재단은 행사가 끝난 후 틈새호텔을 광주의 관광상품으로 활용하는 계획을 세웠다.

지금쯤이면 광주의 마스코트로 자리 잡아야 할 틈새호텔이 1년 넘게 시동이 꺼진 채 방치돼 있다(본보 4월2일자). 운영주체인 비엔날레재단의 예산과 인력이 부족한 게 주된 이유다.

사실 어디 틈새호텔 뿐이던가. 광주시 문화행정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엿볼 수 있는 곳은 의외로 많다. 5회째를 맞은 아트페어 ‘아트 광주’ 도 그렇고 수십억 원을 들인 광주폴리 역시 예산과 인력이 제대로 지원되지 않아 삐걱거리고 있다. 일부 폴리는 관리가 안돼 애물단지 신세가 된지 오래다. 나중에야 어떻든 우선 ‘한 건’ 터뜨려 보자는 전시행정의 표본이 아닐 수 없다.

뒤늦게 나마 재단이 오는 22일부터 틈새호텔을 재개한다고 15일 보도자료를 내놓았다. 부디 이번 만큼은 ‘반짝 운행’이 되지 않길 바란다.

〈편집부국장 겸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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