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보석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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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보석상자
2013년 05월 29일(수) 00:00
뉴욕에서 가장 많은 현대미술 품을 소장한 주인공은 팔순의 허버트 & 도로시 보겔(Herbert and Dorothy Vogel)부부다. 이러면 십중팔구 재력가를 떠올리기 쉽지만 허버트는 전직 우편배달부이고 도로시는 도서관 사서 출신이다.

그렇다면 보겔부부가 뉴욕에서 알아주는 컬렉터가 된 비결은 무엇일까? 다름아닌 ‘예술에 대한 애정’ 이다.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부부는 시간만 나면 갤러리들을 돌아다녔다. 1962년 미술관에서 만난 두 사람은 금방 ‘마음이 통해’ 결혼을 했다. 맨하탄의 한 임대아파트에 둥지를 튼 부부는 ‘컬렉터가 되기 위한 생활수칙’을 세웠다. 작품구매 기준은 우체부 수입 한도내에서, 또 작은 아파트에 둘 수 있는 소품으로 정했다. 그러다 보니 빠듯한 허버트의 월급으로 구입할 수 있는 건 무명작가들의 작품이었다.

아파트 임대료 내기도 벅찼지만 부부의 ‘사치’는 계속됐다. 두 사람은 컬렉터 이전에 큐레이터의 눈으로 작품을 골랐다. 작업실을 방문해 작품을 둘러보고 구입했다. 또 정기적으로 작가에게 연락해 어떤 작품을 새로 시작했는지 등을 물었다. 부부의 ‘잔소리’를 들은 솔 르위트, 척 클로스는 오늘날 작품가격이 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거장이 됐다.

지난 40여년 간 부부가 모은 컬렉션은 모두 4800여점. 이젠 누구나 부러워하는 큰손이지만 생활은 여전히 궁핍하다. 20여 년 전 구입한 초록색 재킷은 허버트의 단골 외출복이다.

하지만 지난 2008년 부부는 소장품 가운데 1000점을 자신들의 신혼여행지였던 워싱턴 국립미술관에 기증했다. 이유는 단 하나,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감상하고 싶어서였다. 두사람의 감동스토리는 다큐 ‘허브 앤 도로시’(2008년)를 통해 알려졌다.

최근 광주에서도 오랫동안 소장해왔던 미술품을 시민들과 함께 즐기는 뜻깊은 문화나눔이 열렸다. 광주지역 미술품 소장가들이 주축이 된 화광회의 ‘내 마음의 보석상자’전(23∼29일 대동갤러리)이다. ‘화합하는 광주’라는 뜻을 지닌 ‘화광회’는 지난 2010년 광주일보와 (사)광주미술관회가 기획한 일본 나오시마 지추미술관 탐방을 계기로 결성된 모임으로 지역에서 소장가들의 애장품을 ‘공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들 출품작 가운데에는 의재 허백련의 ‘광명정대’, 남농 허건의 ‘송’(松), 고 오승윤 화백의 초기작인 ‘해녀’ 등 평소 접하기 힘든 ‘보석’들이 포함됐다. 화광회의 뜻이 통했는지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의 얼굴에선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

보통 컬렉터라고 하면 돈많은 사람들의 재테크로 여기는 분위기가 강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화광회의 전시회는 미술품 소장가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진정한 컬렉터의 미덕은 많은 사람들과 컬렉션을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편집부국장 겸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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