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서른살 광주’는 행복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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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서른살 광주’는 행복했네
2010년 05월 24일(월) 00:00
“엄마는 1980년 5월 18일에 뭐하셨어요?”. 지난 15일 저녁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이 식탁에 앉자 마자 뜬금없이 물었다. “당시 휴교 중이어서 집에만 있었다”고 답하자 “에이, 그럼 잘 모르겠네”라며 실망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들녀석이 80년 5월을 저녁식탁의 화제로 끄집어 낸 건 ‘화려한 휴가’ 때문이었다. 그날 오후 단체관람한 뮤지컬 ‘화려한 휴가’에 제대로 감동받은 듯 공연장에서 보고 느낀 것을 생생하게 이야기했다. 아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배우들의 연기와 음악이었다. 80년 5월을 배경으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젊은 연인의 사랑이야기를 애틋하게 그린 스토리도 감동이었지만, 무대에서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든 건 음악과 안무였다. 특히 80년 당시 ‘10일간의 항쟁’을 아름다운 노래와 서정적인 춤사위로 표현한 뮤지컬은 그 어떤 다큐멘터리 보다 깊은 인상을 주었다. 수업시간에 배운 ‘80년 5·18’은 암울하고 무거운 역사였는데 공연장에서 접한 ‘2010년 5·18’은 희망의 선율이었던 것이다.

뮤지컬 ‘화려한 휴가’는 5·18 30주년을 기념해 지난 2007년 800만 명을 동원한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비록 광주에서는 5일간 공연됐지만 반응은 뜨거웠다. 영화가 암울했던 과거를 중심으로 ‘그날’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면 뮤지컬 버전은 두 주인공의 러브스토리를 통해 해원(解寃)과 상생의 가치를 부각시켰다. 선동적이고 호전적인 어조 대신 토속적이고 아름다운 뮤지컬 넘버로 관객들에게 다가갔다. 앞으로 보완해야 할 점도 눈에 띄었지만 광주를 상징하는 한국판 ‘레미제라블’(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한 세계 4대 뮤지컬)의 가능성을 예고하는 성과를 거뒀다.

어디 ‘화려한 휴가’ 뿐이랴. 올해 5월 문화예술계는 그 어느 해보다 풍성한 해였다. 5·18 민중항쟁 30주년임에도 불구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맘껏 부르지도 못하고, 반쪽 기념행사를 치러야 했지만 ‘5월문화’는 시민들의 일상속으로 들어갔다.

80년 그날의 참상을 캔버스에 재현한 홍성담의 민중미술에서부터 독일 표현주의의 거장 A.R 펭크 등이 참가한 ‘21세기 전쟁과 평화전’, 고 백남준, 알프레도 자, 지안 준시 등 국내외 유명작가들이 출품한 미디어 아트 ‘오월의 꽃’전 등 다양한 장르의 전시회가 광주를 물들였다. 이에 질세라 광주시향과 시민합창단 518명은 5·18 전야제 행사로 말러 교향곡 제2번 ‘부활’ 을 공연, ‘5월광주’의 의미를 함께 나눴다. 또한 올해 처음으로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장소마케팅연구센터는 5·18 유적지를 26개 테마로 나눈 ‘오월길’을 개발해 시민들에게 선사했으며, 전남대 호남학연구원은 양동시장 상인들과 손잡고 지난 22일 ‘화해와 상생을 위한 양동시장 토요장터’를 열어 주먹밥의 나눔정신을 되새겼다.

사실 그동안 ‘5월 정신’은 박제된 모뉴먼트처럼 시민들의 일상에 스며들지 못했다. 매년 5월에만 반짝 기억되는 연례행사가 아닌, 항상 시민들과 소통하는 문화컨텐츠로 진화해야 한다. 뮤지컬 ‘화려한 휴가’가 고등학생과 ‘통했다는 것’ 만으로 올해 서른살 광주는 행복했다.

/문화생활부장·/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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