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환희의 송가’를 부르자
“엄한 현실이 갈라놓았던 자들을 /신비로운 그대의 힘은 다시 결합시킨다/
그대의 고요한 나래가 멈추는 곳/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노라…”(시인 프리드리히 실러의 ‘환희의 노래’중 일부)
가난한 음악가 베토벤(1770-1827)은 실러의 시를 읽는 순간 알 수 없는 전율에 휩싸였다. 인류의 평화와 화합을 노래한 시는 각박한 현실에 지쳐 드러눕고 싶은 베토벤을 뒤흔들었다. 벅찬 감동을 주체하지 못한 그는 절친한 친구에게 편지를 보냈다. “친구여, 나는 이 시를 한 구절도 빠뜨리지 않고 언젠가 음악으로 만들고야 말겠네.”
그의 나이 23살 때였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순탄치 않았다. 26살 때부터 그를 괴롭히던 귓병이 점점 심해져 서른 살 무렵엔 거의 들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음악가에게 청력 상실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32살 때 자살을 시도하며 쓴 유서에는 그의 절망이 어떠했는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 재앙은 그 어떤 것보다 예술가에게 치명적이다. 남들보다 훨씬 풍부해야 할 감각 하나가 없다는 사실은 죽음 이외엔 길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그는 초인적인 의지로 자신의 운명과 맞서 싸웠다. 나무 작대기 한끝은 피아노 위에 닿게 하고, 다른 한끝은 입에 문채 입술의 떨림을 통해 피아노의 진동을 느끼며 악보를 채워 나갔다.
그로부터 31년이 지난 1824년 5월 7일 오스트리아 빈 극장. 연주가 끝나자 청중석은 환호와 박수갈채로 떠나 갈 듯했다. 하지만 무대 위에선 단 한 사람만이 그런 청중을 등 뒤로 외면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젊은 여가수가 다가가 그를 돌려세웠다. ‘불멸의 작곡가’에게 경의를 표하는 청중을 본인이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음악사에 가장 극적인 장면으로 꼽히는,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이 초연된 순간이다. 특히 실러의 ‘환희의 노래’를 가사로 쓴 4악장 ‘환희의 송가’는 대규모 혼성합창을 처음으로 도입한 교향곡이라는 점에서 (이날 공연은) 당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일 년 중 베토벤의 ‘합창’이 가장 많이 울려 퍼지는 때가 요즘이다. 많은 유명 교향악단들이 헨델의 ‘메시아’와 ‘합창’을 레퍼토리로 송년무대를 장식하기 때문이다. 온갖 시련 속에서도 불후의 명곡을 탄생시킨 베토벤의 ‘인간승리’가 한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맞는 세밑 분위기와 딱 들어맞아서다.
다사다난했던 2008년이 며칠 남지 않았다. 불황의 그늘로 고단해진 심신을 ‘합창’ 교향곡으로 추스려 보는 것은 어떨까? 때마침 광주시립교향악단이 30일 합창교향곡을 메인 레퍼토리로 송년공연(광주 문예회관 대극장)을 갖는다. 만일 공연장 찾는 게 여의치 않다면 음반으로나마 아쉬움을 달래며 희망을 품는 것도 좋을 듯하다. 난청이란 ‘절대 절망’ 속에서도 환희를 노래한 ‘음악의 악성’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박진현 문화생활부장 jhpark@kwangju.co.kr
그대의 고요한 나래가 멈추는 곳/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노라…”(시인 프리드리히 실러의 ‘환희의 노래’중 일부)
가난한 음악가 베토벤(1770-1827)은 실러의 시를 읽는 순간 알 수 없는 전율에 휩싸였다. 인류의 평화와 화합을 노래한 시는 각박한 현실에 지쳐 드러눕고 싶은 베토벤을 뒤흔들었다. 벅찬 감동을 주체하지 못한 그는 절친한 친구에게 편지를 보냈다. “친구여, 나는 이 시를 한 구절도 빠뜨리지 않고 언젠가 음악으로 만들고야 말겠네.”
그의 나이 23살 때였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순탄치 않았다. 26살 때부터 그를 괴롭히던 귓병이 점점 심해져 서른 살 무렵엔 거의 들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음악가에게 청력 상실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32살 때 자살을 시도하며 쓴 유서에는 그의 절망이 어떠했는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 재앙은 그 어떤 것보다 예술가에게 치명적이다. 남들보다 훨씬 풍부해야 할 감각 하나가 없다는 사실은 죽음 이외엔 길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그는 초인적인 의지로 자신의 운명과 맞서 싸웠다. 나무 작대기 한끝은 피아노 위에 닿게 하고, 다른 한끝은 입에 문채 입술의 떨림을 통해 피아노의 진동을 느끼며 악보를 채워 나갔다.
그로부터 31년이 지난 1824년 5월 7일 오스트리아 빈 극장. 연주가 끝나자 청중석은 환호와 박수갈채로 떠나 갈 듯했다. 하지만 무대 위에선 단 한 사람만이 그런 청중을 등 뒤로 외면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젊은 여가수가 다가가 그를 돌려세웠다. ‘불멸의 작곡가’에게 경의를 표하는 청중을 본인이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음악사에 가장 극적인 장면으로 꼽히는,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이 초연된 순간이다. 특히 실러의 ‘환희의 노래’를 가사로 쓴 4악장 ‘환희의 송가’는 대규모 혼성합창을 처음으로 도입한 교향곡이라는 점에서 (이날 공연은) 당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일 년 중 베토벤의 ‘합창’이 가장 많이 울려 퍼지는 때가 요즘이다. 많은 유명 교향악단들이 헨델의 ‘메시아’와 ‘합창’을 레퍼토리로 송년무대를 장식하기 때문이다. 온갖 시련 속에서도 불후의 명곡을 탄생시킨 베토벤의 ‘인간승리’가 한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맞는 세밑 분위기와 딱 들어맞아서다.
다사다난했던 2008년이 며칠 남지 않았다. 불황의 그늘로 고단해진 심신을 ‘합창’ 교향곡으로 추스려 보는 것은 어떨까? 때마침 광주시립교향악단이 30일 합창교향곡을 메인 레퍼토리로 송년공연(광주 문예회관 대극장)을 갖는다. 만일 공연장 찾는 게 여의치 않다면 음반으로나마 아쉬움을 달래며 희망을 품는 것도 좋을 듯하다. 난청이란 ‘절대 절망’ 속에서도 환희를 노래한 ‘음악의 악성’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박진현 문화생활부장 jhpark@kwangju.co.kr